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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치남편 Feb 20. 2019

날개

1분 우화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날개를 달고 태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새로운 종의 탄생 이라느니, 자연파괴에 대한 댓가라는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지만, 한 세대가 지나 모든 인간이 날개를 달고 있기 시작하면서 인간에게 날개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인간이 날개를 달고 있다고 해서 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날개라는 명칭도 지금에 와서야 사용된 것이지, 당시에는 그냥 등에 달려 있는 거대한 몸의 일부분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걸어 다녔고, 그대로 살아갔다. 오히려 날개는 불편했다. 언제 어디서나 날리는 깃털들과 이제껏 인간의 몸에 맞게 디자인된 사회시설들을 이용할 때의 불편함은 예상보다 컸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았다.

이제껏 인류가 만들어온 인체의 균형미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몇몇의 사람들이 날개용 주머니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상품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어 날개를 감추고 다니는 것이 일종의 매너가 되었다. 주머니의 메이커에 다라 사람의 사회적 계급이 결정되기도 했다. 마치 20세기의 명품과 같았다. 의학계에서는 연구 끝에 날개 제거 수술이 개발 되었다.


이 수술은 첫 도입 이후 사회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는, 유행이 되어버렸다. 수술의 문제점은 한번 제거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과, 수술비가 비싸다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앞 다투어 수술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날개 달린 인간과 날개 없는 인간으로 계급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주류는 날개 없는 인간이었다. 날개 제거 수술은 어느덧 포경수술처럼 보급되었고, 날개가 달려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받지 못할 만큼 사회적 약자였던 것이다.


이제 날개는 일종의 낙인이 되고 말았다.
 

태어나자마자 신생아들은 날개 제거 수술을 받았고, 인류는 예전처럼 날개 없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날개 달린 인간을 기피했고 마치 장애인, 부랑자로 취급했다. 사람들은 거대한 담을 쌓고 날개 달린 인간들을 그 안으로 이주시켰다. 마치 먼 옛날 인디언과 나병 환자들에게 그랬던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날개 없는 인간들의 지역에서도 사회적으로 파산하여 날개를 제거하지 못하면 여지없이 담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담 안과 그 밖은 다른 세상이 되어갔다. 어느새 담안의 사람들은 인류에서 제외되었다. 담은 마치 굴뚝처럼 높아졌다.


시간이 지나 인간에게 날개가 없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을 때, 굴뚝 같이 높아진 담 위에 누군가 섰다. 그는 날개가 있는 인간에게도 인간다운 처우를 해달라고 주장했다. 날개가 달렸지만 당신들과 우리는 같은 인간이라고 매일 같이 소리쳤다. 날개 없는 인간들은 처음에는 무시했으나 담 안 사람들의 그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결국 그를 청소하기로 하고 담 위로 경찰들을 보냈다. 경찰에 쫓기며 담 위를 도망다니던 그는 결국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고, 높은 담 위에서 투신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알리려 했다. 


그는 몸을 던졌으나 죽지 않았다. 투신한 그의 몸이 바닥에 닿기 1미터 전 그의 날개가 펴지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것이 인류의 첫 비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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