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그리고 우리를 위한
초등학교 특수학급의 경우, 매 학기 1회 이상 전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특수학교에 오래 있었던지라 장애인식교육은 참 오랜만에 해본다. 거의 10여 년 만에 해보는 것 같은데, 강산이 변한다는 그 시간 동안 장애인식개선교육의 방법도 조금은 변해있었다.
내가 처음 교단에 섰던 2000년대만 해도 장애인식개선교육은 특수교사가 직접 해야 하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해당 교육에 대한 아이디어가 특수교사 커뮤니티에 많이 있었고, 각 학교마다의 특성을 고려하여 특수교사 개인이 많이 고민을 해서 수업을 만들어냈었다. 내 생애 첫 장애인식개선교육은 메시지는 이것으로 기억된다.
야, 너도 장애인 될 수 있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때의 장애이해교육은 장애란 타고나는 것이 아닌,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매우 강조했었다. 그래서 너도 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니, 학교에 있는 장애인 친구들 놀리지 말고 똑바로 살아라, 이런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던져주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저런 스타일로 교육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긴 하지만 그 수가 예전만큼 많지는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장애인식개선교육은 2010년 중반에 실시했었다. 6학년 어느 반이 첫 수업이었는데 맨 뒷자리 앉은 애들 수업 태도가 아주 가관이었다. 킥킥거리고 웃는 학생, 말 끝마다 리플 다는 학생 등등. 수업 중 열이 받은 나는 어느 학생에게 "너 그 입 안 다물어?"라는 폭언을 날리기도 했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 가운데 수업을 어찌어찌 진행했고, 수업을 마친 나는 수업 감상문을 아이들에게 받았다. 어느 학생들은 내 수업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었다.(지금도 매우 놀라운 피드백) 하지만 맨 뒷자리 학생들은 'MC무현 장애인 됐노'와 같은 말도 안 되는 감상을 적어 놓아 담임선생님께 그대로 인계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이 날 했던 장애인식개선교육이 간간이 떠오른다. 이 교육내용은 특수교사 커뮤니티가 아닌, 순수하게 내가 생각해서 만들어낸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장애학생의 장애 특성을 이해시킨다는 목적보다는 학교 안에서 소외당하는 학생들이 느끼는 외로움에 공감하고 이를 서로 위로해 주는 내용이었다. 10여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이 수업의 내용을 소환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학교 가는 길
'학교 가는 길'이라는 동요를 들려줌
평소 친구가 없어 학교에서 늘 혼자 지내는 또봉이라는 아이의 이야기와 그 아이의 마음에 대해 들려줌. (예: 난 친구가 없어 너무 외로워. 학교에 가는 게 무서워, 공부가 어려워 매일 0점이야)
학교로 가는 길에 서 있는 가로수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위와 같은 하소연을 함.
이제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또봉이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가로수 역할을 하는 것임.
또봉이 역할을 할 친구를 하나 뽑고 나머지 학생들은 가로수 역할을 하며 2열 종대로 쫙 섦.
또봉이 학생은 가로수 학생들 사이를 지나며 가로수들의 응원의 메시지를 들음.(예: 또봉아,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거야 힘내, 난 널 응원해 파이팅!)
수업이 마무리된 후, 또봉이 학생과 가로수 학생들의 소감 듣기
위와 같은 수업을 6학년, 5학년 교실에서 했었는데 확실히 5학년들이 더 잘 참여해 줬던 기억이 난다. (6학년은... 절레절레) 그래도 6학년 학생 중 이 수업 때 감동했다는 피드백을 준 학생이 있는 것을 보면 몇몇 학생의 가슴을 울리는 수업이 되었을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이제 다시 2학기가 되었다. 요즘엔 장애인식개선교육 뮤지컬, 연극, 만들기 키트 등 이 교육을 위한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 돈만 있으면 어려울 것이 없다. 하지만 난 다시 이 수업을 내가 진행해봐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반 어느 학생 때문이다.
이 학생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학생으로, 딱히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온화한 성격을 지녀 학년 아이들의 귀여움을 많이 받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이 학생이 새로운 학년이 되면서 같은 반 구성원이 된 아이들이 이 학생의 작은 움직임, 소리에 과하게 반응하며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이 학생은 특수교육실무사와 함께 원반 수업에 들어가는 학생인데, 한 학기 내내 이런 취급을 받는 게 화가 난 특수교육실무사가 1학기 말에 나에게 작심하고 이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 누구보다 학급에서 사랑받고 이해받는다고 생각했던 학생이 실은 이런 대접을 받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참 아팠다.
이 학생은 장애 특성 때문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지적장애, 정서행동장애학생들만큼 깊게 느끼지 않을 순 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근원적 외로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생에서 친구가 전부인 초등학생이라면 외로움이 더 극대화되지 않을까. 자신을 좀 거슬리게 하고 불편하게 한다고 눈을 흘기는 그 아이들에게 이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실시하고 싶다는 의지가 마구 샘솟는다.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할 일이 그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이해교육'이 아닐까.
나와 나의 제자를 위해, 그리고 그 반 학생들을 위해 서둘러 수업을 다듬고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고생을 사서 하는 거 같단 생각도 들긴 하지만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닌 우리를 위한 일이니 좀 더 힘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