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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l 11. 2023

이것 하나만 넣고 끓인 복날 삼계탕

아. 초복을 맞아 복날 음식 이야기가 많이 올라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눈에 띄지 않아 제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합니다. 뭐 거창한 것은 아니고요.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이야기요.


지난 주말 초복 맞이 전야제라도 하듯. 미리 삼계탕을 끓였습니다. 월급날 10일을  앞두고, 제 통장은 달랑 몇 만 원 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요. 무엇이 고민이데. 신용카드 쓰면 될 것을. 알아요. 하지만 나름 가정생활 경제에 신경 쓰는 여자. 매달 월급날이면 일정 생활비를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저축 통장으로 이체를 합니다. 내가 가진 돈은 이것뿐이다를 되뇌며 한도 내에서 생활하려고 노력하죠. 물론 월급날 며칠을 앞두고 저축 통장에서 야금야금 돈을 빼오는 일이 다반사 이기는 하지만말이에요. 그래도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해 매번 제 자신을 칭찬하는 저입니다.


지난 토요일은 월급날을 딱 이틀 앞두고 있었어요. 짐작이 가시겠지만 정말 궁핍 그 자체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신용 카드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최소한으로 장을 봅니다.

제 장바구니 보고 가실게요.



단출하죠. 정말 꼭 필요한 것만 담았습니다. 객관적으로 과소비나 쟁여두기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요.


이 시점에서 저는 고민에 빠졌죠. 저 생닭 두 마리를 어떻게 맛 좋은 삼계탕으로 변신시키느냐 말이죠. 국물에 기운을 넣어줄 삼계탕 육수팩이 어른거렸습니다. 그것만 있다면 뭐 삼계탕 끓이기야 눈감고도 뚝딱이니까요.  네 네. 검색해 보니 13% 세일까지 해줘서 3,690원 하더라고요. 그것도 무려 3팩이나 들어 있고요.



하지만 커피 한 잔 값 정도 하는 육수팩을 장바구니에서 넣었다 뺐다 반복하기만 했습니다. 저 쫌 찌질한가요? 누군가 알았다면 남는 육수팩 하나 던져 주고 싶다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아무튼 현실이 그랬습니다.  결국 저는 육수팩을 덜어내고 결제 버튼을 클릭했습니다. 다시 한번 지독한 제 소비 습관을 칭찬해 주면서요. 너 그 돈 절약해서 잘 먹고 잘 살 거라며 진짜 진심 담아 칭찬해 주었어요.





다음날 도착한 생닭을 받아 들고 번뜩 든 생각.

죽으라는 법은 없죠. 전 치킨 스톡을 소환했습니다!


잘 닦은 생닭과 치킨 스톡 한 덩어리를 넣고 끓여주었습니다. 말이 한 덩어리지  비교하자면  캐러멜 하나 정도 되는 작은 크기죠. 물론 소금으로 좀 더 간을 해주었습니다. 통마늘이 보여 한 줌 집어넣어 주었고요. 한 시간을 푹 삶았더니 어느 맛집 부럽지 않은 국물이었어요. 거기다 마지막으로. 밥이 똑 떨어졌을 때 후루룩 끓여 먹으려고 사두었던 누룽지가 보이길래. 몇 줌 집어고 더 끓여 줬지요.


어멋! 나 장금이? 국물에 구수함까지 더해져 정말이지 감탄이 나왔습니다.


닭다리를 큼지막하게 뜯어 접시에 올려놓고 누룽지도 듬뿍 떠 올렸지요. 함께 주문한 배추김치를 썰어 놓고 뭐 쩝쩝대며 맛있게 어요. 남편과 아들은 맛있다며 연신 코를 박고 먹었고, 정말 맛있냐는 제 질문에 엄지를 척 날려 주었어요.


치킨 스톡으로 끓인 초복 맞이 삼계탕.

마음은 돈에 찌들어 궁핍하였으나 맛은 최고였습니다.

다음 중복 때도 어쩌면 또 삼계탕에 치킨 스톡을 넣을 것 같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꽤 괜찮은 맛이었거든요.


모두 건강한 여름 나세요.










대문 사진만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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