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 Jan 12. 2021

충격 속에서 얻은 위안

<속속들이 이해하는 서양 생활사-김복래>를 읽고

나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서양의 역사하면 고전적인 성과 르네상스 시대나 로코코 풍의 드레스가 먼저 떠오른다. 화려한 삶을 살고 간 귀족들의 모습 말이다. 그게 서양 생활사라고 생각했다. 그것 외에 다른 게 있나, 의아할 정도였다. 그러나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넓고 다양했다. 제도부터 의복, 먹거리까지 말이다. 말 그대로 ‘생활사’였기에 새로운 점이 많았다. 아니, 놀라운 걸 넘어 충격으로 가득 찬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제일 놀라웠던 것은 상류층과 달리 하층민, 백성들의 의복과 식생활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수렵에서 농업으로, 농업에서 상업으로 바뀌는 그 세월에 뭐가 변했는지. 하기야 왕이 바뀌고 귀족이 바뀐다고 의미가 있었을까 싶지만…. 그토록 오랜 세월을 살았고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 부류에 들어갔었는데 변화가 그토록 없었다니! 내가 알고 있는 변화가 그래도 어느 정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줄 알았다. 막연히 여긴 상식이 뒤집힌 순간이었다. 봉건시대와 지금의 차이가 근대에 와서야 천지개벽하여 이루어졌다는 걸 알게 되니 놀라웠다. 근대의 역사가 특히 복잡한 이유를 안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토록 많은 면에서 변화가 급진적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순서와 결과의 기억과 기록이 어떻게 단순할까. 작고 사소한 것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을 테다. 어쩌면 그때부터 ‘꼰대’가 생긴 걸지도 모른다. 그전에는 오래 산 지혜가 무조건 맞아떨어졌었는데 그게 통하지 않는 시대가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백성들의 생활만 그대로였던 게 아니었다. 함께 발전 혹은 변화가 없었던 또 다른 요소는 여성의 가치 혹은 대우였다. 오, 잘못하면 서양 생활사가 아닌 페미니스트의 역사 읽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페미니스트는 일부 몰지각한 페미니스트의 발언과 사상으로 인해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이 물어뜯기 좋을 만한 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비방할 생각은 없으나, 그 정도로 여성에 대한 생각과 대우가 얼마나 나빴는지 알 수 있었다. 이에 관련해서 내 무지를 한탄하는 일이 있었는데, 나는 그래도 서양에는 기사도가 있으니 동양보단 나았을 것이란 생각이 알게 모르게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 귀부인에게 사랑은 결혼이 아니었고, 부인 스스로를 위로하고 기사라는 이익을 얻기 위한 영주의 전략이고 정치였는데! 이래서 일부만을 알고 그걸 선망하면 안 된다고 하는 모양이다. 동양의 백성도 고난을 겪었지만, 서양의 백성은 페스트까지 돌았기에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고 여겼는데, 귀부인과 관련된 제도까지 그럴 줄이야. 내가 너무 낙관적이었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부분이라 더 충격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기사도와 더불어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성’이다. 성이 그토록 불결하고 음침한 곳이었다니! 물론 지금의 시선으로 보기엔 좀 음침하단 생각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바닥에 짚을 깔고 그 짚으로 온갖 해충과 쥐가 다녔다니…. 페스트가 왜 성에 있는 사람들까지 퍼졌을까, 의문이 들었었는데 그 의문이 끔찍하게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상류층이어도 성에 사는 한 피할 수 없었으리라. 위생과 세균에 대한 상식이 퍼져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게 얼마나 행운인가. 더군다나 이런 시국이면, 더 실감하게 된다. 어쨌든 자기가 왜 죽는지도 왜 아픈지도 모른 채 살진 않으니까! 확실한 방어 수단을 갖추고 있다는 게 참 안심이 된다.

      

현실에 대한 안도와 달리, 충격은 계속되었다. 중세는 그래도 조금 더 익숙하고 널리 알려진 부분이라 상상도 쉬워 충격이 많았었다. 그러니 고대는 얼마나 이상하고 상상조차 되지 않았는지! 서양 사람들이 동양의 고대 의복을 이야기하면 이런 기분일까? 한옥과 제사의 이야기가 이런 기분일지…. 고대 그리스란 시대는 사람들의 환상과 선망을 불러일으키지만,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기묘하고 끝이 예고된 곳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신조차도 조금 뛰어난 인간 정도로 여겼으면서, 그 인간에는 외국인, 여성, 노예가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들이 신이며 다른 이들은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인식과 지칭하는 단어만이 다르지, 무엇이 다른 것일까. 고대 그리스는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성과 기사도와 마찬가지로. 또 하나, 내가 잊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아버지 권위의 시작이 사제의 대행이었다니. 한마디로 신의 권위를 대행하는 위치의 권위였지, 남성 자체의 권위는 없었단 소리인데! 그 옛날 전투가 조금이라도 적은 생활이었다면 남성과 여성은 지금껏 평등했을까. 아마 그래도 무리였을 테다. 인간이란 선을 긋고 타인을 굴복시키는 데 생기는 즐거움을 즐기는 종족이라고 하지 않나. 지금의 생활이, 지금의 상식과 제도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신기할 정도다. 사람이 악독하다 할지라도 쇠퇴하지는 않았다!


이렇듯 다양한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저자의 의도는 내가 충족시킨 것 같다. 서양의 생활사에 대해 모르는 면이 그토록 많았는데 이제는 슬플 정도로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인간은 모를 때 선망하고 믿게 된다지. 신의 존재도 확답할 수 없기에 믿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작은 예지만 내가 오늘 그걸 작게나마 경험했다. 마냥 기분 좋은 깨달음은 아니었지만 알게 된 것에 있어 감사한다. 역사에 대한 탐구는 끝이 없고 답이 모호한 법. 지금이라도 안 것이 어디인가.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나, 진실을 외면하는 건 죄라고 했다!

작가의 이전글 비혼으로 한 번 살아가 보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