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시작되던 해. 한계를 극복해 보겠다며 겁 없이 새벽 수영을 등록했다. 이불 밖이 위험한 겨울이어야 그나마 등록할 자리가 있었다. 한겨울 새벽 수영이란, 상쾌함 보단 뼛속까지 아릿한 새벽 공기를 알몸으로 떠안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 디딘 수영장 바닥의 축축하고 차가웠던 그 느낌.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발끝이 나도 모르게 오므라든다. 새로운 도전은 설렘보다 긴장감이 훨씬 컸다. 물속에 퐁. 퐁. 퐁.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보며 태연한 척 나도 물속에 몸을 담갔다. 냉수같이 차가운 물속,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서 말이다.
느껴지는 싸한 느낌. 곁눈질로 힐끔힐끔. 위, 아래로 휘릭휘릭 훑어대는 그 느낌. 비록 뒤통수에 눈이 달리진 않았으나 알 수 있었다. 뱃살 빵빵 아줌마의 미모와 몸매가 셈이 나서 쳐다보는 것은 누가 봐도 아니라는 것을.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수영장 텃새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저 수영 좀 배워보겠다 왔을 뿐인데. 이럴 줄 알았음 동네 엄마 한 명 꼬셔서 같이 올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수영장에는 묵시적인 룰이 있었다.
나 같은 수영 어린이는 앞자리가 아닌 맨 뒷자리에 서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난 용기 있는 자여서 맨 앞자리를 사수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시력이 나빴다. (나중에는 도수 수경을 삼.) 또한 수린이 입장에서 강사님 말도 귀담아 잘 들어야 했으니 당연히 제일 앞에 섰던 것뿐이었다.
진도가 빠른 사람 순서대로 서면 강사님이 가르치기가 수월하다. 들쭉날쭉 할 것 없이 접영_평형_배영_자유형 이런 순서대로 가르치면 되니까 말이다. 심지어 장점도 있다. 선배들의 동작을 보면서 다음번 내가 배울 것을 미리 예상해 볼 수도 있다. 일종의 예습처럼 말이다.
이런 이유에서 수영 강습에서는 ‘자기 자리 찾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 친구 얘기는 달랐다.
내가 누워서 수영하기, 즉 배영에 막 맛을 들였을 즈음, 절친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너 요즘 수영 배운다고 했지,
수영장에 자기 자리가 있냐,
무슨 물속에서 니 자리 내 자리가 있어?”
얘기인즉, 친구에게 고질병인 요통이 자꾸 찾아왔고, 그 바람에 운동처방으로 수영을 권유받았다고 했다. 물을 좀비 보듯 무서워하기에 심히 고민했단다. 그러다 얼굴을 물에 안 담가도 되는 아쿠아로빅이 구세주라 생각하며 단번에 수강 등록을 했다고 했다.
첫날,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찌감치 도착. 맨 앞자리여서 부담스럽지 않으나, 집중력이 흩트러지지 않는, 중간에서 살짝 앞쪽에 자리를 잡고 섰다고 했다.
그때, 자기보다 연배가 좀 있어 보이는 분이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여긴 자기 자리라며 안 된다고 했단다. 수영장 안이라 쩌렁쩌렁 울려대는 소리에 이목이 집중됐고, 친구는 그 분위기에 압도당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고 했다. 한마디 말도 내뱉지 못한 채. 그런데 물러선 그 자리도 누구 씨 자리라며 거긴 안 된다고 했다는 거다. 그 바람에 제일 뒷줄 그것도 제일 후미진 구석으로 밀려나 찌그러져 있을 수밖에 없었단다. 폭풍이 몰아친 후 그제야 모두 제자리를 찾은 양, 평온함 마저 감돌았다고 했다. 운동을 하는 내내 씩씩거리기만 했고, 진심 열이 받은 친구는 폭주기관차가 되어 분함을 쏟아냈다. 당장이라도 그만 둘 듯이.
나는 수영 강습에도 몰랐던 룰이란 게 있다며 좀 더 다녀 볼 것을 권유했다. 어쩌면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다니다 보면 왜 그런지 이해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면서. 그리고 너의 1순위는 목표는 요통 치료라면서.
그렇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꽃꽂이 강습이 있던 날이었다. 이미 두 번의 강좌가 있었고, 나는 중간에 들어가는 입장이었다. 집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고 초행길이라 서둘렀다. 제일 먼저 도착한 아무도 없는 텅 빈 강의실. 행복한 선택의 고민을 하며 앉고 싶은 자리에 짐을 풀었다. 맨 앞자리에서 살짝 왼쪽으로 비킨 자리. 이 자리라면 강사님의 꽃 꽂는 모습이 정말 잘 보일 거라는 야무진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책상 위에는 비닐도 깔고, 꽃가위도 살포시 올려 두며 준비를 마쳤다.
그때 한 명의 수강생이 들어왔다. 오가는 인사는 없었고, 그녀의 첫마디는 “여긴 제 자리인데요.”였다. 말의 온도는 쌀쌀하기 그지없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말이었다. ‘각자 자리가 있구나. 내가 제일 늦게 등록했으니 뒷자리는 괜찮겠지.’하며 중앙의 제일 뒷자리로 짐을 옮겼다. 그녀도 그쯤이면 괜찮다는 듯 쓱 보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웬걸. 조금 있으니 난처한 표정의 또 다른 낯선 그녀가 나타나 말했다. “여긴 제 자린대요.”라고. 에잇. 도대체 주인 없는 자리가 어디란 말인가. 낯선 그녀가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거기가 니 자리’라는 무언의 말이다. 나는 또 주섬주섬 옆 자리로 짐을 옮겼다.
포식자를 피해 도망가는 메뚜기처럼 폴짝폴짝 몇 번을 뛰어다녔나 몰랐다. 시작 전부터 내 자리 찾기로 진을 빼서 그런지 유쾌한 시작은 아니었다. 문득 아쿠아로빅 내 친구가 떠올랐다. 물속에서 자기 자리 찾아 헤맸던 친구와 지상에서 내 자리 찾아 헤맸던 내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꽃꽂이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내 자리 찾아 옮겨 다닌 모습만 머릿속에서 무한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