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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an 14. 2021

이상하게도 부모의 입장입니다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수지 모건스턴, 알리야 모건스턴>을 읽고

고등학교 때,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책을 벌써 읽느냐는 질문을 들었기에 기억에 박힌 책이다.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그런 책을 읽기엔 너무 어리다고, 그런 책은 선생님 나이나 되어야 읽는 법 아니겠냐고 하셨다.     


그때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모녀 관계에 대한 책을 지나치지 못하는 건 내 버릇 중 하나다. 사실 굳이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그런 책은 보게 된다. 모녀 관계란 얼마나 흥미롭고 매력적인 소재인가. 본인이 모녀 중 어느 쪽이든 그 관계는 참 복잡하고 다양해서 탐구하기에도 끝이 없다. 그뿐이랴. 엄마와 딸은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나는 어릴 때보다 자랄수록 엄마와 외모적으로도, 분위기 쪽으로도 닮아 간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심지어 목소리나 재채기 소리까지 똑같다고들 한다! 그러니 엄마의 모습이 내 미래가 될 것 같고, 엄마의 과거가 나와 같을 것만 같다. 흥미를 안 느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배경 아닌가. 그런 것이 싫은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엄마의 모습이 내 미래 모습이길 바라니까.      


우리 엄마는 무언갈 배우려고 하는 의지가 강렬하고, 바지런하고, 소통한다. 엄마 특유의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야기할 때 엄마의 모습은 ‘바람직한’ 어른의 모습이다. 보호하고 지도하면서도 보듬는 느낌이랄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이 엄마 그 자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엄마를 좋아하는 나라서 그런지, 혹은 내가 지금 사춘기라는 10대를 넘어 현실을 더 직시하는 20대가 되어서 그런지, 나는 갈수록 모녀 관계를 다룬 책에서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머니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시대나 문화의 차이였지만 내가 딸 입장을 더 공감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입장을 더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걸 얘기하자면 좀 당혹스럽고 우스운 일이다. 나는 평생 딸의 입장이고, 부모의 위치를 실감해본 적도 없고 부모와 비슷한 자리에 있지도 않았는데 그 입장을 더 공감한다니 이럴 수 있나 싶다. 내가 부모의 입장을 공감한다면, 어른들은 아마 다 웃지 않을까? 부모의 마음은 되어봐야 아는 법이니까.      


어쩌면 내가 비혼을 생각하면서 부모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자라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면 어떻게 할지, 어떤 방침을 취해야 할지 고찰하는 과정에서 지친 것은 정말 입시 다음으로 고된 시간이었다. 어리석을지 몰라도, 그런 시간은 꼭 한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은 결국 나에 대한 통찰이고 앞으로의 계획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모든 부모는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하나 이상 존재한다. 그것이 감정이든, 혹은 신체적 요소이든, 혹은 경제적 이득이든. 그 요소가 부모의 마음에 남아 썩을 수도 있지만, 대다수는 아이의 웃음에 산화된다. 아이들을 꽃피우는 거름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사실은 커서야 깨닫고, 자신들도 부모가 되어 그 과정을 반복한다. 마냥 옳다고만 하는 건 아니지만, 나름 좋은 방식이다. 서로가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면 가장 이상적이기도 하다. 완벽하게 동등한 관계는 활자 속에서도 찾기 힘든 법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 길이 존재하고, 선택지는 끝도 없다. 이상적인 사람이 존재하지 않듯 이상적인 아이도, 부모도 존재할 수 없지만, 사람은 계속해서 비교하고 고뇌하는 과정을 겪는다. 특히 자신의 앞을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현실의 뼈아픈 단점을 절감하는 젊은이들은 더욱 그 과정에 부정적으로 임한다. 부모님의 양육에 대해서 만족한다 해도 부모님의 아쉬움을 모르지 않는다. 부모님 몰래 겪은 고난이 아직 나를 떠나지 않았으며 분석적으로 나온 현실의 모습이 안겨주는 절망은 내가 먼 훗날의 가족을 꿈꾸기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토대를 우선시하도록 만든다. 이 길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런 고찰 때문에 내가 부모의 입장에 대해 더 공감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부모의 희생이 곧 내 희생이 될 수도 있고, 현실의 경제적 요소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지나치게 감정적인 자식들의 모습은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마련이니까. 그걸 반드시 버텨야 한다는 것은 모두에게 너무 잔혹하다.     


저자가 엄마와 딸 두 사람인 책은 드물다. 상당히 드물다. 모녀 관계를 다룬 책은 유아 서적을 제외하고도 족히 수백 권이 되겠지만, 대부분 한 사람의 시점으로만 나오기 마련이다. 이 책은 깊은 고찰이 존재하지 않고 엄청난 팁이나 깨달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엄마와 딸이 한 사건이나 일상에 대해 느끼는 상반된 감정과 생각들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모녀 관계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엄마의 위치에서 딸을 짐작하는 것과 딸의 위치에서 엄마를 헤아리는 것은 실제와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을 성찰하고, 결혼과 모녀 관계, 가정에 대해 생각해보기 좋은 책이 이것 말고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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