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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ul 05. 2021

모든 관계는 거리가 필요한 법!

관계 간 거리에 대하여

꽤 최근까지도, 친구라면 늘 모든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족이라면 같은 집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관계의 의미라고 여겼기 때문일까? 독립은 매몰찬 어휘요, 잔인한 표현이었다. 각자의 시간은 함께 있는 시간보다 덜 매력적이었다. 고독과 성찰보다 소통과 단체가 너무나 화려했기 때문인지, 중요한 건 집단과 관계였다. 그러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생각해 본 적도 없어서 그게 불편했는지도 몰랐다. 아예 생각해보지 않았으니 염두에도 없었달까? 그런 점을 생각하기 시작한 건 요즈음의 일이다.     


물론 그 변화가 ‘때가 되어서’ 나타난 건 아니다. ‘저절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건 세상에 없으니까.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들고, 내가 언제 행복한지 생각해보게 되면서 변화가 나타났다. 어릴 때야 그저 하루하루가 즐거우면 그만이었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다. 시간을 제대로 즐기고 추억을 남겨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니까. 단 문제는, 우물 안 행복이 소중해서 우물 밖의 행복은 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내가 진짜로 행복한지, 내 상태는 어떤지 알 수 없었달까? 참 어려운 일이다. 지금 마냥 힘든 것도 아닌데 뭔가 부족함을 느낄 때가 얼마나 막막한지 모른다. 그 원인이 관계에 있단 걸 알았을 때의 허탈함이란!


 예전엔 ‘고슴도치의 거리’를 보고 비웃었는지 모른다. 서로가 좋아도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 않기 위해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그 내용이 얼마나 우스웠던지. 가시에 찔리지 않는 거리가 아니라 가시의 아픔도 모를 정도로 가까이 있으면 되는 일이 아니냐며 의지나 마음을 운운했었다. 어휴! 뭘 모르는 건 나였다. 계속 붙어 있을 정도로 친하다 한들 결국 별개의 사람인 것을! 영혼의 단짝이라고 같은 인생, 같은 환경, 같은 감정을 가지는 게 아니고 부부의 인연이라 한들 모든 면모가 맞아떨어지는 게 아닌데. 어린 나는 모든 관계에서 늘 붙어있길 소망했었고, 그에 지치면서도 힘든 줄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련한 짓을 했구나 싶다. 아주 혼자 고생을 다 끌어당기며 살았구나. 그때는 그게 좋았고 정답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늦게라도 그 사실을 알아서 다행이다. 그 사실을 알았다고 갑자기 독립을 하거나 친구들과 소원해졌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내겐 큰 행복이었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어도 마음이 너무나 편했다. 미련과 집착을 버린 기분이랄까? 굳이 연락하거나, 굳이 인사하거나, 너무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게 참 좋았다. 운명의 장난인지, 내가 그런 변화를 겪고 얼마 가지 않아 코로나가 창궐했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만남이 힘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외로워했을지 몰라도 나는 내가 느낀 변화를 인정할 수 있었다. 모든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내 삶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거절할 수 없어 불쾌한 기분을 삭이거나 괜히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온전한 내 기분을 살필 수 있다. 그건 사람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행복의 법칙일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게 아니냐고? 떠올려 보라. 가족 간의 거리가 없어지고 나서 얼마나 사회가 시끄러웠던가. 수험생이 있든, 신혼부부든, 몇 대가 같이 살든 간에 외출이 힘들어져 강제로 거리가 없어진 가족들은 스트레스에 몸부림쳤다. 한두 가정이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했다. 그 무엇보다 거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요점은 그 가정들이 코로나 이전엔 제법 괜찮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거리가 없어지고, 혼자만의 시간보단 가족과의 시간이 너무 많아지니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다. 가족이라도 결국 남이고, 타인이고, 신경 써야 하는 존재니까. 가족인데, 가족이니까, 가족 사이에 뭘 그러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럼 저 많은 가족 간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혈연이고 인연이고 간에 모두 관계에 불과하다. 특별하다는 이유로 그 관계를 당연시하고, 무시할 이유는 없다. 모든 관계는 동일하고 그 관계는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코로나가 증명해주지 않았는가.

    

혹 지금 여전히 관계에 목을 매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자기 자신을 한번 돌아보길 바란다. 물론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을 만났을 때 느끼는 반가움, 기쁨, 그 감정들이 분명 존재하니까. 하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자신에게 이로운지는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다 인생이 처음이라서 관계의 정답이란 없다. 관계마다 두어야 할 거리가 다르다는 걸, 관계 이전에 자신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법이다!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가 되어도 제일 중요한 건 내 존재다. 내가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선 내가 어떤 기분이고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한다. 그러니 만일 어떤 관계 때문에 힘들고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거리를 둬 보자. 지금 가지고 있는 관계의 거리가 당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얘기니까. 


누가 아는가, 그 작은 거리가 당신을 생각지도 못한 평화에 데려다 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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