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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면도 끝내고 세수했는데...순서가 틀렸다고?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정답이 없는 면도기 쇼핑

by 개복치남편

[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12)


“너도 이제 어른이다”

중학생이 될 무렵 코밑에 거뭇거뭇한 솜털이 자라 면도기를 써야한다며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다. 또래보다는 조금 일찍 난 편이었는데, 부드러운 솜털 주제에 제법 거뭇거뭇하여 당시 꽤나 신경 쓰였던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 말하길 한번 면도를 하기 시작하면 털이 더욱 억세고 짙어진다는 말을 듣고 면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c38f1a52-8033-418c-ac27-e7ee72eefae2.jpg 남자에게 면도란 나름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진 flickr]


내 또래의 소년들은 면도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아버지가 면도하시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친구들끼리 공유하는 깔끔한 면도 TIP등 을 통해 배웠다. 지금 소년들은 처음 배울 때부터 유튜브를 통해 면도하는 법을 검색해서 영상으로 배우지 않을까 싶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때면 세상 좋아졌다고 느낀다.


고등학생 때부터 매일 면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여드름이었다. 턱에 난 여드름 때문에 면도할 때마다 살이 잘려나가는 느낌이었고, 아침마다 턱에서 흐르는 피와 고름을 닦기 바빴다. 30대 초반까지도 성인여드름 때문에 면도할 때 고생했고, 불혹을 앞둔 지금에야 여드름이 덜 해졌다. 어떤면에서는 남성 호르몬이 약해졌다는 슬픈 이야기지만 더이상 면도할 때 여드름으로 고통받지 않는다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그렇게 아프다면 면도를 안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며칠만 면도를 안 해도 제법 수염이 길어진다. 덩치도 커서 면도 안 하고 나가면 삼국지의 ‘장비’ 같다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그래서 찾아낸 대안이 바로 전기면도기로 하는 건식 면도법이었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의 솜털과 달리 억센 수염이라 전기면도기로도 충분히 면도할 수 있었다. 다만 습식으로 하는 손면도기 보다 수염 자국이 많이 남았다. 뭔가 꾸미고 싶은 날에는 덥수룩한 수염 자국이 눈에 밟혔다. 패션으로 수염을 기르는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선이 짙은 외국 배우에게나 어울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b5931038-8c3f-49e4-a904-bd0bba420d73.jpg 어쩌면 문제는 면도법이 아니라 얼굴일 수도 있다. [사진 미션임파서블1 스틸]


나이가 먹어 아저씨가 되었을 때 거의 유일하게 좋은 점은 더 이상 수염 자국에 스트레스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오히려 아저씨가 된 지금은 좀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사실 아무리 애를 써도 없어지지 않기에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늘 가는 미용실에서 레이저 시술을 권한 적도 있다.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피부과에서 여드름 짤 때도 너무 아팠는데, 그 이상의 고통이라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차라리 부지런히 면도하고 말겠다.


나 같이 트러블이 많은 피부를 가진 이들이 덜 고통받으며 면도하는 방법을 온라인에서 찾았는데, 상당히 효과가 있어서 아래와 같이 정리해서 공유한다.


- 손면도기(습식면도) 보다는 전기면도기(건식면도)가 피부에 자극이 덜하다.

- 다중날(멀티블레이드) 면도기는 깔끔하게 면도가 되나 여러 개의 칼날이 피부에 가까이 닿게 되므로 트러블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1~2개의 칼날이 있는 일회용 면도기가 피부에는 차라리 더 좋을 수 있다.

- 면도하기 전에 따뜻한 물로 세안해야 한다. 그래야 피부의 노폐물이 면도할때 트러블을 덜 일으킨다.

- 깔끔하게 면도하려면 수염 결의 반대방향으로 하는 게 낫지만, 피부에는 순방향으로 하는 게 더 좋다. 그리고 한 부위를 여러 번 하지 말고, 1번만 지나가는 게 좋다.

- 털을 물에 불리는 게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샤워하는 중이나, 샤워 후에 하는 게 좋다.

- 면도할 때는 쉐이빙 크림을 사용하고, 면도 후에는 보습제를 발라주는 게 좋다.

- 면도할 때 상처가 나면 그냥 두지 말고 항생제 연고 등을 발라 주는 것이 좋다.

〈출처 : 닥터필러 피부과전문의 유튜브 계정〉


위의 면도법을 알기 전 나는 늘 면도를 먼저하고 세안했다. 무려 20년을 넘게! 다시 한번 사람은 늘 배워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위의 이야기 중 습식(손 면도)보다 건식(전기면도)이 피부에 더 좋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는 피부 상태가 좋을 때는 손 면도를 하고 트러블이 있을 때는 전기면도기를 사용한다. 깔끔하신 분들이 들으면 기겁할 이야기지만 사실 일회용 면도기를 사서 오래도록 쓰기도 했다. 날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일회용 면도기 중 3중날 이상이면 충분히 잘 되는 것 같았다.


일회용 면도기로 두 달 이상 썼던 적도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면도날이 비싸서였다. 아직 날이 잘 드는 것 같은데 바꾸기가 아까워서 계속 쓰다가 면도날이 무뎌져 고통을 맛보고 난 뒤에야 새로 사는 경우가 많았다. 검색을 해보니 일회용 면도기를 다시 쓰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3주 정도 사용은 괜찮다고 한다. 다만 사람들끼리 돌려쓰는 것은 금물이라고 한다.


61140cb6-2ef4-4248-9822-839f32e010b5.jpg 아들이 처음 면도를 하게 될때 아버지 마음은 어떨까? [사진 flickr]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나는 면도라는 말을 들으면 아버지가 떠오른다. 사춘기 시절 아버지는 내게 근엄하고 어려운 존재였지만, 딱 한 번 내게 장난을 치셨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면도하는 것이 싫어 푸릇푸릇하게 난 솜털을 내가 자는 사이에 손 면도기로 면도를 하려고 하셨다. 내가 잠에서 깨서 장난은 실패하셨지만, 면도를 가르쳐 주려 했다며 유쾌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생각난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추억이다.


그리고 얼마 전 아버지를 뵈었다가 뭔가를 주섬주섬 챙겨주셨는데 다름 아닌 면도기였다. 요즘 인터넷에서 광고하는 제품을 사봤는데 이제껏 써본 것 중 최고였다며, 내게 주려고 하나 더 샀다고 하셨다. 유통수수료를 줄이고 온라인으로만 홍보, 판매하는 상품이었는데, 아들 선물 주려고 스마트폰으로 주문하시는 모습을 생각하니 참 애틋했다. 면도기 덕에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는 추억 하나가 더 생겼다.




▼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 를 모아서 책 <결제의 희열>로 출간되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편집자와 열심히 고치고 다듬었습니다. 신문에서는 말할 수 없었던 좋아하는 브랜드에 관련된 내용도 새로 써서 넣었습니다. 부디 올해 독자님들께 모든 결제가 행복을 불러오길 바랍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5489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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