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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ul 18. 2021

살맛 나는순간

해가 지날수록 늘어나는 책임과 관리에 대해

요즘은 정말 덥다. 후덥지근, 끈적, 찝찝하고 습기 찬 나날들…. 걸어 다니는 사람들, 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해 보일 정도의 더위다. 대체 다들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움직일 때마다 땀이 제어장치가 고장 난 것처럼 나오는데. 아직 8월은 오지도 않았는데 폭염이 곧 온다는 이야기에 소름이 끼쳤다. 게다가 이번 해 들어 운동을 좀 꾸준히 했더니 땀띠까지 났다! 총체적 난국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었다.     

 

다행히 아빠가 큰 사랑을 보여주셨다. 내 방에 창문형 에어컨이 생긴 것이다. 올해 아빠가 먼저 사서 아빠 방에 설치해두셨는데 그게 괜찮았다. 가족이 낮에 한 방에서 좀 있다가 나가면 버틸 만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자격증 공부도 해야 하고, 잘 때 계속 안방에 가서 잘 순 없는 노릇이었다.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그게 에어컨이 내 방에 생기게 된 과정이었다. 시험 삼아 틀어보니, 훌륭했다. 내 방이 이렇게 시원하다니! 다른 게 행복이냐, 이게 행복이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너그러워지는지 알 수 있었다. 아빠 방이나 거실에서 에어컨이 틀어졌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만족스럽기가 형용할 수 없을 지경이었으니까. 지금 천국이 뭐냐고 내게 묻는다면, 내 방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던가. 에어컨 덕에 나는 정말 행복해졌지만 한 가지 고민도 떠안았다. 에어컨 리모컨과 에어컨을 내가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게 뭐가 그리 어렵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 같은 기계치에겐 너무 큰 짐이다. 오죽하면 나는 최신 핸드폰을 갈망한 적도 없다. 새로운 기기에 익숙해지고, 알아보고 하는 과정이 너무나 싫었기 때문이다.  막상 바꾸면 잘 쓰는 편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기기를 다뤄야 한다는 게 큰 부담을 준다. 그런 스트레스는 갈수록 늘어간다. 좀 익숙해질 만도 한데, 도저히 가벼이 여겨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기기가 많아지다 보니 어쩔 수 없나 보다. 내가 견딜 수 있는 한도가 있는데 그 한도를 넘어선 필요가 생기는 것 같다. 어릴 땐 핸드폰만 챙기면 됐다면 이젠 노트북, 마우스, 모니터, 스마트워치, 이어폰, 에어컨까지 신경 써야 하니까. 굳이 써야 하나 싶어 생각해보면 결국 날 위한 것이라 계속 쓰게 된다. 과제를 하기 위해서, 좀 더 자신의 쾌적함을 위해서, 좀 더 자유롭게 생활하기 위해서. 아이러니한 일이다. 내가 원하는 생활을 위해서 내가 하기 싫어하는, 지금까지도 꺼리는 걸 해야만 한다니.  

    

다들 이러고 사는 걸까? 나처럼 기계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누리는 게 많아지지만 그게 또 책임과 관리로 돌아오는 걸 말이다. 자취만 해도 그렇다. 자취하면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누군가의 참견이나 간섭 없이 자고, 먹고, 꾸밀 수 있다. 그 묘미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비치지 않던가. 문제는 그 공간에 대한 관리와 책임이 모두 자신에게 달려 있단 점이다. 청소를 하지 않으면 자신만의 공간은 불결해지고 더러워진다. 빨래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오롯이 불편을 감당한다. 꾸민 공간을 유지하려면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모든 것이 곱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건 없다. 이렇게 보면 나이 들수록 기기를 다루게 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자라면 다른 옷을 입어야 하지 않던가. 몸이 자라는데 옷을 그대로 입는다? 그건 본인도 불편하고 보는 이도 불편하다. 나이를 먹는 건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이 먹고 싶다고 먹는 게 아니고, 먹고 싶지 않다고 먹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7살 아이보다 17살이, 17살보다 27살이 더 성숙해진 태도를 취하고 책임질 줄 아는 건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녀야 하는 당연한 모습이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하기 싫은 걸 더 하고, 무작정 외면하지 않고 해야 할 것들을 마주하는 건 성숙해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겪는 상황이 의미가 있다고 달가워지진 않는다. 난 여전히 기기가 꺼려지고 거부감이 있다. 하지만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님을 알고, 그만큼 누리는 맛이 있음을 안다. 누군가 힘들어하면서 왜 버티냐고 묻는다면 지금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지 않을까. 사람은 생각보다 의미에 약하다. 그게 뭐든, 무의미하지 않다면 생각 이상의 힘을 내기도 한다. 지금 자신의 상황이 너무 버겁고 무섭기만 하다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나는 잠깐의 생각으로 제법 성장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꼭 뿌듯함이 아니라도 분명 살아가는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조금 살맛을 느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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