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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ug 24. 2021

닭발이 들려주는 이야기

<음식이 상식이다-윤덕노>를 읽고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질문은 참 어렵다. 싫어하는 건 뚜렷하기라도 하지, 좋아하는 것 중에서 제일을 고르라니! 부모님 중 누가 더 좋으냐는 질문만큼 난감하지 않은가. 그 음식을 고른다고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단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참 고르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고르라면 좀 낫다. 나 같은 경우, 상위 5개 음식을 고르라면 마라탕(마라샹궈), 닭발, 미역국, 앙버터, 김치전이다. 워낙에 자극적이고, 단맛을 좋아하는 터라 부모님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리스트이기도 하다. 미역국이나 김치전은 반찬이기도 하고 건강에 그리 나쁘지도 않으니 넘어간다만, 닭발의 경우는 다르다. 앙버터야 아예 디저트이니 제외하고, 마라탕은 채소라도 많이 들어가지 않는가. 우리 부모님의 입장에선 닭발은 반찬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안주라면 모를까. 하지만 나는 과자나 괴랄한 게 아닌 이상, 안주든 뭐든 밥과 먹으면 반찬이 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곧잘 닭발과 밥을 같이 먹곤 하는데 그때마다 못마땅한 시선이 따라온다. 그렇다고 안 먹진 않지만, 딱히 반박할 수도 없었다. 반찬보단 안주의 성격이 뚜렷한 것도 맞고 그다지 영양이 풍부한 것도 아니니까. 맛이 아니라면 명확한 선호의 이유가 없으니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나는 이 이야기가 아주 오래된 이야기일 줄 알았다. 그러니까, 닭발 먹는 걸 못마땅해하는 게 전통적이라고 생각했단 소리다. 불량식품처럼 몸에 이롭진 않지만 계속 전해 내려온 음식인가 했다. 생긴 것도 꽤 최근의 일인 줄 알았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부대찌개가 나온 것처럼 등장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누가 알았으랴. 닭발의 대우는 그토록 드높았다는 걸!     


닭발은 옛날부터 고급 요리였다. 기원전부터 먹은 아주 뼈대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춘추 전국 시대부터 제왕의 식사에 오른 존재였으니까! 심지어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는 닭발을 보고 예전부터 전해 내려온 산해진미 중 하나라고 할 정도였다. 역사책에서도 그 존재감이 나오는데, 비유일지언정 그 의미가 남다르다. 진시황 때 승상 여불위가 편찬한 <여씨춘추>에서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제나라 왕이 닭을 먹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한 번에 닭발 수천 개를 먹은 후에야 만족을 한다.”라는 대목이 말이다!


언뜻 보면 이게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인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보면 그 뜻이 깊다. 고대인들은 동물들이 발바닥으로 걸어 다니니 정기가 다 발에 모인다고 생각한 것 같다. 곰 발바닥도 귀한 요리로 여겨진 걸 보면 말이다. 닭도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가녀린 발로 육중한 몸을 버티고 있으니 닭발에 좋은 기운이 가득하다고 믿을 만도 하다. 그런데 닭발에는 고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은가. 해서 배부르게 먹고 만족감을 느끼려면 상당한 양을 먹어야 한다. 그럼 닭발 수천 개를 먹었다는 게 무슨 소리겠는가. 정기가 가득 모인 핵심 부위를 마음껏 만족할 만큼 섭취했다는 소리다. 남의 장점을 철저하게 배워 자신의 경륜을 살찌운다는 비유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과는 정말 다른 시선이 아닌가 싶다.     


한 음식에 대한 시선이 이토록 다를 수 있다. 한 요리에 대한 상식이 바뀌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알게 모르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참이요, 상식이라고 여긴다. 새로운 지식을 배울 때도 자신이 보고 싶은 것 위주로 본다는 게 밝혀지지 않았던가. 다시금 함부로 자신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걸 느낀다. 세상의 시선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고, 그만큼 내가 미처 참고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으니까. 공자님도 60이 되어서야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셨다. 그런 성인도 긴 세월이 필요하셨는데 나 같은 범인(凡人)이야 오죽할까!     


옛날의 시선이라고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느낀다. 발에 정기가 있다니 무슨 소리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타당성을 떠나 그 생각만큼은 참 뜻깊지 않은가. 가장 아래에 있어 지금도 그리 좋은 대우를 못 받는 게 발이다. 그런 발을 정기가 모두 모이는 곳으로 본 것이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시선이 아닌가. 닭발로 학습의 제대로 된 모습을 표현한 것도 독특하고 귀에 확 들어온다. 요즘은 옛날 속담이나 격언이 너무 다른 세상의 이야기란 이유로 꺼려진다. 새로운 속담과 격언이 나오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무조건 이해할 수 없다고, 옛날이야기라고 밀어내도 좋을 건 없지 않을까. 긴 시간 내려온 정성 어린 지혜가 아깝다. 

    

닭발 하나로도 참 많은 생각이 오간다. 요리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지혜와 시간이 응축되어있는데 세상만사를 다 이런 식으로 배우다 보면 저절로 성숙해질 것 같다. 평생의 시간을 들여도 다 배우기는 힘들겠지만, 가능한 한 성숙한 사람으로 나이 들기 위하여 이런 시간을 아깝게 여기지 말아야겠지. 그게 지금의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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