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가 우울하다는 걸 확인한 후 죽지 않기 위해 해 볼 수 있는 간단한 조치들을 나열해보겠다.
1. 상황에서 벗어나기
살면서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면 굳이 죽음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죽음을 원한다는 것 자체가 특수한 상황에 빠져 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삶의 입장에서 자살은 무조건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보통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살기 포기한 뇌가 의지에 따라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상식적으로 풀 수 없는 매듭은 가위를 써야 한다. 비교적 가벼운 일 일지라도 주관적으론 죽을 만큼 심각한 일 일 수밖에 없다. (또 이러한 시각차가 더더욱 상황을 각박하게 만든다.)
만약 당신이 곳장 죽고 싶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그대로 쓰러지는 것이다. 비유적인 말이지만 실제로 쓰러져봐도 좋다. 곳장 그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심신을 안정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평소 건강하고 성격도 좋던 백칠복이란 아주머니가 극장에 갔다. 근데 위압적인 커다란 스크린이 백 칠복 아주머니도 모르던 무의식적 트라우마를 자극했고, 공황 상태에 빠져 버렸다. 이때 가여운 백 칠복 아주머니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당장 극장에 나가 안정을 취하는 것이다. 만약 일어설 수 없을 만큼 공황이 심각하다면 소리를 지르거나 옆 사람을 툭툭 쳐서 도움을 청해야 한다.
예시가 너무 한정적이라면 다음 예시를 보자. 김최갑이라는 아저씨가 있다. 김최갑씨가 다니는 회사 상황이 어려워져 야근이 잦아졌다. 야근 때문인지 몸이 찌뿌둥해 병원에 가보니 허리에 염증이 생겼다고 한다. 오래 앉아있지 말라고 하는데,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 점점 나빠지기만 한다. 오래 집에 못 들어오다 보니 아내와 사이가 나빠졌고, 요즘엔 만날 때마다 다툰다. 딸과 아들은 얼굴을 못 본 게 언제인지. 어쩌다 마주쳐도 서먹서먹하기만 하다. 어느 날부터인가 김칠복 씨는 밤마다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한심했고,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다. 자꾸 옥상에 올라가고 싶어 졌다. 이때 김칠복 씨는 무얼 해야 하는가? 일단 야근을 그만둬야 한다. 야근을 안 하면 허리 염증도, 가족들과의 관계도 다시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정신과에 가 약을 먹거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순서이다.
무언가 자신을 죽음에 몰아넣는 일이 있다면 우선 거기서 벗어나는 게 최우선이다. 병원, 약, 상담, 소소한 변화는 2차적인 문제이다. 날 죽이려 드는 괴한을 피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 괴한을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때 나도 칼을 들거나 경찰을 부르는 등 2차 조치를 취하는 것이지,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나의 안전이다.
자살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확실한 치료법은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 되는 일들을 그만두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부모님이, 상사가, 애인이, 배우자가, 가족들이 곤란해하거나 나를 향해 무책임하다고 소리 지르는 것이 걱정될 수 있다. 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훗날의 여파가 감당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일단 그런 것들도 일단 살아야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2. 생각 줄이기
우울한 사람이 정말 답 없이 우울해질 때도 있지만 비교적 괜찮을 때도 있다. 답 없이 우울한 때가 길어질수록 자살의 위험도는 더 높아진다. 개인적으로 이 우울의 주기를 조절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생각을 조정하는 것이다. 우울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바로 우울하고 슬픈 감정을 억누르거나 아니면 감정에 빠져버리거나 양 극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우울함을 키우는 일이다. 픽사 애니메이션인 인사이드 아웃에서 나오듯, 슬픔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나아지게 한다. 슬픔에 얽매이란 소리가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내가 슬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마음에 강하게 작용하는 법칙이 셋 있다. 하나는 앞서 말한 시간이고, 둘째는 몸의 상태이다. 그리고 셋째는 인간의 인식이다. 그저 바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크게 호전시킬 수 있다. 모르는 문제를 고칠 수는 없는 일이다. 치유는 잠시 여기서 멈춰 서서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느낌인지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는 불교 수행자들이나 일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명상'에 도달한다. 정확히는 마음 챙김 명상이다. 간단히 마음 챙김 명상 방법을 소개하자면 눈을 감고 호흡에만 집중하며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도록 한다. 그러는 도중 번뜩 드는 잡생각들을 '그렇구나'하고 인식한다. 그럼 그 잡념은 자연히 물러가고, 그렇게 계속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한다. 이는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일종의 훈련이다. 나는 마음 챙김 명상을 헬스 트레이닝에 비유하고 싶다. 마음 챙김 명상이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힐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있을 감정의 파도를 버티게 할 감정 인식 기능을 단련시키는 것이다. 감정의 인식은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며, 잠깐의 충동으로 후회할 만한 짓을 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내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보통 자살은 대부분이 잘못된 선택이니 마음 챙김 명상은 스스로 죽지 않기 위한 실리적인 훈련이라 할 수 있겠다.
명상이란 것이 쉽지 않다면 글로 쓰는 방법이 있다. 인식으로 감정을 가두는 것이 어려우니 글로써 감정을 가두는 것이다. 이건 그저 우울할 때 보다 고민이 많을 때, 슬플 때, 화가 날 때 유용하다. 왜 고민이 나는지, 왜 슬픈지, 왜 화가 나는지, 무엇 때문인지, 내가 뭘 원하는지 글로써 적어나가다 보면 상황을 또렷하게 바라보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한편 시간으로도 감정을 다잡을 수 있다. 이 방법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 고민이 넘쳐흐를 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빈 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을 온전히 그 감정만을 위한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음껏 감정과 고민을 바라보고 느끼다 보면 적어도 일단 일상생활에서 예기치 못한 감정의 역류를 예방할 수 있고, 어쩌면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게 될 수도 있다.
3. 몸과 정신은 밀접하게 연관돼있음을 이해하기
아무 이유 없이 우울하다면 몸에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영혼의 존재를 믿던 아니던 사람의 육신은 살점 기계일 뿐이니, 바르게 사용하고 때때로 정비해 줄 필요가 있다. 본인의 정신이 원하는 삶과 다른 육체가 원하는 삶의 루틴이 있으니, 바른생활을 가지도록 해보자.
바른생활을 하는 방법으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삼시 세끼 주기적으로 적정량을 먹기, 주변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30분 정도 걷는 정도의 운동을 하기, 햇볕을 자주 쬐기, 등등 상식적인 방법들이 있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운동과 햇볕이다. 둘 다 직접적으로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으며 운동은 삶에 활력을 주고 햇빛은 우울감을 달래준다. 즉 볕을 쬐며 30분에서 한 시간 산책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실전 압축 태라 피이다 말하겠다.
바른생활이 몸에 정착되게끔 스스로를 조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면 아이라고도 알려진 방법인데, 의도적으로 내게 선물을 하나씩 줘가며 마음을 조련하는 것이다. 위에 말한 산책을 무사히 끝마친 상으로 초콜릿을 하나 먹어주는 식으로 말이다. 살짝 바보 같은 감성 충만한 아이가 내 마음속에 있다. 우울할 땐 울리고 달래주며, 칭얼댈 기미가 보이면 미리 쉬어준다.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너무 다그치지 말고, 어린이에게 대하듯 관대해주자. 그 어린아이는 결국 자기 자신이니 말이다.
현대 교육은 우리가 각자 특별하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게 맞다. 하지만 그 특별함은 탁월함으로 자주 오해받는다. 내면 아이는 이런 오해를 풀기에 알맞다. 모든 사람은 사랑받는 데는 어떤 이유도 필요 없다. 어린아이의 경우 어떤 능력도 수식도 없이 순수하기 때문에 사람의 사랑을 쉽게 이끌어넨다. 하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자아를 직업에 위탁하고선 능력 없이는 살 가치가 없다고, 이 것이 나의 모든 것인 양 살아간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순수한 사랑을 받았던 어린아이이다. 탁월함에 잊고 있던 특별함으로 돌아와야 한다.
4. 병원 가기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약과 상담이 최고다. 잠 안 자려고 파스 붙이고 치약 바르고 찬물 세수하고 따귀 때리고 해 봤자, 카페인 드링크 한잔이면 끝나는 것처럼 일단 약을 먹으면 살아갈 길이 트인다.
많이 좋아졌다곤 하나 정신과 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 우울증 약 성분인 세로토닌은 몸에 나타나는 그 작용이 카페인보다 덜 심하다. 카페인은 잘 드는 사람이 먹으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잠이 안 오고 하는데, 세로토닌은 그런 정도로 까지 존재감을 내뿜지 않는다. 그냥 은근히 좋은 일 있을 때 기분이 좋고, 할 것이 있을 때 하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의사들은 흔히 먹는 비타민에 비유하기도 한다.
정신과 약의 편견에 가장 가까운 건 공황장애 쪽에서 먹는 긴급 약인데, 이 경우는 간단히 말해 수면제라고 보면 된다. 어떤 큰 심리적 충격이 있을 때, 이를테면 공황이 온다던가 자해 충동이 인다던가 하면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먹으라고 처방해준다. 그래서 먹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멍해지고 졸음이 온다. 마치 쌘 감기약을 먹은 다음과 비슷한 느낌인데 그렇게 한숨 자고 나면 한층 상쾌해지는 것도 같다. 잠이 오니 먹고서 운전을 하는 등 정교한 조작이 필요한 일을 하면 안 되고, 외부 기전으로 정신이 몽롱해진다는 게 살짝 불쾌한 경험일 수 있으나 그냥 공황을 겪어 보네는 것보단 약을 써서 공황을 겪지 않는 것이 치료에 훨씬 도움이 되니 꼬박꼬박 먹어야 한다. 약이 약하지 않고 부작용도 조금 있지만 여타 다른 평범한 약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만약 긴급 약을 처방받았다면 유용히 사용하도록 하자.
전문가에게 받는 상담 역시 효과적이다. 그들이 하는 상담은 일반인이 해 주는 경청과 다르다. 정신과 상담은 환자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상담을 한다. 그들은 적절한 질문과 전략적 경청으로 내담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을 도와준다. 문제는 돈과 시간일 뿐이니 일단 받아서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
5. 예술
예술은 고난과 역경을 풀어주는 최고의 해독재이다. 사람을 보고 취미를 가지라고 하는 것은 곳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표현해보아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취미를 가지며 이러한 사람이 되는 것, 또는 저러한 일을 하며 저러한 사람이 되는 것 모두 자신을 정의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드러네는 행위이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 취미나 가질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을 어떤 취미에 얽매는 것이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예술을 추천한다.
예술은 원초적이어서 호불호가 없고 뭐든지 한번 숙지하면 평생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 또한 다른 자극은 우울하면 그 자극이 반감이 되지만, 예술은 슬플 때 그 자극이 더 강렬해진다. 또한 사람의 감정은 직설적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예술로 승화시키면 논리적 해석 없이도 감정표현이 가능해진다. 때문에 예술은 두고두고 가다듬으며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도 쓸만하고, 죽음이 다가오기 전 마지막에 마지막 보루로서 활용할 수 있다.
예술은 특별한 자극을 받는 센스와 자신의 것을 만드는 빌딩으로 나뉜다. 글을 읽고, 노래를 듣고, 그림을 감상하고, 춤을 보는 것은 센스이며, 이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는 것은 빌딩이다. 무얼 해도 좋지만, 나는 빌딩을 추천한다. 뭐가 됐던 편한 것으로 골라잡아 자기 자신의 무언가를 표현해보자. 첫째로 생각이 정리되고, 둘째로 감정이 해소되며, 셋째로 성취감을 느낀다. 따라서 예술은 죽지 않을 탁월한 방법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