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모습을 보고 든 의문, 의병의 존재에 대하여
역사를 배운 후 가장 인상 깊은 게 있다면 뭘까? 화려하고 은밀한 걸 좋아한다면 역시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암투일까. 아니면 화통하고 극적이라고 피 튀기는 왕자의 난을 좋아하려나? 어쩌면 옛날 이야기 같아서 단군신화나 삼국유사 이야기가 제일 인상깊을 수도 있겠다. 사실 역사는 아주 긴 이야기이자 교훈이라서, 조금씩만 봐도 참 흥미로운 게 많다. 꼭 우두머리인 왕의 이야기가 아니어도 의미 있지 않던가. 같은 전투여도 다르게 해석이 가능한 걸 보라. 어딜 봐도 인상이 오래 남는다. 나의 경우, 그런 인상을 준 것은 의병이었다. 화려한 궁중 암투나 골육상쟁보다도 그 작은 칭호가 눈에 오래 밟혔다. 그런데 사실 내 흥미 이전에, 자주 등장한 덕분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의병은 정말 우리 역사의 큰 일부분이다. 대몽 항쟁부터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감정기까지 의병은 계속 존재했다.
먼저 의병이란 정확히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나라가 외적의 침입으로 위급할 때, 민중 스스로 싸우는 구국 민병’을 의병이라고 한다. 한 나라의 기록에 한 번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지역별, 시기별로 의병이 존재한다. 많고 많은 시기 중 임진왜란만 보아도 경상도의 곽재우와 전라도의 고경명이 있다. 그들은 각각 주변 의병 몇천명과 함께 합세하여 활약했다.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의병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심지어 활약이 미미한 것도 아니었다. 정규군이 도망친 자리에 대신한 만큼 울분과 절망이 있었을 텐데…. 한을 품고 스러질 것 같은 의병이란 이름은 되려 어떤 군대보다도 활활 타올랐다. 분명 따로 돈을 받는 것도 아니요 강요된 것도 아닐진데, 희한하다 싶을 정도다. 희생을 한다고 정당한 보상을 해준 역사는 손에 꼽는데 말이다.
나는 이런 의병의 모습과 역사에 찬탄하곤 했다. 어쩜 저럴 수 있었는지, 참 용기 있고 멋진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곤 했다. 지키기 위해, 보호하기 위해, 함께하기 위해 모든 걸 다 내던진다는 느낌이랄까? 숭고하고 열정적인 수호라고 여겨졌다. 이순신 장군님의 전투만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피터지는 독립만큼, 의병의 모습은 뜨거운 감동이었다.
그런데 요즘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의병이 안 보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전투는 일어나고, 침략도 나타나는데 어째서 항쟁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가. 때로 모국을 떠나는 행렬이 있다는 이야기는 분명 사람들이 대피하고, 위기를 인식한다는 이야기일텐데. 어째서 지금, 저 나라에는 의병이 보이지 않는가. 나는 이런 의문을 떨치기 힘들었다. 싸우지 않으면 잃을 터전이 아닌가? 사실 이 의문은 좀 우스울 수도 있다. 내가 모르는 나라의 모습이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나라라고 항쟁하고 싶은 사람이 없을까? 그 나라의 진면목을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철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 나라엔 총기로 위협받으면서도 싸우는 사람들이 있고, 상처를 품고 목소리를 알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깨어있고 맞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어 더 의문이 든다. 그들은 우리의 예측처럼 그들의 지역에서 맞서 싸우지 않는다. 이건 어째서일까.
나는 그 이유가 사회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전, 의병이란 이름이 나왔던 시대에는 사회의 근본이 땅이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끼니를 구하기 힘들었고, 정착이 어려웠다. 땅이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었다. 땅이 곧 목숨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세상이 아니다. 맨몸뚱이 하나로도 지식과 기술이 있다면 살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더 이상 땅을 죽기살기로 지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지켜봤자 땅만으로는 못 살아갈 것 같으면 뭐하러 지키겠는가. 나는 그게 항쟁하는 사람들이 없어진, 말하자면 의병이 사라진 이유라고 본다. 옛날에는 한 지역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 지역에서 살았고, 크게 잡아봤자 그 나라에서 태어나 살고 죽지 않았던가. 이제 그 지역의 범위는 전 세계로 확대됐다. 어디에서 태어났든 상관없다. 어디든 가서 살면 된다. 땅이 없어도, 고향 혹은 고국이 아니어도 괜찮아진 것이 의병의 존재 이유를 없앤 듯하다.
물론 의병 활동을 그저 자신이 살기 위해 한 일이라곤 보지 않는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다면 어떻게 맞서 싸우고, 서로 도왔겠는가. 그들의 활동은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할 지언정 숭고하고 귀한 모습이었다. 다만 왜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는가에 대해 생각했을 뿐이다. 왜 의병 같은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해서. 그러다 그런 모습이 없는 배경에는 사회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과 달라진 윤리의식이나 무기의 종류, 집단과 개인에 대한 가치도 그 이유 중 하나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건 결국 먹고 사는 것이니,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의 변화가 의병 같은 민중의 투쟁을 없앤 것 아닐까 한다. 아무리 사상이 있어도, 종교가 독실해도 사람은 목숨 앞에 싸우게 되어있다. 결국 자신의 생명보다 앞선 미래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모든 투쟁을 설명할 순 없다. 사회가 변했다고 투쟁이 없어진 것은 아니니까. 얼핏 보면 모순된 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복잡하다는 법칙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한 가지 현상에 반드시 한 가지 원인만이 있는 게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영향을 끼치기도, 받기도 한다. 다만 내가 제일 주목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 앞 투쟁은 발생하는 편이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먹고사는 게 땅에 달려있었다면 과연 사람들이 투쟁하지 않았을까? 현대의 의병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나는 그게 가장 핵심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다. 뭐, 내가 모든 시간을 겪은 건 아니니 다른 이유가 또 숨어있을 수도 있다. 뿌리 깊은 부정부패와 불신이 의병으로 태어날 사람들의 저항심을 잡아먹은 걸수도 있으니까. 또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의병이 너무 고지식한 형태일 수도 있다. 세계에 도움을 요청하고,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이미 훌륭한 의병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