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건강함을 자랑할 만한 외모다. 하지만 외모는 외모일 뿐. 빛 좋은 개살구 격이다. 약골 중에 약골이다.
남들은 대형 마트 장보기가 취미라고도 하던데. 드넓은 매장을 물건 찾아 헤매는 게 힘들어 클릭으로 간단히 해결한다. 나에겐 새벽 배송이 있다. 여행은 여독푸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길다.분명 설레는 일이지만선뜻 떠나기가 망설여진다.엄마들과오전 카페 수다는 하루 에너지 총량소진의 가장 큰 원인이다.
집 밖은 위험한 곳이 되었다.
무리 없이. 조용히. 사부작사부작.
혼자 보내는 시간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운동은 유튜브 홈트에최적화되어 있다. 혼자서 지속가능하냐고 묻겠지만 고맙게도 의지박약과는 거리가먼사람이다. 신기하게도 꾸준히 잘도 해나간다.
카페도 홈카페를 좋아한다. 남들은 별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책도 읽고, 일도하고, 글도 쓴다던데. 나에게백색소음은그저 견디기 힘든소음일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집 밖을꺼려하는 나에게도
단골 가게가 있다.
내 단골집 가장 큰 장점은 24시간 이용이 가능하다는 데있다. 이것 때문에 더 쉽게 찐단골이 됐다.
혹여 들렸다빈손으로 그냥나와도.
아님 장바구니 그득 채웠다 살며시 내려놓고 나와도.
눈치 한 번 주지 않는다.예상컨대 주인장은태평양 부럽지 않은 넓디넓은마음이지싶다.
내 단골집은 할인 쿠폰도 꼼꼼히 챙겨준다.
할인 쿠폰 사용에 희열을 느끼는 나다.좋아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다. 처음 한 발 들이기가 어려워 그렇지, 한 번 들어가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곳이다.매력적인 공간임에는 틀림없다.
심지어 이달 초, 단골 가게로 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스팸메일만가득하던 메일함에 뽀얀진주알하나가 톡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대놓고단골집을광고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매 순간 순수 백 프로 내돈내산이었으니당당히 밝히겠다.
집콕을 애정하는 극 I형 인간. 내가 좋아하는 단골집은 눈치 보지 않고 책을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바로 인터넷 서점 예스 24이다.
코로나로 도서관 드나들기도꺼렸던 시절. 그때부터 친해지기 시작했다. 짧게 마무리될 것 같던 고역의 시간은 엿가락 늘어지듯 길어졌고.종식만 바라보며 아무것도 안 하느니 차라리 책이라도 실컷 읽어보자 했다.
평소도서관에서 빌려보던 책들을모두 사서 읽게 되었다. 이때만큼은 아이가 읽고 싶다 했던 책들도 모조리 주문해 줬던 것 같다.덕분에 아이의 독서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읽기의 즐거움도 깊어졌다. 집 안에는 가족 독서모임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때 그 습관이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책이내어준 길을마음 내키는 대로 싸돌아 다니며 장바구니에 한 권씩 담는 재미가 쏠쏠하다. 침대에 누워서도얼마든지산책이 가능하다.선크림을 바를 필요도 선캡을 눌러쓸 일도 없다. 저질 체력인나에게최고최적의단골가게로 자리 잡았다.
메일을 받은 그날은 최고등급인 플래티넘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3개월간 구매 누적 금액이 30만 원 이상 되었을 때 주어지는 등급이란다.적립금과 할인 쿠폰 혜택이 상향됐다.
여기에는 사실 아이가 많은 기여를 했다. 우리 집 독서 왕답게요청하는 책이많다. 최근에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꿀벌의 예언>을 주문했고,2학기 관련 문제지들도 주문했다.
엄마는 마음과는 달리 읽는 속도가 더뎌 시무룩하다. 심지어 요즘은 고전 탐닉에 들어갔다. 정독을 몇 번씩 하느라 평소보다 책주문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 장바구니에 담긴 책들이 손짓하지만 외면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편안하게드나들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가 있어 참 좋다.장바구니속넘치는 책들을 고민 없이모두 구매할수 있는그날을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