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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ul 28. 2021

어떤 건 20년이 지나야 알게 된다

나의 소비 습관으로 본 깨달음에 대해서

나는 내가 정말 소탈한 사람인 줄 알았다.

좀 속세에 초연하고 물욕이 없는, 그런 애인 줄 알았다는 말이다.     


웃긴 소리! 절대 아니었다. 거의 20년을 믿어온 내 특징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다. 좀 더 복합적이고 넓은 관점에서 보면 다른 모습인데, 좋게만 해석했던 것이다. 물론 좀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니,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 번도 유명 브랜드를 사고 싶어 안달하지 않았는데…. 엄청나게 갖고 싶었던 적도 유행한다고 사고 싶은 마음이 든 적도 없는데.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억울한 마음이 가득 차올랐지만 내 모습을 찬찬히 보니 점차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나는 물건을 하나 살 때 아주아주 오래 걸린다. 한 번에 팍 꽂혀서 사야겠다 하는 충동구매는 살면서 한두 번 있었으려나? 그러다 보니 구매 도중 지쳐 그만두는 것도 다반사다. 없으면 못 살 것도 아니고, 찾기도 귀찮다, 안사고 말지, 하는 흐름으로 넘어가곤 했다. 이런 흐름이 습관화되어서였을까. 실제로 물건을 사는 건 아주 드물었고, 딱히 유행에 휘둘리지도 않았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내가 그다지 물욕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실제로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았고, 그 과정을 견딜 만큼 욕심이 있지 않았으니까. 나도 그런 이유로 내가 소탈한 줄 알았다. 그런 게 아니라 그저 깐깐한 물욕이었을 뿐인데!     


쉽게 말하자면, 나는 아주 까다로운 구매자였다. 예쁘다고 칭찬할 물건은 많아도 실제 내가 사는 물건은 적은 편인 그런 구매자. 미성년자일 때는 어차피 늘 교복이고, 용돈도 적겠다, 그런 모습을 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 제한이 무너지고 나니 비로소 내 모습이 드러났다. 사실 난 다 그런 기준으로 사는 줄 알았는데, 내 구매 기준은 아주 세밀했다.      


일단 가격대가 합리적이어야 했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 방법도 있지만 그런 경우 나중에 물건을 정리할 때 불편해진다. 디자인도 중요한데, 깔끔하되 너무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아야 한다. 20대가 40대가 주로 매는 가방을 쓴다면 그것도 어색하지 않은가. 고상한 투피스나 정장도 아직은 입을 이유 없으니 당연히 그에 어울리는 소품도 제외다. 물론 20대가 좋아하는 거라고 다 수용되지 않는다. 너무 귀엽거나, 화려하거나, 독특한 건 어울리지도 않고 취향도 아니다. 보기엔 좋아도 나한텐 안 맞는다. 이제 색상이 괜찮은지 봐야 하고, 색상이 없다면 그것도 뺀다. 디자인이 예뻐도 색이 튀거나 이상하면 전체적인 분위기를 다 망쳐버리니까. 자, 그럼 이제 점검을 해볼까. 이렇게 가격, 디자인, 색 모두를 충족하면 사느냐고? 안타깝게도 이게 전부가 아니다. 그 조건을 다 충족해도 부모님이 별로라고 하면 바로 아웃이다. 부모님의 시선은 내 시선과 다르지만 들을 필요가 있다. 어쩌면 가장 객관적이고 표준적인 조언이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소재나 마감 같은 꼼꼼한 면의 기준점 조언을 듣기도 한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가격, 디자인, 색, 재질까지 따지는 셈이다. 계절감이나 배송기간도 가끔 포함되고. 음, 이렇게 보니 내가 소탈하다 생각했단 게 멋쩍을 지경이다.      


참 신기하다. 나는 20년을 물건에 관심 없고 소탈한 사람으로 살았다 생각했는데. 나에 대한 생각이라도 금세 바뀔 수 있구나 싶다. 나에 대한 것도 이렇게 시간이 흘러서야 알 수 있는 게 있다. 그러니 다른 것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당연하다, 확실하다 하는 것 중 몇 개나 유지될까? 나는 아직 청년인데, 제대로 성숙해 그런 확신을 가지려면 또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함부로 단언해선 안된다는 걸 내 깐깐한 취향으로 깨달은 것도 이제야 가능했는데…. 어쩌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문득 생각해보니, 4대 성인이신 공자님도 70이 되어서야 종심(從心), 마음이 가는 데로 따라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내가 그보다 앞서기란 어렵지 않겠는가. 정말 온 일생의 과제인가 보다.    

  

그래도 지금 이립(而立-30)도 되기 전에 그런 어려운 진리를 알게 되지 않았는가. 이 정도면 나름 잘 살아가는 것 같다. 앞으로 그 무엇도 단언할 것 없고 확신할 건 없음을 명심하면서 나아가는 게 올바른 길이 아닐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 자신도 20년이 넘어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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