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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Sep 02. 2021

나와 친구들에게 추억 선물하기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선물 박스를 준비하면서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란 충동이 들었다. 코로나 시국만 아니었어도 친구들 얼굴을 보면서 줄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시작은 액자를 줘야 한단 마음이었다. 수채화 배경에 친구들 이름으로 시를 손수 쓴, 소중한 선물이라 꼭 주고 싶었다. 그 액자를 친구들이 가져야 내 작업의 끝이 난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던 것이니까. 분명 그러려고 했는데, 준비하다 보니 이것저것 더 넣고 싶어 규모가 점점 커졌다. 이렇게 선물 박스를 구성한 건 처음이었다. 늘 구상만 했지 해본 적이 없어서 고생 좀 했다. 작은 프리저브드 꽃다발에 향초, 액자, 편지, 그림만 넣었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어떤 색을 더 좋아할지, 어떤 향이 나을지, 안 챙겨준 건 없는지…. 그 외에도 어느 곳에서 주문할지, 뭘 더 넣을지 하는 식으로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다 합쳐봐야 작은 박스에 들어갈 정도였는데도! 

    

다행히 친구들은 많이 기뻐해 줬다. 사회 초년생이 된 친구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낸 것이라, 혹여 지나친 걱정이고 부담일까 했는데 웃음과 감동으로 다가간 것 같았다. 그 순간의 안도는 정말 대단했다. 사실 내 생각보다도 선물하는 건 손이 많이 갔다. 그게 귀찮았단 얘기는 아니지만, 걱정은 매 순간 커져갔다. 시간을 들이는 만큼 보람이 있을까,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을까 해서. 더군다나 나름 서프라이즈로 준비한 것이라 대놓고 취향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꽤 힘든 일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이렇게 손이 간 선물들을 준비한 건 처음인 것 같다. 대부분 케이크 기프티콘을 보내는 식으로 선물을 하곤 했으니까. 기프티콘이 아니면 본인이 원하는 제품을 보내주는 게 제일 좋은 선물이었다. 선물하는 건데 그렇게 정 없이 보내느냔 말도 들었지만, 그게 제일 안전했다. 선물이라면 모름지기 받는 사람이 기뻐해야 본 목적을 달성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다지 눈치가 빠르거나 센스가 좋은 편이 아니다. 그 사실도 많은 고군분투를 통해 얻은 교훈이다. 내가 고른 선물은 내 취향이 담기기 마련이란 것도 뼈아프게 얻은 교훈이다! 내 주위 친구들이 모두 나와 취향이 같진 않으니까. 특히 점점 성장할수록 사람의 취향은 섬세해지고 정확해지니, 좀 덜 설렐지언정 본인의 선택에 따른 선물을 하는 게 편했다. 받는 사람은 기뻐할 수밖에 없고, 주는 사람은 그만큼 보람을 느끼니 말이다. 어찌 보면 극도의 배려가 낳은 결론이고, 달리 보면 최고의 효율을 찾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 대책은 잘 먹혀서 한동안 그렇게 지냈는데, 갑자기 뜻밖의 선물을 주고 싶단 생각이 스친 것이다. 액자 하나만 덜렁 보내기가 멋쩍어서일까? 그냥 친구도 아니고 만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친구들이니까. 날 기다려주고, 응원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니까. 그 보답을 하고 싶었다.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도, 기쁘게 받을 수 있도록. 그러니 어떻게 보면 난 알고 있었던 셈이다. 좀 힘들어도 주는 사람이 고심해서 주는 선물이 제일 최고의 선물임을.      


물론 그렇다고 내 과거의 선물들이 무의미한 건 아니다. 조금 덜 신경이 쓰일 수는 있어도 담긴 마음은 그대로니까. 다만 일상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그렇게까지 정성을 쏟기가 현실적으로 힘들 뿐이다. 매번 그렇게 했다간 선물 주는 것이 스트레스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네 일상은 너무 바쁘고 힘들게 돌아가니 말이다. 다만 이따금 저런 선물을 하는 것도 참 행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유를 내어서 정성을 온전히 쏟는 건 내가 받는 게 아니어도 즐겁다. 내게 돌아오는 게 무엇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돈만 쓰고 시간만 들이고 낭비한 것 아니냐고. 물질적으로 보면 그 말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모두가 알지 않는가. 세상은 물질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돈이면 거의 모든 것이 해결되지만, 그게 있다고 온전히 완벽한 것도 아닌 것처럼. 나는 이번에 선물하면서 드문 행복을 느꼈다. 반짝거리는 기대감과 마음을 표현하는 설렘으로 가득해 있었다. 그건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준비하고 취향을 떠올리면서, 편지를 쓰면서, 나는 친구들과의 시간을 추억했고, 그 가치를 되새겼다. 아,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친구들과의 나날도, 그 관계를 떠올리는 것도, 내 마음을 꺼내어 담는 것도.      


그렇다고 무조건 주위에게 베풀라거나 똑같이 선물을 하란 소린 아니다. 그냥 내가 이번에 준비해보니,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드문 행복을 느낀 것 같아 하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는 그게 너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게 너무 힘겨울 수도 있다. 사람은 머리색, 눈 색, 피부색, 인종, 성별, 나이, 혈액형 외에도 세밀한 차이가 존재한다. 취향, 성격, 환경, 인간관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니 내 이야길 너무 무겁게 받지 말길 바란다. 이 사람은 이럴 때 이런 감정을 느꼈구나, 하고 지나가면 될 듯하다. 내겐 정말 행복하고 소중한, 그런 순간이었다. 보내기 전에도, 보낸 후에도, 친구들의 반응 후에도 뿌듯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시간을 만들어낸 나 자신이 사랑스러울 정도였다. 아마 꽤 시간이 흘러도 나는 이 날을 기억할 것이다. 그게 내 안에 오래오래 남아 날 지탱해주는 추억이 될 테고.      


이런 시간을 그 순간에도 느끼고 있다는 건 참 행운이다.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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