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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Sep 05. 2021

어느새 글씨체가 달라졌다

글씨체를 보고, 발전에 대하여

어릴 때 듣는 잔소리는 다 비슷할 것이다. 밥 잘 먹어라, 빨리 자라, 제대로 앉아라, 글씨 또박또박 써라…. 나는 그중에서도 글씨가 유독 어려웠다. 손에 힘을 어떻게 줘야 하는지, 잡는 건 어떡해야 하는지 헷갈렸다. 나름대로 공을 들여 써도 어떤 건 괜찮고, 어떤 건 별로라는 소릴 들었다. 이상했다. 똑같은 정성으로 썼는데! 억울할 지경이었다. 사실 지금 떠올려보면 차이가 느껴지지만, 그 당시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글씨 보는 눈은 높았다! ‘어른 글씨’처럼 보이는 필기체와 길쭉한 글씨체를 동경했다. 그런 글씨체를 볼 때면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걸 스스로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꿈은 현실과의 벽이 너무 높았다. 적어도 내겐 그 벽이 절대 낮아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게 여전히 생생하다.  

    

학창 시절에도 글씨 잘 쓴단 소리는 못 들었다. 글씨체에 대해서 하도 데이다 보니 지겨워졌던 탓일까? 보통 이렇게 되면 글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게 자연스럽다. 앉는 자세를 계속 교정받으면 앉아서 하는 공부까지도 싫어하게 되지 않던가. 자기가 잔소리를 많이 들은 걸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주 희귀한 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희귀한 경우였다. 글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뜨거웠으니까. 글씨체가 바람에 날려도 글을 안 쓸 순 없었다. 뭐라고 그 상황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릿속엔 쓰고 싶은 내용이 빙빙 맴돌았고, 그걸 표현하려면 손이 달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작문 실력은 늘어도 글씨체는 여전했다. 부모님도 나도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저 내가 가지지 못한 실력으로 여기고 지냈다.     


그러다 대학교에 와서 한 세계를 마주했다. 필사라는 세상이었다. 나는 사실 필사는 베껴쓰기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막상 알아보니 좋은 학습법이었고, 멋있었다. 필사를 한다고 무조건 글씨체가 예뻤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런 글씨체를 지니고 있었다. 이상한 승부욕이 밀려왔는지 필사를 안 해봤단 소릴 듣고 싶지 않았다. 마침 부모님이 예전에 선물해주신 만년필도 있겠다, 미대생이라 형형색색의 필기구도 있겠다, 도전하기엔 최적이었다.     


시작은 쉬웠어도 마냥 평탄하진 않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했고, 쓰는 도중에 힘이 빠지기도 했다. 잉크가 번지거나 해서 다시 써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계속해 나갔더니, 어느새 글씨체까지 교정됐다. 시 덕분일지도 모른다. 가장 짧은 글로 제일 충격을 주는 문학이라 꼭 하고 싶었던 장르였으니까. 그러다 20대의 내가 사랑한 시를 모아두면 좋겠다 싶어 100편의 시를 필사하는 중이었다. 서정적이란 이유로 원고지에 쓰는데 글씨체까지 반듯해져 있었다. 쓸 때는 영 불안해서 마음에 차지 않았는데, 다 쓰고 나니 너무나 깔끔했다. 내가 쓴 것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우당탕탕 일어나서 부모님께 보여드리니 두분도 놀라 기뻐해 주셨다. 그때의 희열을 뭐라고 해야 할까? 이번 생엔 예쁜 글씨체는 포기했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찾아오다니. 사실 운이 아니라, 내가 해냈단 사실이 짜릿했다. 손 끝에 전율이 일어 충만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맞이하는 건 정말 어렵지 않았다. 하다 보니 이루어졌다. 그렇게 선명한 발전이 말이다. 난 솔직히 ‘이제는’ 내가 발전하기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었다. 이미 성인이니까. 발전하고 성장하는 시기를 지나치지 않았나 싶었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진심이었다. 이게, 사회 분위기 탓도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20대 초반을 지나면 바로 “이제 자리 잡아야지”라는 소릴 듣지 않는가. 너무 급하다. 사실 자리를 잡는 것과 발전하지 않는 것, 배우지 않는 것은 동의어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발전하고 배우고, 그럴 시간이 어딨느냐고 반문한다. 물론 자리를 잡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반드시 그래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전반이 그렇게 기대하는 건 문제가 있다. 우리가 성인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기껏해야 20년 정도인데, 그 이후는 너무 드넓다. 아직 경험도 생각도 성숙해지지 않았을 때만 모든 배움과 발전이 이루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자리를 잡으란 핑계로 배움과 발전을 할 수 없다고 변명하는 것 같다. 크고 중요한 것이 아니어도 되는데 말이다. 모든 성장은 글씨체처럼 사소한 것이어도 된다. 사소할지언정 한 사람에게는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주니까.      


흔히들 글씨체, 습관, 수저 사용법 같은 기초적인 태도는 어릴 적에 형성되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젠 옛날이야기다. 우리는 그걸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필요하면 선생님도 있고, 다양한 분야와 도구를 통해 나아질 수도 있다. 그러니 발전, 성장, 그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발전은 눈에 선명히 보이고, 버겁지도 않다.     

 

막막해 보여도 어느 순간 벽은 내게 문으로 보인다. 

그냥 가볍게, 그 문을 밀고 당겨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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