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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ug 22. 2021

생각보다 깊은 빵의 이야기

<음식이 상식이다-윤덕노>를 읽고

'상식'! 의무보단 가볍고 자유보단 무거운 단어의 울림이다. 본래 뜻은 ‘정상적인 일반인이 가지고 있어야 할 일반적인 지식’인데, 참 어려운 존재다. 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상대방이 아는 게 아니고, 내가 가진 지식이 다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게 얼마나 복잡하고 까다로운가. 나는 원래 상식에 제법 집착하는 편이었다. 모른다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려면 얼마나 알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상식이란 단어에 이리 몰두하는 걸 보면 아직 상식에 대한 집착에서 떠나진 못한 것 같다. 그래도 그 덕에 좋은 책을 만나곤 한다. 이번의 <음식이 상식이다>처럼 말이다.  

   

솔직히, 음식에 상식이 있다 한들 어느 정도일까 싶었다. 가벼운 유래나 설화 정도만 있는 게 아닐까 했는데. 내가 까먹고 있던 게 있었다. 음식은 사람이 살면서 가장 필요로 하는 존재란 걸 말이다! 그런 존재가 가벼운 이야기를 품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분명 한 번쯤은 먹어보거나 접해본 음식들인데도 낯설게 보일 정도였다. 이런 역사를 거쳤구나, 이게 그런 의미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좋아한 음식일수록, 자주 접한 음식일수록 그 충격은 컸다. 그중에서도 제일을 꼽자면 역시 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빵이 뭐 그리 이야기가 많으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모르는 소리다. 우리가 빵을 계급에 상관없이 먹게 된 게 200년밖에 안 된 역사다! 너무 짧고 의외인 역사가 아닌가. 바게트가 프랑스혁명의 결과물이란 소리는 얼핏 들었지만, 이토록 근래의 일일 줄이야. 나는 농부들이 검은 빵을 먹었던 것이 그저 가난해서 그런 줄 알았다. 흰 빵을 먹을 정도의 여유가 되지 않아서 돈을 아끼려던 수단인 줄 알았다. 말하자면 넉넉지 않으니 흰쌀밥을 못 먹는 경우라고 여겼다. 그게 법으로 금지된 일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당시 귀족들의 논리에 따르면 부드러운 빵은 연약한 귀족의 소화를 위해서고, 농부들은 돼지보다 약간 진화한 인간이므로 딱딱한 빵을 먹어야 더욱 열심히 일한단다. 지금 보면 완전히 헛소리에 가까운 논리지만, 그때는 그게 잘 먹혔다. 이 논리에 따라 농부가 흰 빵을 먹으면 신의 뜻에도 어긋나고, 사회적 기강과 윤리도 해쳐 범죄로 취급되었으니까. 웃긴 것이, 검은 빵이 그렇다고 괜찮은 빵인 것도 아니었다. 검은 빵은 톱밥이나 진흙, 도토리, 나무껍질이 있어도 티가 안나는 최악의 음식이었다. 프랑스혁명 때 시민들이 외친 “빵을 달라!”가 실은 먹을 수 있는 빵을 달라라는 말이라는 해석도 있는데,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혁명까지 일어나고 나서야 빵의 평등권이 보장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물이 다름 아닌 바게트인데, 정확한 유래는 오스트리아라는 설도 있고 나폴레옹의 군대 보급 식량이라는 말도 있어 정확하진 않다. 하지만 빵의 평등권 조건과 유사한 걸 보면 그 등장 의의가 잘 느껴진다. 

    

빵의 친척이라 할 수 있는 케이크도 놀랍긴 마찬가지다. 그 역사가 이집트 시대까지 거슬러가야 할 정도로 오래됐다. 물론 그 맛이 지금과 동일하진 않다. 먼 옛날엔 벌꿀이나 견과류, 말린 과일 등이 들어간 빵에 가까웠다고 한다. 하지만 형태만큼은 둥근 형태였다. 요즘에야 정말 다양한 모양의 케이크가 나오지만, 내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케이크는 모두 둥근 모양이었다. 그 외의 케이크 모양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설마 그 둥근 모양의 이유가 종교의식 때문일 줄은 몰랐다. 고대인들은 농사를 짓고 하루하루를 사는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예민했다.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숭배가 있었고, 대상은 하늘에 있는 해와 달이었다. 그래, 하늘에 늘 떠 있는 둥근 그 존재들 말이다. 그래서 해와 달을 형상화해 둥근 케이크를 만들어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제물을 아무 때나 바칠 순 없는 노릇이니 당연히 일 년 중 특정한 날이 되면 만들었고, 그게 지금까지 특별한 날에 케이크를 먹는 것으로 굳어졌다. 이런 건 꼭 서양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것임을 중국의 월병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동서양 모두 풍년을 기원하며 하늘에 바친 의식의 도구였던 것이다. 그런 새로운 탄생과 풍요를 기원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다산과 생명이 연관되었다. 다름 아닌 웨딩 케이크와 생일 케이크가 그 후손이다.

     

웨딩 케이크와 생일 케이크도 참 새롭다. 내가 기억하는 한 웨딩케이크는 모두 흰색이었는데, 그것 역시 빅토리아 여왕의 흔적이었다. 신부의 순결을 상징하는 것이라곤 하지만 요즘은 신부의 드레스 색과 맞춰 만든단다. 생일 케이크의 등장은 좀 의외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 시초라니. 그리스인들은 사람이 태어나면 일생 동안 지켜보는 수호천사와 악마가 있다고 봤는데, 평소에는 교감 못해도 생일에는 영적으로 교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어린이의 수호신인 아르테미스에게 케이크를 바치며 아이의 행복과 안녕을 빌었다. 그리스와 케이크는 먼 거리가 있는 것 같았는데…. 실상은 그 누구보다 가까운 관계였다.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부는 것 역시 의미가 있었다. 옛날에는 바깥에 장작 불빛에 비춰 소원을 빌었는데, 그 연기가 소원을 신에게 전달해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생일 케이크를 먹기 전 꼭 소원을 빌며 촛불을 부는 것이다. 내가 20년 넘게 촛불을 불었는데 그 유래를 이제야 알다니. 정말이지 세상은 아직도 배울 게 많다.      


빵과 케이크는 음식 중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나오는 이야기가 많다. 다른 산해진미며 이런저런 음식들의 이야기까지 하자면 끝이 없어 이렇게 일부만 기록하지만, 그 장대한 의미와 거대한 유래들이 어느 정도일지는 감이 잡힐 것이다. 지금 와서 다시 돌이켜보자면 참 제목을 잘 지은 것 같다. 음식에 대해 이 정도 알고 있다면 재미없는 식사 자리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은 정말 넓고, 깊고, 오래되어서 게으르고 지루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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