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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l 14. 2023

새끼 고양이야, 거기만은 피해!

아파트 소통 공간에 글이 올라온 건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202동 의류 수거함에 새끼 고양이가 빠졌어요.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있던 나는.

스프링처럼  몸을 세웠다. 며칠 전 우리  화단에서 놀고 있던 새끼 고양이가 스쳤다. 새끼 고양이는 작디작았다. 생명체 키우기를 꺼려하는 나 같은 사람도 '어머머~ 너무 귀여워~~'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사람들 말로는 얼마 전 새끼 고양이가 다섯 마리나 태어났다고 했다.


사람들 눈길이 쏟아지자,

어디선가 어미 고양이가 나타났다. 기둥 밑 굴은 언제 파 놓은 건지. 어미는 새끼 고양이를 몰고 그 속으로 쏙 들어갔다. 아쉬웠다. 다음번엔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를 모두 볼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오길 바랐다.


그런데 지금.

새끼 고양이가 의류 수거함에 빠져 있다니!







제보자에 의하면 고양이 소리가 나길래 가 보았고. 수거함 안에 새끼 고양이가 빠져 있었고. 어미는 밖에서 울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

.

.

구하러 갈게요.

202동 맞나요?


의류수거함 업체 전화번호는 없나요?


관리 사무실에 부탁하면 어떨까요?


제가 관리실에 전화했어요.

수거함 키는 따로 없으시대.

119에 라도 전화해야 할까요?


저는 지금 밖이라 가볼 수가 없는데, 구조되면 댓글 좀 남겨주세요.


.

.

.


직원분이 가봤는데, 고양이 소리가 안 들린대요.

혹시 구조하신 분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어머. 저는 어미가 놀랠까 봐 자리를 피해 줬는데, 그 사이 슨 일이 라도 난 걸까요?


.

.

.


아. 끼 고양이 수거함 안에 있대요.


팔을 넣어봤는데 안 닿아요.

.

.

.



여기서. 고민에 들어갔다. (나가봐 vs. 말아)

'나가봐?'

아니... 이미 도움을 주러 나선 사람들이 있는데.  댓글로도 생중계하듯 알려주고 있고 말이야.

'그럼... 말어?'

두 개의 생각이 시소 타듯 오르락내리락했다.


사실 그 고양이가 눈에 너문 아른 거렸다. 소중해를 소듕해라고 발음해야 할 것 같은. 작디작은 아기 고양이였으니까.


동시에 결말도 무척 궁금했다.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면 감격적 순간을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침대 위를 고 있었다.

연이어 올라오는 댓글에 한 발짝도 지 못했다. 또 다른 댓글이 올라왔다. 이번엔 마무리 짓는 내용이었다.


관리 사무소 당직 직원분이 무사히 아기 고양이를 구출했다는 반가운 소식. 후텁지근한 밤, 땀을 뻘뻘 흘리며 구해 주셨다는 훈훈한 칭찬. 업체에 여분의 키를 요청하겠다는 야무진 해결책까지.







이렇게 한 여름밤의 소동은 끝이 났다.


그렇지만  현장을 목격하지 못한 나는 어떻게 새끼 고양이가 구조됐는 너무 궁금했다. 혼자서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긴 막대기를 수거함 아래까지 내려줬나?

아님 수거함을 옆으로 뉘어서 나올 수 있게 했나?


새끼와 어미의 재회. 그 순간. 그 모습도. 어땠을지 정말 궁금했다.

어미가 놀란 새끼를 핥아 줬을까?

아니면 화가 나 새끼 목덜미를 물고 집으로 돌아갔을까? 


아... 궁금해.

알고 싶은 것을  물어보지 못한 아쉬움과

때 마쳐 뛰쳐나가지 못한 아쉬움이 한꺼번에 일었다.

어느 날 관리 사무소 앞을 지나다 을 열고 들어가 물을지도 모르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아기 고양이 구출! 이란 제목과 함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내가 한참 어릴 적, 사람들은 들고양 도둑고양이 취급했다. 요물이라 생각했다. 잘해줘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게 고양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고양이가 집 안에 발을 들일라치면  그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바라본 사진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사진 속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온  명의 아이들. 아이들이 함께 했을 소중한 순간이 눈앞에 그려졌다. 고양이 등을 쓰다듬는 작은 손길에도 시선이 머물렀다. 


새로 이사 온 이곳 사람들 인심이 꽤 괜찮구나 했다.

정 붙이고 살만한 곳이라 생각됐다.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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