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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ul 11. 2021

타노스의 장갑이 왜 여기서 나와

과학기술과 예술의 상상을 초월한 만남에 대하여

그때는 신입생으로서의 마지막 학기였다. 전공 필수라서 듣는 수업이 다 그렇듯 한 과제가 정말이지 끔찍했다. 코딩으로 센서를 이용한 작품이라니! 미대 새내기에게 어떻게 그런 과제를 줬는지…. 지옥을 현실에서 마주한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 덤벼볼 만해야 덤비지, 그건 덤빌 수도 없었다. 학점도 반쯤 포기하고 등록금에 대한 의무로 출석만 하곤 했다. 수업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도, 집중이 되지도 않았다. 물론 다 나 같은 학생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집중하고, 교수님과 이야기하고, 즐기기도 했다. 자연히 자괴감은 때로 나를 갉아먹었다. 경쟁심이나 질투가 아니라 거의 경외심에 가까운 자괴감이. 한데 그런 괴로움은 과제를 발표하는 날 최고점을 찍었다. 어느 고학년이 타노스의 장갑을 만들어 온 것이다!     


타노스의 장갑이라니 그게 뭐냐고? 그건 정말 색만 없는, 영화에 나오는 타노스의 장갑이었다. 인피니티 스톤 자리도 있었고, 손을 쥐면 불이 켜졌다. 촉각 센서와 광센서를 사용했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 이미 말한 것처럼 나는 수업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으니 납득해줄 것이라 믿는다. 기억하는 이유는 그 과제가 어떤 구조인지 보여서가 아니다! 그저 과제로 그런 발상을 하고, 그런 과제를 가져왔다는 게 너무나 충격이었을 뿐이다. 나는 그때 오르골 위에 광센서를 어떻게 배치할지 정도로 끙끙대고 있었다…! 교수님도 아니고 학생이 그런 작품을 내놓다니. 이제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도, 나는 그 작품이 생생하다. 아마도 내가 진심으로 ‘과학 기술과 예술’이 융합된 걸 본 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과학 기술은 실생활에 필요한 것, 예술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었다. 한쪽은 평생 보지도 않은 분야, 한쪽은 대학 전공까지 할 정도로 관심이 가득한 분야. 그 둘의 차이는 무엇보다 확연했다. 하늘과 땅, 아니면 천국과 지옥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나는 아무리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라고 해도 감흥이 없었다. 갑작스레 그 과제를 마주하기 이전까지는 말이다. 그게 정말 합쳐졌다고 느낀 그 선배의 과제는 충격 그 자체였다. 영화와 스토리, 디자인과 기술이 어우러진 모습이었으니까. 그건 한눈에 시선을 끌면서도 탄탄한 원리를 담고 있었다. 공상과 신화를 형상화하는 게 가능하구나, 저래서 합치는구나, 처음으로 과학과 예술의 조합의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아, 저게 그런 융합의 하나겠구나 하고, 와닿았다.       


타노스의 장갑을 제외하면, 그런 융합이라고 내게 와닿은 건 딱 하나가 더 있었다. 다름 아닌 방탈출 카페! 지금은 살짝 유행이 사그라들었지만 그 구조는 한국에서 아주 대박을 쳤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을 두어 번 정도만 가봤다. 학교에서 배운 코딩과 연관이 있음을 얼마 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혹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라는 걸 아는가? 아예 모르는 거라면 좀 더 즐겁게 즐길 수 있다.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여 호기심이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떤 새로운 시스템의 구조를, 법칙을 알고 들어가게 된다면? 그러면 처음의 떨림이나 기대, 재미는 자연히 사라진다. 처음엔 알지 못했지만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방탈출 카페의 숨어있는 법칙과 기술이 내가 배운 것들, 알고 있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좀 허무하고 아쉬운 감정 뒤로, 한 번 느꼈었던 감상이 떠올랐다. 예술과 과학기술이 합쳐진 결과물을 봤을 때의 감상이었다. 

     

방탈출 카페는 어떤 힌트를 두거나, 맞게 배치하면 다른 힌트나 문이 열리는 식이다. 그 속에는 기술이 숨어있다. 하지만 그런 기술은 홀로 자리할 때 그 매력을 발하지 않는다. 스토리, 즉 테마와 예술성이 함께해야 제 빛이 난다. 주제도 분위기도 이야기도 없는 공간에 그런 기술이 자리한다고 무슨 인기가 있겠는가? 무슨 재미가 있고 흥미가 있겠는가. 그 둘이 만나면서 그 둘 이상의 재미와 의미가 폭발하는 것이다! 타노스의 장갑 과제 이후, 또 한 번 진심으로 예술과 과학기술이 융합하는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이런 내 감상에 동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미술을 전공했고 예술을 좋아하지만 아주 편파적이라서 기술과의 융합에 대해선 아직 초보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편파적인 젊은이인 내게도 그 두 분야의 융합이 아주 인상 깊었다는 것. 그것도 매우 긍정적이고 놀라운 방향으로 좋았다는 것! 융합이라는 말과 기술이며 예술이라는 거창한 표현 탓에 과학기술과 예술의 공동 결과물에 너무 겁먹지 말고 즐겼으면 좋겠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나는 여전히 그 장갑을 잊지 못한다! 인생에 그런 경험을 하는 건 정말 뜻밖이고 내가 비참하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과학기술과 예술이 만나 그게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 정도는 경험해서 나쁠 게 없다. 그 둘은 정말 조합이 너무나 황홀하다. 미미할지라도 그 경험이 우리의 눈을 더 뜨게 해 줄지도 모른다. 한 번쯤은 부디 누려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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