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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May 31. 2023

쌍꺼풀 테이프를 샀다.

처음 쌍꺼풀 테이프를 산건 중학교 때였다.

더 큰 눈을 갖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나 모르겠다. 얇은 속 쌍꺼풀이지만 나름 큰 눈을 가졌었는데 말이다.


쌍꺼풀 테이프를 하루 종일 붙였다.

잘 때만큼은 붙이지 않아도 됐는데. 세수하다 떨어지면 큰 일이라도 듯 바로 또 붙였다. 24시간이 모자란 듯 붙여댔다. 눈두덩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결국 짓물렀다. 이상은 무리였다. 결말은 쌔드 스토리. 눈물을 머금고 이별했다. 호되게 당해서인지 그 뒤론 두 눈을 있는 그대로 받아였다. 쌍꺼풀 욕망은 말끔히 지웠다.







그러다 며칠 전 성형외과에 갈 일이 있었다.

고백하건대...

난 심한 이갈이가 있다. 플라스틱 악안면 보조 장치도 이로 갈아내는 초강력 힘. 치과에서는 적극 턱 보톡스를 추천했다. 


바로 그날도 연례행사로 병원을 찾았었.

뾰족한 바늘이 곧 내 살을 뚫고 들어  상상에 온몸엔 힘이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막 시술에 들어가려던 찰나. 갑자기 뉘어져 있던 의자가 일으켜 세워졌다.


선생님은 철사 같은 얇은 도구를 들고 있었다.

그것으로 내 왼쪽 눈꺼풀을 살짝 누르고는 눈을 떠 보라고 했다. 동시에 앞까지 손거울이 들어왔다. 오른쪽과 흡사한 쌍꺼풀이 왼쪽 눈에도 만들어졌다. 누가 성형외과 의사 아니랄까 봐. 짝짝이 내 눈이 몹시도 거슬렸나 보다. 아님 쌍수 환자 한 명 추가를 위한 영업이었을까.


묻지도 않았는데 훅 들어온.

선생님은 시술 후 천천히 생각에 보라며 한 마디 툭 던지고는 퇴장했다.  






    


그렇다.

몇 달 전 일어나니 갑자기 짝짝이 눈이 되어있었다. 오른쪽 눈에만 두꺼운 쌍꺼풀이 생긴 것이다. 왼쪽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렸다. 하루, 이틀... 사흘... 아침마다 일어나며 기대를 했지만 번번이 실망뿐이었다. 그러다 엄청 피곤한 날이면 신기하게도 왼쪽 눈에도 쌍꺼풀이 생기곤 했다. 하지만 유효기간은 달랑 하루였다.

  

그날 이후 의사 선생님의 그 말은 긴 여운을 남겼다.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자꾸 쌍꺼풀 없는 왼쪽 눈이 신경 쓰였다.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님 눈을 바라볼 때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평소 잘 보지도 않던 거울을 다 들여다봤다. 화장하면서, 로션 바르면서, 이 닦으면서도 계속 왼쪽 눈만 쳐다보게 되었다. 이 나이에 거울 공주라도 된  수시로 거울을 들었다 놨다 했다.


그를 다시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쌍수 다시 만나 단판이라도 지어봐야겠다는 생각. 그러고 보니 나와 동갑인 공부왕찐천재 홍진경도 생각났다. 그녀도 쌍꺼풀 테이프를 가지고 다녔다. 나이 들며 겹겹이 생긴 쌍꺼풀 라인 정리를 위해서라고 했다.

  

과거 안 좋았던 기억은 모두 잊었다.

바로 주문했다. 그렇게  인생 두 번째 쌍꺼풀 테이프와 재회했다.


물건을 받자마자 바로 쌍꺼풀 만들기에 돌입했다.

뗄 때부테이프가 겹쳐질까 조심조심했다. 떼어서는 원하는 위치에 올려놓고, 들뜸 없이 착 달라붙게 했다. 소싯적 해보긴 했어도 원하는 라인이 나오도록  붙이는 것은 신의 영역 같았다. 어떤 날은 너무 얇은 쌍꺼풀이 되었고, 또 어떤 날은 찌그러진 라인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열심을 다했다.


단, 젊은 날의 쓰라렸던 헤어짐을 교훈 삼아 하루 종일 붙이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세상에! 그 뒤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왼쪽 눈에 자연스럽게 쌍꺼풀이 생긴 것이다.  자고 일어나도 사라지지 않는, 중학생 때 그렇게도 바랐던, 찐 쌍꺼풀 말이다.


탱글탱글 젊은 날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붙여대도 막강한 탄력이 쌍꺼풀 라인을 도로 다 토해냈을 테니 말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

뭔가 하나 둘 잃어만 간다는 생각에 쓸쓸했는데. 흡족한 쌍꺼풀 하나를 얻었다. 수술도 없이. 쌍꺼풀 테이프 하나로. 쌍꺼풀 테이프와 두 번째 만남은 누가 봐도 해피 엔딩이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


혹여 쌍꺼풀이 풀어지기라도 할까

오늘도 눈을 부릅뜨며 하루를 시작한다.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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