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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an 13. 2021

앤의 영향, 앤의 의미

<빨강머리 앤 나의 딸 그리고 나- 로릴리 크레이커>를 읽고

‘빨강머리 앤’만큼 나한테 중요한 아이가 있을까? 나는 평생 앤을 잊지 않았다. 어떤 매력적인 소녀와 여성들이 내게 다가와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순 없었다. 한때 나와 자매라고 하고 다녔던 Hi Dora의 ‘도라’도, 나에게 성숙한 여성으로만 보였던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도,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제인 에어의 ‘제인’도, 활발한 무시무시함을 나에게 선물한 ‘삐삐’도 앤을 이기지 못했다. 그 작은 소녀의 흔적은 참 자주, 그리고 깊이 자리한다! 일례로, 나는 ‘셜리’라는 이름을 보아도 무의식적으로 그걸 성으로 취급한다. 끝에 ‘e’가 붙은 앤의 영향이다. 그러니 내가 앤과 관련된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작가는 그녀와 앤이 많은 공통점을 지녔다고 했다. 나 역시 그에 동감한다. 나는 고아는 아니었지만, ‘조시 파이’ 대신 비슷한 부류의 아이들을 만났고, 주근깨 대신 눈이 작았고, 함께 이야기를 좋아했으며, 절친한 친구를 갈망했다. 이런 유사점 때문일까? 나는 앤이 길버트와 겨룰 정도로 똑똑하고 ‘야무지며’, 자존심이 강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빛을 발한 사람은 대단해 보였다. 그런 존재를 동경하지 않는 건 너무 어려운 법이다. 사실 그중에서 오랜 세월이 지난 아직도 기억할 정도로, ‘앤은 친구를 사귀는 데에는 천재여서’ 친구에 대한 고민이 적은 것이 제일 부러웠다. 나는 왜 앤이 그렇게 잘났는데도 검은 머리를 갈망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빨간 머리를 선망했고 날렵한 몸과 특유의 맵시가 부러워 나중엔 이해했다. 내가 앤을 부러워하듯 앤은 다이애나를 부러워했다면 공감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좋아했어도 앤을 왜 좋아하는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 약간 혼란스러웠다. 나는 책을 좋아한단 이유만으로 그녀에게 매력을 느꼈던 걸까? 아니면 작가가 언급한 대로 ‘고아’는 상실과 이별을 겪은 자에게 해당하는 것이어서 친구를 상실한 어린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걸까?      


내가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내가 얼마나 흠칫했는지 주변인에게 말하면 별나다는 시선을 받을 것이다. 나는 결단코 앤이 입양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고아’라는 말이 얼마나 가슴을 후벼 파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내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는 건 가슴 아프지만 좋은 일이다. 작가와 딸의 입양이란 이름의 인연도 신기했는데, 모녀와 앤이 만나니 나는 울 것만 같았다. 신을 안 믿지만, 신이시여, 저들을 축복하소서! 비록 종교는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리라. 작가는 내가 몰랐던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일생을 얘기해주었고, 그 삶에서 나는 루시가 바랬던 일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인이 아닌 한 그 감정은 형용할 수 없다. 누가 알았을까. ‘월터 셜리’는 앤이 상상했던 ‘아버지’였다. 할 수 없는 것은 하지 않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 작은 챕터는 얼마나 수많은 한숨과 눈물을 거름으로 삼아 피어난 걸까. 그걸 읽었을 때 내 감상은 ‘역시나, 그랬구나, 그래, 그래야 앤의 아버지지. 그래야 앤의 가족이지’에 불과했다. 얼마나 가벼운 생각일까. 부모의 품을 떠난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오, 그러나 생부 생모를 평생 그리면서 그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들을 수 있는 것은 짐작과는 얼마나 차원이 다른 일인지. 


허나 도라와 문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얼마나 부모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너무 무지했고 어렸다. 그들은 눈물로 아이를 보냈고, 그 정도의 용기가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가. 그래, 자신이 느끼는 과오가 사람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대단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녀들은 이겨 냈다. 그게 그녀들의 용기였다. 누구도 그녀들을 비난할 수 없다. 그러나 사실, 나는 로릴리와 피비가 입양을 인지하고, 특히 피비가 입양 놀이로 입양 서류를 작성했을 때 진심으로 감동했다. 그녀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강한 여인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너무 과한 찬탄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허나 제발 생각해주길. 나는 어린 날 앤에게 반했듯 로릴리와 피비에게 반했으니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는지 모른다. 죄책감이 느껴지면서 로릴리에 이입해 생부인 톰을 원망하기도, 그녀의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그녀를 존경하기도, 피비에 대해 안쓰러움과 감동을 함께 내비치기도 했다.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 인물에게 반하지 않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은, 내가 지금 부모의 처지가 아닌 탓에 마릴라와 매슈, 로릴리의 마음을 그 속까지 모를 거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그토록 좋아해 왔던 앤인데도 내가 본 시선은 너무 가벼웠다. 그녀의 가족과 그녀의 영향을 난 실감할 수 없었다. 반드시 실감해야만 좋은 독자, 좋은 친구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그녀의 모습과 의미를 알게 되어 기쁘다. 앤은 그냥 소녀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위안이었고 누군가에겐 로망이었고, 누군가에겐 희망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그녀는 힘을 주었다. 그런 그녀는 어떤 모녀에게는 유대감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런 자리를 차지하는 게 쉽지 않은데, 참 대단하다. 물론 문학 속의 앤만 대단한 건 아니다. 그런 그녀에게서 영향을 받은 현실의 소녀들도 있지 않은가. 모두 멋있고 용감한 존재들이다. 현실의 ‘앤’인 여인들이 강해지고 나아가는 걸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부디 굳이 강해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행복해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 빨강머리 앤이 온갖 편견을 물리치고 결국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살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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