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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l 25. 2023

그녀가 청소하는 이유

집을 정리한다.

밀대에 부직포를 끼운다. 부직포에 달라붙지 않는 과자 부스러기는 모아서 손의 힘을 빌린다. 거실에 놓아두었던 빨래 건조대는 재빠르게 빈방으로 치운다.


이번엔 식탁을 공략한다.

식사 후 남은 그릇 자국이 유난히 눈에 거슬린다. 행주를 들고 식탁을 덮고 있는 유리 면과  각도를 맞춘다. 한치의 얼룩도 남지 않게 빈틈없이 닦아낸다. 식구들에게도 당부한다. 물컵은 식탁 위에 놓지 자고. 식탁에서 책 읽기와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도 부탁한다. 모든 책들에게 자기 자리를 찾아주라고.


다음은 화장실이다.

세면대 수전으로 직진한다. 수전의 물때를 매직블록으로 반짝이게 닦아낸다. 매직블록답게 마술을 부린 양 광택이 사롭지 않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는다. 대머리가 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매일 줍는 머리카락 양이 만만치 않다. 변기 커버를 올려 오줌 자국을 체크한다. 소변은 앉아서 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마음과는 달리 스탠드 업! 을 포기 못하는 우리 집 남자들이다.


마지막으로 현관이다.

택배 상자가 쌓여 있다면 바로 물건을 정리해 팬트리 속으로 집어넣는다. 박스는 지체 없이 재활용 분리수거장으로 들고나간다.  빈 박스만 치워도 그 집 첫인상이 백점 만점에 백점이 된다. 물티슈 한 장을 꺼내 빠르게 휘익 한 번 훔쳐낸다. 누구의 머리카락인지. 누가 데려온 흙먼지 인지. 마지막까지 존재감을 드러낸다.





. 이제 한숨을 돌린다.

집안을 둘러본다. 기분 좋을 정도로 정리정돈 된 모습에 흡족함이 몰려온다. 왜 진작 이렇게 살지 못했는지 의문이 든다.

 

청소한다고 몸 좀 움직거렸더니 온몸이 땀이다.

평소 질색팔색하던 찬물 샤워는 시원하기만 하다.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돌돌 말아 꼰다. 웨이브를 한껏 살려 머리를 말린다. 안경도 벗어던진다. 집에 있지만 화장을 한다. 두 볼 위에 피치색 볼터치를 티가 팍! 나게 한다. 발그레해진 두 볼이 생기를 더해 준다. 고 있지 않아도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 같다.


늘 입고 있던 잠옷도 벗어던진다.

청바지에 면티를 착장하고 손목에는 시계를 찬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마무리로  향수를 칙칙 뿌린다. 





그가 뭐길래!

내 삶을 바꿔놨다. 집안을 정리하고, 나를 가꾼다.

오늘도 나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그를 기다린다.

띵동!










과외할 학생이 왔다.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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