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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an 15. 2021

사임당과 난설헌, 찬란한 이름들

<조선왕조여인실록-배성수, 이봉학, 고기홍, 이종관>을 읽고

나는 자타공인 ‘역사 덕후’다. 거기에 여성 이야기까지 나온다면, 그 책은 거의 나를 위한 맞춤 책이라 할 수 있다. 역사에 짤막하게나마 나온 여성들의 이야기는 늘 흥미진진하니까. 그때마다 참 다양한 여성들을 보았다. 겹치는 여인들은 신기하게도 드물었다! 그 여성들은 비운의 왕비이기도 했고, 야망의 화신이기도 했고, 이름 없이 출신과 성만 남은 여인이기도 했다. 그녀들의 이름과 인생은 때로 타산지석의 표본이었고, 때로는 빛나는 예시였다. 이 책에선 꽤 유명한 여인들을 깊고 다채롭게 소개했는데, 그래서 더 새로웠다.     


많은 여인 중에서 특히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이 눈에 들어왔다.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은 그 재능으로 유명한 여성이지만, 행복했던 신사임당과 비극적이었던 허난설헌으로 대조된다. 그런 대표적인 이미지 때문에 나는 두 여인이 동떨어진 시대를 산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본가도 강릉으로서 같고, 생가도 자동차 10분 거리로 매우 가깝다. 시대 역시 유사한데, 단지 나이 차이가 조금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두 여인이 이렇게 다르게 살았던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그 원인은 참 단순하고도 복잡했다. 다름 아닌 가족과 가정환경이 범인이었다. 신사임당은 조선에선 정말 흔치 않은 모계 집안의 딸이었다.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본가에서 태어나 자기 자신도 고향에서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니 자연히 친정에 힘이 있었고, 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라 교육도 잘 받을 수 있었다. 혼인한다고 친정을 떠난 것도 아니었으니, 재주를 더 떨칠 수 있었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신사임당이 유명한 것이 그림임을 봤을 때 그 사랑과 지지를 더 잘 느낄 수 있다. 그림은 예나 지금이나 준비과정이 필요하고 몰래 하기는 힘든 작업이다. 물감, 각종 붓, 종이, 종이 누르개 등 필요한 재료만 봐도 얼마나 성가신가. 결국, 많은 손과 정성이 필요한데, 많은 작품이 지금도 내려오는 걸 보라. 그 지지가 어느 정도의 힘이었는지 상상이 간다. 재주 많고, 사랑받고, 흠잡을 데 없는 규수 그 자체였으리라. 거기에 신랑도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데릴사위를 들였으니 자기 뜻을 관철하기에 딱 좋은 배경이었다. 정말 모든 요소가 신사임당이라는 여성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 것처럼 잘 들어맞는다.      


하지만 허난설헌은 신사임당처럼 그리 운이 좋지 못했다. 그 뛰어난 머리에 맞는 교육을 받아 아버지의 사랑으로 자랐으나, 시집을 간 곳에서 박대를 받았다. 신랑이 뛰어난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고 질투해 시모로부터도 구박받았고, 그를 계속해서 시의 원천으로 삼았으나 한계가 있었다. 설상가상 친정은 역모에 휘말려 힘을 줄 수 없었고 태어난 아이들은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 결국, 허난설헌은 의지했던 오라버니가 죽은 다음 해 세상을 떠나고 만다. 두 여성 다 친정의 사랑을 받아 흔치 않게 좋은 교육을 받고, 훌륭한 자질이 있는 시인이고 예술가였으나 그 길이 이렇게 갈라질 줄 알았을까.     


단 신사임당은 시부모를 모시기도 했고, 그 당시 여성의 일이라 생각되었던 바느질과 자수 등의 일에도 열심이었다. 하지만 허난설헌은 비교적 그런 일을 등한시하고 글에 매진했다. 이 차이가 그들의 괴리를 더 넓혔을 수도 있다. 이렇게 단편적으로 보면 허난설헌이 왜 자수 등에 일을 다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어리석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생각해보라. 허난설헌의 재주는 결코 한낱 글재주가 아니었다. 대단한 재능이고 실력이었다. 그런 여인이 자수까지 해야 했을까? 그것까지 바라는 건 너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그녀의 인기가 옛 한류라고 평해질 만큼 차고 넘쳤는데 그 인기를 인정할 수 없어 치졸한 깎아내림을 계속한 고국이 원망스러우면 원망스러웠지, 허난설헌이 어리석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요즘 누가 이효리를 보고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고 욕할까? 다 자신만의 재능과 길이 있는 법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인기를 누려 사신이 허난설헌의 시를 칭찬할 정도면 대단한데, 만일 허난설헌의 친정이 역모에 휘말리지 않았더라면 허난설헌의 칭송도 신사임당처럼 드높았을지도 모른다. 많은 예술가가 그러하듯이 허난설헌의 생애가 비극적이고 이후에 작품만이 남아 빛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녀들의 생애에서 또 차이가 드러난 점이라면 자식의 이야기일까? 7남매를 낳아 훌륭히 기르고 교육한 신사임당과 짧은 생애를 접었던 허난설헌. 당시에는 자식을 낳는 것이 사회의 기준이기도 했으니 사임당은 더 안정을 찾았을 것이고 난설헌은 더 위태로워졌을 것이다. 그런 생명이 달린 일은 천륜이니 더 할 말이 없지만, 낳은 어머니의 입장으로 난설헌은 더욱 힘겨워져 그 짧았던 생애를 마쳤을지도 모르겠다. 유명한 말이지만, 미망인과 고아라는 말이 있어도 자식을 잃은 부모를 칭하는 말이 없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 비극을 겪은 난설헌이 무너진 건 어쩌면 지탱할 가족이 없어서일지도…. 이 모든 것이 단 하나의 비극이 아니니 거듭 알게 될 때마다 탄식이 새어 나온다. 단 하나의 이유라면 그걸 막을 방도라도 생각하겠지만 세상사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닌 법이니 안타깝다는 말만 맴돈다.     


나는 모든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동경하고 부러워한다. 그들의 재능과 재능을 발휘하는 모습은 시대를 막론하고 남녀노소 찬란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찬란한 모습 아래의 그림자를 보다 보면 그네들이 왜 평범한 이들을 때로 선망하곤 했는지 조금 이해하게 된다. 그녀들의 차이와 상관없이 그 그림자가 어떻게 제각각으로 깊고 험난한지, 버틴 것만으로 존경하게 되니까. 허난설헌은 힘겹게 살았으나 재능을 꽃피워 버텼고 신사임당은 평탄한 인생이었으나 아이들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각각 아이와 오라비, 어머니에 대한 시를 읽노라면 그 고통과 아픔이 느껴진다. 그런 그림자는 결코 누구에게도 비할 수 없는 법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녀들이 현대에선 별로 특별하지 않지만, 그 시대에 살았기에 더 의미가 있다고 한 바 있다. 그에 공감한다. 그 시대는 지금과 달리 자유롭지도, 자기만의 뜻을 펼치기도, 개인으로 살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들이 버텨 한 생애를 살아낸 것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 사임당과 난설헌의 이름이 찬란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생애와 이미지가 달라도, 차이가 드러나도, 언제나 새로운 찬란함이 가득한 이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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