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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치남편 Oct 25. 2019

내 인생의 봄?

무드셀라 증후군(mood cela syndrome)



봄을 주제로 한 세 가지의 그림이 있다. 첫 번째 그림은 맑은 하늘아래 화사한 꽃밭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그림이고, 둘째 그림은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는 거리이다. 어둑한 거리에 인적은 드물다. 셋째 그림은 강한 추위에 옷을 얇게 입고 나온 사람들이 옷을 여미고 다니는 그림이다. 세 가지 그림의 그림 실력은 마치 한사람이 그린 것처럼 동일하다면, 어떤 그림이 가장 잘 그린 그림일까? 


사람의 일생을 계절에 견주어, 흔히 자신이 살아온 나날들 중에 가장 즐거웠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봄이라 말하고는 한다. 봄의 따뜻한 날씨와 눈이 녹고 새로운 식물들이 자라나는 걸 비유한 표현으로, 노래와 문학작품, 영화 등에 널리 쓰이고 있는 표현이다. 예전에 나도 첫사랑을 추억하며 자주 이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 분명 연애는 한겨울에 시작되어 사계절을 다 거쳤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나는 항상 봄 같은 나날들로 기억했다. 하지만 ‘내 인생의 봄’이라는 표현은, 다시는 사랑을 못하게 될 것이라는 걱정을 불러왔다. 왜냐하면 봄이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때때로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미 내 인생의 가장 즐거운 시절은 지나갔고, 남은 것은 고통뿐이니 여기에서 끝내는 것이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므두셀라 증후군 (moodcela syndrome), 그것이 당시 나의 상태에 대한 진단이었다. 그것을 깨우쳐준 것은 당시의 일기장이었다. 일기장에는 마치 서로를 마주보고 단검을 쥐고 껴안듯이 서로 상처 입혔고, 입었으며, 그것이 사랑인줄 알았던 첫사랑의 암운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내 인생의 봄’날들은, 정작 봄 같은 나날은 아니었다. 멋대로 지난날을 봄날이라며 그리워하던 나는, 현재도 과거도 봄을 살지 못한 것이다.


첫문장의 질문에 대한 답은 세 개의 그림에 같은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화사한 날들, 비오는 날씨, 꽃샘추위 모두 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봄을 아름답게만 생각했던 것은 기억의 왜곡이었다. 문학작품 속 주인공의 회상 속 봄이나, 노래가사의 봄날 모두 아름답기만한 시절을 말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아름답게 '기억'되는 시간일 뿐이다. 진짜 봄은 비도 오고 춥기도 하고 미세먼지에 고통스럽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봄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내 인생에 봄'은 오지 않는다. 지나간 날들을 봄날이라 치장하는 순간부터 '내 인생의 봄'은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이렇게 답하겠다. “봄을 살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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