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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석 Mar 24. 2020

소속되지 않으려는 세대

부조리를 거슬러서

거대한 기둥에 기대어 있을 때 다리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누가 모를까요.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집단에 소속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합니다. 가족, 친구, 학교, 직장, 국가 등등등 우리는 수많은 집단에 소속돼어 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어딘가에 소속되 있다는 사실은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한 집단에 공조하기도 하고, 또 어떤 집단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기도 합니다.


개개인은 서로 개채대 개채로서 주관성을 가졌고 따라서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선천적으로 사려 가능한 완전한 객관의 영역이 있긴 하지만 그러한 객관성은 사람의 인식 영역의 부분적인 기능일 뿐입니다. 하지만 어떤 집단에 주관성을 위탁하고 집단 내 약속된 개념들에 충성하게 되면 개인과 개인은 비로소 하나가 됐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엄청나지요. 그래서 개인이 어떤 집단에도 끼지 못한 체 추방당한다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족하여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외로움이죠.


하지만 어떤 집단이던 불완전한 개개인들이 모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죠. 몰상식한 사람이 있듯 몰상식한 집단 역시 존재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몰상식한 짓을 할 때 개인 대 개인으로서는 마땅한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단은 다수의 개인이 모여서 만든 실채 없는 약속이기 때문에 집단으로서 몰상식한 행동을 하게 되면 개인이 개인으로서 대응을 하려고 해도 그 대상이 명확치 않아 그대로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우리는 부조리라고 부릅니다. 사실 부조리가 될 만한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그 요소가 꼭 부조리가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면 사회적 가치들은 상대적이기 때문이죠. 타자의 입장에서 부조리처럼 보이는 행동도 그 집단 안에서 타당하게 여기고 부조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부조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다름이죠. 여기서 중요한 점, 타 집단과 내집단이 서로 완전히 다른 범주를 가지고 있을 때 만 각 집단 내 부조리가 상대성에 의해 소거되지만 만약 같은 범주를 공유하거나 한 집단이 타 집단에 속해 있는 소모임이었을 경우 작은 집단내의 부조리는 소거되지 않고 일종의 오류로서 남아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국가가 서로 다른 국기를 지니는 것은 그들 마음이죠. 이것은 다름입니다. 완전히 다른 범주의 약속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어떤 모임이 갑자기 우리나라의 국기는 이제 삼각형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집단으로서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이전에 법령에 어긋나는 오류가 됩니다. 때문에 부조리는 사회를 조망할 때 집단을 감각하는 통각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한 모임이 보편적으로 타당하게 여겨지는 상식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입장을 취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집단을 집단 내 소모임이 아닌 또 다른 집단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한데 어떤 모임은 이 부조리를 이용합니다. 이미 한 집단에 소속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소속감을 만들기 위해 부조리를 자행하는 것이죠. 좋은 집안의 모습은 다 비슷해 보이지만 불우한 집안의 모습은 제각기 다른 수천 가지 사연을 안고 있다고요, 인간이 모인 집단 원형 자체를 비교해보면 다 비슷비슷하지만 집단마다 각자 소속감을 위해 기기묘묘한 일을들 하곤 합니다.


유대교의 할례 의식을 좋은 예로 들 수 있군요. 유대교는 예나 지금이나 폐쇄적인 종교지요. 유대교는 외부인과 교인을 구분하기 위해 할례 의식을 만들어넸습니다. 할례는 기존 상식으로 생각하기 힘든 파격적인 방법이었고 이는 외부인이 보기에 불필요한 고통을 강요하는 부조리였습니다. 때문에 유대교는 폐쇄성과 동시에 강한 집단 결속력을 얻게 되죠. 덕분에 유대교는 거친 역사 속에서 그 원형을 잃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성인 중 하나인 사도 바울은 더 많은 포교를 위해 폐쇄성을 완화하고자 했습니다. 본인부터 일단 유대인이 아녔거든요. 그리하여 바울은 할례 의식은 필요 없다, 마음의 할례를 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계 종자에게 할례를 강제하는 건 부조리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유대교인들 보수파는 사도 바울을 비롯한 개혁파가 오류를 범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에게 오히려 너희들이 부조리를 행한다고 한 것이죠. 아시다시피 사도 바울의 주장을 기초로 한 이들은 유대교가 아닌 그리스도교로 이어집니다. 바울이 유대교의 교리에 반하는 주장을 함으로써 그리스도교로서의 집단성이 강해진 것이죠. 물론 이 한 사건 만으로 그리스도교와 유대교가 나눠지지 않았지요. 하지만 일련의 과정들이 두 종교를 나누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집단을 위해 생겨난 부조리들이 있죠. 할례 의식만큼 고통을 안겨주진 않지만 적어도 귀찮다, 피곤하다는 예로 회식이 있겠습니다. 네이버 웹툰 골방환상곡 중 한 편을 보면 부장님은 간 수치 걱정, 팀장님은 와이프 등쌀에, 차장님은 아이들 얼굴 못 봐서, 사원들은 자기 시간이 없어서 회식에 가기 싫어하지만 다들 나와서 위하여를 외칩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이 만화에서 회식은 집단의 결속을 위한 부조리로서 아이러니를 유발하는 좋은 장치입니다. 사실 몇 년 전 만 해도 이런 부조리는 빈번히 행해졌습니다.

집단을 위해



이러한 부조리는 어떠한 의식이었고 신성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이러한 부조리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로 인권 의식의 발전과 기술 발전을 예로 듭니다. 다른 시대에선 어느 한 집단의 특정한 부조리에 불만을 품고 집단을 빠져나온 후 또 다른 집단에 들어가 그 집단의 다른 부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집단을 유지하고자 행해지는 부조리의 특정 내용을 싫어할지언정 그 부조리 존제 자체에 의문을 품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하나 인권 함양과 공교육으로 인해 사람들은 인류와 사회에 대한 포괄적인 개념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집단 유지를 위한 부조리보다도 사람으로, 사회로서, 나라로서 마땅히~해야 한다는 인류를 포괄하는 집단의 약속을 먼저 배웠지요. 그리고 인권과 같은 객관성에 한없이 가까운 주관적 입장. 즉 모든 인간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황금률들을 교육 과정 내 피부로 와 닿게 학습했습니다.


이렇게 학습한 포괄적 집단은 이전까진 그 실체를 느낄 경험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술, 특히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여 전 세계가 연결되자 익명성 속 개인으로서 전 세계에 퍼진 수많은 외집 단과 내집단을 비교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집단 속에서 보지 못한 내집단의 부조리, 그리고 외집단이 자신의 부조리를 대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는 중에는 두 집단 간 오류가 나지 않을 포괄적 개념으로서의 집단(인권을 비롯한 황금률)이 있다는 사실을 자연히 깨닫게 됩니다.


위 과정을 겪은 세대들은 사회에 나왔을 때 어느 '작은' 집단에 관심이 없습니다. 국가를 위해 죽는다는 개념도 우선 의심 먼저 합니다. 그 국가가 수호할 가치가 있는 국가인가? 인류라는 거대한 집단에 있어 해가 되는 작은 집단이 아닐까?라고요. 때문에 그 작은 집단들이 요구하는 부조리들도 자연히 거부합니다. 여느 집단이 '소속감'이라는 당근을 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다른 손에 들린 부조리라는 채찍을 보고 뒤 돌아 나갑니다. 어떠한 집단에 소속되더라도 여전히 자신은 그간 배워왔던 인류로서의 집단에 속해 있을 뿐, 이 작은 집단은 잠시 나의 가변적인 '성질'이 될 뿐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과거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이혼이나 이민 등등에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직관적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하는 종교에 대해서도 쉽게 냉담해집니다.


부조리 그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그들은 여느 집단에도 소속되지 않으려 합니다. 작은 집단을 버리고 포괄적 집단만에 기댄 그들은 처음엔 실존적 위기를 겪게 됩니다. 어딘가에 위탁해 두었던 자신의 주관성을 마주하고 자아에 대한 곡예 같은 고민들을 하겠죠. 몇몇 이들은 그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적당한 집단으로 돌아와 과거의 일을 답습하게 되겠지만 위기를 견뎌넨 이들은 포괄적이고 순수한, 집단 원형에 가까운 개인과 개인, 그리고 그 개인과 또 다른 개인들의 관계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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