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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an 11. 2021

비혼으로 한 번 살아가 보고

<혼자서도 괜찮아-쿄코>를 읽고

혼자 사는 준비를 해야겠다고 느끼는 시기가 온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연애를 못 해봐서 연애를 해보고 싶긴 하지만, 안 한다고 외롭다거나 힘들진 않았다. 그 점을 평소에 늘 상기하는 편도 아니니까. 물론 그것과 별개로 비혼은 알게 된 순간부터 내 인생의 선택지 중에서 가장 빛났다. 뭣도 모르는 나이부터 지금까지도. 자연히 점점 비혼에 대한 생각은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심지어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 비혼의 연장선으로, 내 사후의 유산이 어디로 가는지도 공부했다. 아무래도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취업과 독립을 할 시기가 되어가니 무의식중에 알아둘 필요성을 절감했나 보다. 이보다 더 내 진정한 의향을 아는 방법이 또 있을 리가.     


처음에는 ‘쿄코’라는 필명 때문에 일본 작가인가 싶었다. 그래서 일본은 인구 고령화가 진행된 대표적인 나라이니 나이든 비혼의 모습을 알 수 있으려나 짐작했다. 그러나 책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보이는 것은 한국의 여성들에 관련한 글이었다. 단번에 집어 읽으니 흔한 한국 여성이 닥치는 현실에 대해서도 잘 드러나 있고, 작가 자신에 대해서도 잘 서술되어 있어 읽기 흥미로웠다. 그중에서도 작가가 여러 직업을 거쳐온 것이 신기했고, 그때그때 상황이 바뀌는 순간이 드라마와도 같아서 재밌고, 작가의 연륜만큼 쌓인 생각들이 놀라웠다.  요리사를 거쳐, 번역 일을 하다 글을 쓴 사람이 집에 대해서, 셀프 인테리어에 대해서, 연애에 대해서 자신을 성찰한 모습은 그 사람의 집 사진처럼 그 사람의 분위기를 닮아 깔끔하고 부드러워서 나이 먹음의 미학을 보는 느낌이었다. 혼자 살며 주의해야 하는 것, 안전과 경제, 소비, 인테리어, 연애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며 조곤조곤 정리한 모습은 머리에 박히면서도 그 사람의 색을 잃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미래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왜 내가 비혼을 추구하는지 더 명확한 정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작가처럼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이 크지 않다. 오히려 부모님의 모습을 교과서로 보는 딸에 맞을 것이다. 마찰과 갈등을 싫어하고, 명확한 것이 아니면 부모님의 뜻을 따르며 사는 인생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아직도 선택이 힘들다. 애초에 손해를 본다는 느낌 없이 두 선택지 다 비슷하면 타인의 선택에 맡기는 성격이라. 타고난 무던함은 어느 때에도 발휘되어 갈등에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가 부모님과의 갈등이 두려워 독립을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을 때 가슴이 찔렸다. 하지만 나는 머지않아 독립할 것이다. 피할 갈등이 있고, 피하면 안 될 갈등이 있지 않은가. 그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 언제고 부모님의 안에서 살 수는 없다. 게다가 나는 아직 타인과 모든 생활을 합치기엔 준비가 되지 않았다. 너무 이른 고민을 한다고 비웃는다 해도,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어떻게 결혼에 대한 결론은 내리나? 또, 가능한 한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나를 더 알아가고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자신할 수 없지만… 꼭 필요한 시간이다. 그 시간조차 없으면 나는 뭉뚱그레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는 건 사양이다! 보라. 나 혼자선 어떻게라도 해 보려고 하는데 거기에 누군가가 끼어들기라도 하면? 그 상대는 내 모든 화풀이의 대상일 거다!


물론 부모님께 죄송한 것은 있다. 나 자신도 조카와 사촌 동생들이 귀여워 아이에 대한 정이 있으니까. 하필 외동딸이라 평생 손주를 못 보실 것이 안타깝지만, 아무리 부모님이 결혼하라고 하셔도 그것만큼은 따를 자신이 없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걸 못했을 때, 그리고 내가 정말 싫어하는 걸 했을 때, 그런 두 순간 모두가 내 인생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선택을 아직도 진저리친다. 그걸 기억하는데 결혼이란 큰 문제에서 타인의 뜻을 따르고 싶지는 않다. 어떤 것이건 간에 상관없다 하는 말을 달고 산다고 의견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그래, ‘독거 노인’이 되겠지만, 그렇다 해서 결혼을 하고 싶진 않다. 결혼이 사람다워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할 가치가 없지 않은가. 결혼은 타인과 인생이 오가는 것이니 삶의 관문이 되어야지. ‘외로운 게 싫어서’라는 수단이 되면 괜찮을까. 이 생각을 정리하는데 책이 좋은 기폭제가 된 것 같다. 

     

앞으로 시행착오를 겪을 일이 많이 남았다.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지는 아직도 두렵지만.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곧 모든 것이 바뀌는 것처럼 나이를 먹으니까. 어떻게든 달라지며 살아가지 않을까. 인생 초중반, 아직 남은 인생이 너무 많아 두렵다. 하지만 마냥 겁먹는 건 자존심과 끈기 때문에 못 하겠다. 어디 한 번 살아가고 나서 보자. 결론이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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