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만남이 깊게 남는 순간에 대하여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 깊이 남을 때가 있다. 여느 때처럼 장을 보러 따라간 대형 마트에서 만난 밀크티 우유처럼. 우리 집에서 밀크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뿐이라 그 기쁜 마음을 공유할 수 없어 아쉬웠다. 가격이 싸면서도 밀크티 맛이 제대로 나서 너무 행복했는데! 4개 들이인 우유가 그렇게 야박하게 보였다. 어쩜 이렇게 조금씩 판매하나 싶을 정도로. 솔직히 트집이라면 트집이지만, 순식간에 동이 난 냉장고를 보니 원망이 무럭무럭 치솟았다.
하필이면 집 주위 마트들에선 그 우유를 취급하지 않았다. 땡볕에 양산으로 무장하고 4군데를 돌아도 없었다.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모른다. 아니, 바나나 우유는 그렇게 많이 있으면서 밀크티 우유는 하나도 없다니! 여러 종류의 제품이 많이 생산되는 시대 아니었나? 분명히 언젠가 학교 수업에서 그런 사회 구조의 변화를 들었는데! 왜 내가 찾는 건 꼭 없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때 친구와 둘이서 단골이었던 하트 와플이나, 어린 시절 딱 한 번 가본 카페 음료 같은 것들이. 꼭 별생각 없이 들어간 곳에서 뜻밖의 행운을 맞이한다. 그런데 또 완벽한 행운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런 곳은 내가 정확한 장소를 잊거나, 없어지곤 하니까. 그러니 그 맛과 매력은 기억하는데 다시 느끼는 행복은 불가능해진다.
차라리 음식만 그런 경험을 한다면 좀 나을지도 모르겠다. 괴롭긴 하지만 언젠가 최대한 비슷한 걸 찾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어지지 않는 그 시절의 사람이나 분위기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 그런 추억은 예측할 수 없게 찾아온다. 여느 때처럼 일어나 먹고, 씻고, 움직이는 동안에. 무슨 불꽃놀이처럼 갑자기 떠오른다. 펑 펑 터지는 폭죽의 소리는 추억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도 닮았다. 불꽃놀이는 아름답고 형형색색이라 모두의 시선을 끌지만, 얼마 가지 않는단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유한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일까? 생각지 못한 뜻밖의 순간을 마주한 인상은 오래간다. 그 제각각의 향과 분위기를 담은 삶의 조각들이 얼마나 선명한지 모른다. 리어카에 가득 실린 모습에 산 분홍 장미의 향과 아저씨의 모습, 패키지 해외여행에서 본 서럽게 우는 여자아이, 여행길 막바지에 갑자기 친해졌던 또래 아이들, 어학연수 때 숙소에서 조곤조곤 놀았던 밤…. 가장 소중한 순간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가장 좋았거나, 새로운 경험이냐고 물어도 아니라고 할 것이다. 제일의 순간들은 아닌데도, 그런 뜻밖의 순간은 갑자기 부옇게 일어난다. 여운이 적지도 않은데, 참 알 수가 없다.
의외의 공간, 의외의 만남이 생각 이상으로 내게 다가오곤 한다. 그런 순간들은 이미 꽤 쌓였는데 아직도 그 이유는 모호하다. 왜 깊게 남는지, 왜 그토록 여전한 영향을 간직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세상의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싫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순간들은 내게 일상 속에서 뜻밖의 감정을 만들어준다.
정신 차려보니 스며든 그리움이나, 애틋함 같은 걸로.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나타난 감정에 놀랄 때도 있지만, 되새겨보면 그런 시간이 모여 날 이루어주는 것 같다. 돌아갈 수도 없고, 다시 느끼긴 어려울 것들이지만, 불꽃놀이가 허공을 한순간 빛내는 게 존재 이유이듯 그런 조각으로 이루어진 막막한 내 인생의 날들이 점점 광채를 찾는 건 아닐까. 태어나서부터 모든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 결국 내게 남은 그날들이 나다운 결말을 선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딱히 유명하거나, 독특하거나, 역사적이지 않아도. 그런 틀에 상관없이 각자의 길을 비추어주는 건 과거의 시간들이리라. 우리가 걷고 있는 게 그 증명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