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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ug 27. 2021

이제는 '유행'을 생각해볼 때

신조어 고인물에 대하여

요즘은 일주일이면 새로운 단어가 나온다. 줄임말이든 신조어든 그 속도가 신기할 정도다. 나 역시도 그 단어들을 쓰지만, 유독 눈에 들어온 단어가 있다. ‘고인물’이라는 표현이다.    

 

‘고인물’이란 어떤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을 의미한다. 주로 한 게임을 오래 해서 실력이 대단한 경우에 사용하는데, 다른 오락 분야에서도 많이 쓰인다. 동아리 활동을 오래 해도, 어떤 장르를 오래 좋아해도 쓸 수 있다. 굳이 따지자면, 좋은 뜻이다. 물이 고인 것처럼 경력이 있다는 이야기고, 깊은 물에서도 놀 수 있는 사람이란 의미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좋게 보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울려 사용했지만, 어느 순간 불편해졌다.  

   

생각해보라. 고인물은 썩었다고도 표현되지 않는가. 이는 내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접한 적 있는 경험이다. 실력을 칭찬할 때 쓰기도 하지만, 마냥 좋게만 사용되지도 않는다. 무조건 단어가 좋게 쓰여야 한단 건 아니다. 단어가 어떻게 쓰이느냐는 문장과 어조, 맥락과 표정에 따라 너무나도 다채로우니까. 다만, 단어 자체가 그리 좋은 맥락이 아니란 소리다. 고인물은 주로 취미나 노는 것에 사용된다. 전문가로 여겨지는 게 아니라, 그저 사용자(user)로서 어떤 한 계열을 오래 한다는 의미로 많이 쓰인단 거다. 즉 다른 걸 안 하고 이것만 하는, 유행을 모르는 사람으로도 사용된다. 유행에 따르지 않는 ‘고인물’. 이 표현이 우리나라에서 나온 게 과연 우연일까? 유행을 독려하는 우리나라의 분위기가 저런 표현을 낳은 게 아닐까 싶다.

    

한 게임만 오래 하면, 한 매체만 계속 누리면 유행은 힘은 잃는다. 유행이란 변화가 있어야 유행이다. 그는 곧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달리 말하자면, 돈을 벌기 위해선 유행이 힘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많은 이들이 유행을 신경 쓸수록 돈이 많이 돈다. 나는 그게 고인물이란 표현이 등장한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우리나라에서 왜 그토록 청년들에게 여행과 연애,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겠는가. 나라의 발전이나 존속, 복지는 솔직히 2번째다. 본인에게 재산이 충분히 있고, 노후자금이 있으면 복지고 발전이고 상관없다. 자신의 인생은 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나라에서 젊은이들에게 강요에 가까운 압박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여행, 연애, 결혼, 출산 모두 돈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이 아닌가. 돈을 쓰게 하기 위해 그런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돈 없이도 여행, 연애, 결혼, 출산이 가능하다곤 이야기하지 말길 바란다. 여행을 가려면 근처를 가고 도시락을 싸도 한계가 있다. 입장료, 교통비, 식비, 사용료….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마찬가지다. 같이 먹지 못하고, 같이 살 곳이 없고, 병원에 갈 수 없고, 입고 쓸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모두 경험이 되고 인생의 한 단계에선 마주할 것들이다. 그러니 무조건 돈 때문이라고 볼 필요는 없지만, 오롯이 청년들을 위한 충고도 아니다. 진정 청년들을 위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걸 들어주겠지 뭘 하라고 지시하겠는가. 유행과 강요는 소비하라는 사회의 분위기에 나온 결과물이다. 심지어 이 둘은 아주 면밀히 붙어있다. 여행지와 여행 스타일의 유행, 데이트 장소의 유행, 결혼 방식과 출산 준비의 유행을 보라.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들은 어찌 보면 너무 유행에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 아닐까? 

    

유행의 장점을 부정하진 않는다. 돌고 돌면서 새로운 걸 창작해내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감각과 도전을 발전시키지 않던가. 선한 유행은 정말 뜻밖의 도움을 주기도 하고,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분명하다. 적절한 유행은 사회를 순환시키지만, 지나친 유행은 사회를 소비의 수단으로 만들어버린다. 모든 것을 소비로 귀결시켜버리게 된다. 사람보다 소비가 먼저 대우받게 되는 것이다. 청년들의 열등감이나 고통을 유행과 강요로, 즉 소비로 이끄려는 사회의 모습은 절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고인물이란 단순한 단어에서 나오는 그 인상을, 분위기를 보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나라는 더 유행에 예민하다. 그 영향과 장단점을 무시해선 안된다. 이젠 지나친 발전보다 살펴보고 다듬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의 나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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