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제임스 매튜 배리>를 읽고
초록색 모자를 쓴 개구쟁이 소년. 해맑고 장난스러운 웃음을 가진 꼬마. 그 아일 모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참 유명한 아이다! 나 역시 직접 본 적이 없음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제대로 본 적은 없어, 이번이 초면이었다. 마치 유명한 가수의 무대를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너무 잘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보는 게 처음이라 더 집중하게 되는…. 너무 잘 알려져 있던 게 독이었던 걸까. 아니면 시대상의 문제였을까. 그도 아니면 나와는 맞지 않는 작품인 걸까. 처음 읽어본 <피터팬>은 참 기묘했다.
웬디와 존, 마이클의 이야기와 네버랜드의 모습은 참 발랄했다. 엉뚱하지만 귀엽고, 이상하지만 예뻤다. 인물들도 독창적이고 뚜렷하고, 개성적인 면모가 빛났다. 다만 그게 오히려 더 기묘한 면모를 돋보이게 한 것 같다. 읽으면서 불쾌함을 떨칠 수 없었다. 이 책이 동화로 오랜 시간 자리를 잡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그리 기묘했느냐고? 덜 난해해서 그런 것인지, 좀 더 현실적이어서 그런지, 그런 요소는 너무 많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부터가 불쾌했다. 웬디,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랑스러운 아이! 어린 소녀일 뿐인 그 아이가 과연 원하는 게 ‘엄마’가 되는 것이어야 했을까. 물론, 어린 여자아이라면 엄마가 되길 상상하곤 한다. 소꿉놀이 한 번 해보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엄마를 동경하고 엄마처럼 되고 싶은 아이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그렇게 보면 웬디의 모습은 지극히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너무 어리다. 그런 아이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말에 황홀해하는 게 얼마나 괴상한지 모른다! 심지어 그 말이 집안일을 할 수 있다는 소리에 불과한데도! ‘엄마’라는 존재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는 안다. 나 역시 자식인데 그 의미를 모를까. 그러나 한 명의 여성이고 한때 여자아이였던 사람으로선 참 거슬리는 모습이었다. 여자아이들이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꿈도 보이기 마련이다. 요리사든 모델이든 연예인이든 요정이든, 참 다양한 꿈들이 있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 하고, 그건 성별에 관계없다. 그런데 책 속에서 여자아이는 숙녀, 엄마로 나오고 남자아이는 장난꾸러기로 나오지 않던가. 기껏해야 두세 살 차이일 아이들의 그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성별에 따라 나뉜 역할에 나이는 상관없다는, 그런 이상한 논리를 마주한 것 같았다.
그런 웬디의 기묘한 모습을 더욱 강조하는 건 단연 피터팬이다. 엄마가 ‘필요하다’며 소녀에게 권유하는 건 자신이 어른을 싫어하기 때문인 걸까? 너무나 이기적이다. 영원한 아이여서 그런 면모를 보이는 걸까? 그래서 타인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 피터팬의 이기적인 면모는 한두 번에 그치지 않는다. 자기 마음대로고, 타인을 신경 쓰지도 않고, 자아도취는 기본이다. 좋게 보면 자신감 넘치고 활발한 아이지만 달리 보면 자기만 알고 버릇없는 아이. 나는 이미 어른에 가까워져서 그런지, 후크 선장의 ‘버릇없는 피터팬’이란 표현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아이로는 볼 수 없었달까. 거기다 피터는 순수할 정도로 잔혹하다. 베고, 죽이는 데 순수한 희열을 느낀다. 누가 괴롭혀서도 아니고 다른 게 탐나서도 아니다. 그냥 거슬리니까, 죽이는 것이다. 혹은 그저 심기를 거슬렀단 이유로 잔인하게 행동한다. 꼭 아이의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을 다 합쳐 만든 것 같았다. 보통 사람들은 상대의 일부만 보고 판단한다고 했던가? 상대는 단순하고 나쁘게, 자신은 복잡하고 좋게 보곤 한다고 했던 것 같다. 아이에 대한 이미지가 내 안에서 너무나 확실한 탓에 피터가 더 거슬렸을지도 모른다. 아마 난 피터팬을 좋아할 순 없을 것이다. 아, 영원한 아이는 결국 아이일 뿐이라 함께 성장하는 친구는 될 수 없으니까! 공감할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나는 피터팬이 그저 네 소년소녀의 모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영원한 아이로 남는 피터가 좀 특별히 등장할 뿐 동화적인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아, 정말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이 책이 아이들에게 인기였다는 것도, 오랫동안 동화의 자리를 차지했단 것도 참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엔 너무 잔혹하고 너무 기묘한데, 괜찮은 것인지…. 작가가 어린 나이에 죽은 형으로 여겨지며 살았다 했던가. 그래서 결국은 죽은 형의 키를 넘지 못했다던가.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존재와, 아이의 존재와, 어른에 대한 반항심과 기대고 싶은 마음을 다 느껴 피터팬이란 인물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자신은 할 수 없었던 걸 대신 이루기 위해서…. 솔직히, 그런 작가를 모른다면 정말 왜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 의심스러웠을 것 같다. 작가의 인생을 알고 나서야 좀 이해할 수 있었달까.
이렇게 내 환상적인 동화를 하나 잃었다. 시대상의 탓인지, 작가의 기구한 인생 탓인지, 너무나 기묘하고 잔혹한 이야기였다. 피터팬을 보고자 하신다면, 반드시 그 점을 염두에 두시고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