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근 2년간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임대주택단지 아파트 옆에 있는 복지관에서 근무하였다. 그곳에서 일하며 나이 드신 분, 가난한 분, 장애가 있으신 분들을 잔뜩 보고 그들의 이야기도 잔뜩 들었다. 그런 분 들 중 유독 기억에 남는 분이 있으시니 바로 H할머니이시다.
H할머니는 매일같이 복지관에 와서 밥을 타 가지고 가신다. 그런데 그분이 특별히 요청하신 건지, 그분 밥은 플라스틱 용기가 아니라 비닐에 따로 싸서 드려야 했다. 그분은 한 3시쯤, 도시락을 받고서도 본인이 만족하실 때까지 로비에 앉아계시곤 했다. 그러다가 가끔 심심하면 복지사님들에게 ‘늘 감사드려, 모두 건강하시고, 그래요. 일 보세요. 모두 행복하시고...’하며 길고 긴 안부 인사를 하고 가신다. 하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으니, 바로 그 할머니의 몸에서 참기 힘든 악취가 난다는 것이다. 예측컨대 잘 안 씻는 건 고사하고, 할머니 입에 이가 다 빠진 지라 양치를 할 수가 없어서 이런 냄새가 나는 것 아닌가 싶다. '복지사나 된 사람들이 무슨 냄새 가지고 투정이냐' 싶은 독자가 있을 수 있지만 글쎄, 복지사도 사람이고, 코가 있다. 만약 H할머니가 사무실에 왔다 가면 환기를 하고 향수를 뿌리기 전 까진 정상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였으니, 여간 민폐가 아니었다.
거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할머니는 병세에 가까워 보이는 피해망상이 있었다. 뭐가 그리 원망이 많으신지, 긴 안부 인사를 듣고 있자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애꿎은 이웃 주민들 험담을 하기 시작하신다.
“이 할머니는 좋은 사람이잖아, 그렇지? 복지관 사람들도 좋은 사람이고. 그런데 그 연놈들은 심보가 못돼먹었어. 아주 지옥년들이야 지옥년들. 남들 못 살게 굴라고 작정을 했어. 어쩜 그렇게 심보가 고약한지, 여기 사람들은 다 착하잖아, 베풀고, 이 할머니도 그래. 근데 그 놈들은, 아주 욕심만 많고 사람 못 살게 굴어.”
나는 지옥년이라는 욕을 여기서 처음 들었다. 그 험담을 듣고 있자면 이웃들이 자기를 괴롭히려고 소리를 낸다던가, 욕심이 가득하다던가, 그냥 못돼먹었다던가 등등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 태반이였다. 다행인 건 있던 일을 부풀려서 험담을 하는 데 그친다는 점이다. 없는 일을 만들어 피해망상을 하신다면 그땐 그저 불편한 민원인으로 치부할 수 없을 테니까. 실제로 그런 분이 한 분 계셨다. 이웃집에서 자기 돈을 가져가고, 털을 뿌리고 간다고 하소연을 하셨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분은 그 억울함을 풀 곳이 없어 이곳저곳 난동을 부리다가 결국 어느 날 경찰이 보는 앞에서 복지사 한 분을 폭행하였고 그 날로 강제 입원을 당하셨었다. 그 후 소식은 모른다.
각설하고, 할머니의 험담이나 악취를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 있다. 여기서 이웃 주민 편을 들면 할머니 심기를 거스르게 된다면 ‘지금 자네도 나 무시하는 건가? 이 할머니 가난하다고, 꼴 보기 싫다고 무시하는 거야?’ 라며 따지실 게 뻔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같이 이웃 험담을 할 수도 없으니, 그저 악취를 참아가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할머니가 빨리 가시길 바랄 뿐이다. 당연히, 악취에 관해서도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2년 가까이 있으면서 복지사 선생님 한 명이 총대를 매고 한번 말했던 게 다였을까. 그때 그 복지사 선생님은 며칠에 걸쳐 찾아오는 H할머니를 상대하고서 일이 잠잠해진 후 특별 휴식 시간을 요구했다. 어쨌건 곁에 이런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좋은 건 영화 기생충을 볼 때 스토리 코드인 ‘냄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 말고는 없다.
그런 H할머니를 보고서 1년 좀 넘었을까, 로비에 일이 있어 나와 앉아 있는데 여느 때와 같이 할머니가 다가왔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처음 듣는 말을 하시는 것 아닌가.
“자네 순경, 경찰이 무섭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말을 이었다.
“나도 경찰은 무섭지 않아, 병신육갑이 무섭지. 나도 처음에는 장애인들 보고 마음이 아팠는데... 15년 전 여기 와서 장님을 처음 봤는데 도우미를 끼고 걷더라고. 그걸 보고 안쓰러워서 밥도 사주고 그랬는데... 여기엔 다 휠체어 타고, 목발 짚고. 주먹이 하나 없네 손가락이 하나 없네. 응? 그런 사람들 많잖아. 그런데 겪어보니 병신육갑이 왜 병신육갑이라는지 알겠어. 그 사람들은 선이 없어, 막 때리고 욕하고... 아예 상종을 말아야 해”
아하, 대충 알겠다 싶었다. 장애우들이라고 착하지 않다. 특히나 가난한 장애우들은 신체적 불편함을 보조할 수단이 많지 않아 예민한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많다. 그렇기에 그분들을 배려해 줘야 하고, 또 그런 와중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장애우들이 대단한 것이다.
한데 보통 사람들은 장애우를 처음 만났을 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진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 역시 사람이고, 마음에 안 들면 역정을 내고 짜증도 부린다. 아마 할머니도 장애우 이웃에게 잘해 주려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다투시고, 그것 때문에 장애우와 이웃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빠졌구나. 그래서 지금은 장애우면 다 싫어하고 이웃이면 다 싫어하는구나 생각했다.
내가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던 말건 할머니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이 할머니가 복지관에 보면 마음이 편하고, 걸을 때도 느긋하게 걷는데 그리 가다 보면 마음이 편찮고 자꾸 걸음이 빨라져.”
이건 아마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피해망상이 아닐까? 할머니의 눈에 장애우와 이웃들은 이미 악당들이었다. 하지만 이는 순전히 할머니의 시선이고, 악취를 풍기며 험담을 해 대는 할머니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할머니의 논리로는 장애우는 성질이 더러우니 벌을 받고 도와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늘 이런 생각을 한다. 할머니, 할머니도 만만치 않게 성질이 더러운데, 그럼 할머니 도시락 지원을 끊을까요?
병신육갑을 욕하면서 병신육갑을 떠는 할머니의 말씀을 잘 곱씹어 보면 우리는 사회적 적대심엔 자기모순의 씨앗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을 때 우리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곤 한다. 마치 할머니가 이웃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가 그 할머니를 대할 때와 같이. 그러나 불편한 기색이란 타인의 마음에 안 들기 위한 태도이다. 만일 모든 일에 완벽한 판단을 하는 공정한 재판장이 있다면 그 재판장은 그들이 먼저 나에게 먼저 -장애인들이 이 할머니를 못 살게 굴어서, 할머니가 악취를 풍기고 민폐를 부려서- 라는 유치한 변명에 개의치 않고 나에게도 남의 마음을 해쳤다는 죄몪으로 심판을 내릴 것이다.
우리는 늑대를 피하려 늑대의 탈을 뒤집어쓰는 자기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사냥꾼의 활에 맞아 쓰러지면서 나는 늑대가 아니요~ 외쳐봤자 때는 늦었다. 우리는 자비와 포옹을 무기로 늑대를 개로 길들여야 한다. 그리할 때 늑대들은 탈을 벗고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 서로 겁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도, 할머니도 장애우도 전부 사람이다. 우리가 할머니의 악취가 싫다고 할머니를 매몰차게 대하면, 우리는 할머니에게 똑같이 악취를 풍기고 있는 꼴 밖에 더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