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빛을 잃은 로망, 작은 소망을 바라보면서
학창 시절엔 곧잘 로망을 꿈꾸는 것 같다. 연애든, 자취든, 대학 생활이든…. 세상을 다 알기엔 어리고, 현실을 보기엔 해맑은 나이여서일까? 유독 그 시절에 상상한 미래는 반짝거린다. 그 잔상은 한동안 남아서, 대학 생활 도중에도 문득 아쉬움이 샘솟게 한다. 기회만 있으면 고개를 쳐드는 모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만큼 끈질기고 성가시게 다가왔으니 말이다. 특히, 나의 경우엔 선후배 관계가 그런 여운을 주었다.
의지되는 선배. 어른스러운 선배. 도움을 주는 선배. 든든하고 멋있는 선배. 야무진 후배. 싹싹하고 존경할만한 부분이 있는 후배. 잘 맞는 후배. 어느 쪽이든 참 이상적인 모습이다. 나는 이 둘 중 하나라도 되고 싶었다. 그런 선후배를 바라는 건 너무 큰 걸 바라는 것 같아서, 나라도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주변이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상상했다. 너무 자신만만했던 게 문제였을까? 어쩌면, 내가 대학을 만만하게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벌써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애당초 아는 선후배가 적다! 같은 과 선후배는 다 합쳐봐야 3명이 되려나 싶을 정도다. 변명하자면, 온전히 내 탓이 아니다. 우리 학교 특성상 우리 과에는 한 학년에 100명이 넘는다. 같이 수업을 들어도 누가 동기고 누가 선배인지 알 수가 없다. 설사 수업 도중 알게 되어도 서로 연락하며 친해지는 게 아니면 친분을 쌓기도 힘들다. 누가 누군지 모르고, 관계를 맺기도 어려우니 선후배 관계가 돈독하기가 어렵다. 미대여서 그런지 개인주의가 심한 편인데, 개인주의자를 모아둔 사회라고 보면 된다. 서로 얽히는 걸 원하지 않는다. 운 좋게도 동아리로 알게 된 선후배는 꽤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훨씬 소원해졌다. 그렇다고 그전에 유별나게 친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내 예상보다도 인간관계란 아슬아슬한 존재였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곧 화해하곤 했지만…. 대학에 와서는 달랐다. 7년 지기 친구와 절교하고, 여러 나잇대의 사람을 만나고, 갑자기 친해졌다 갑자기 끊어지고. 그게 허무하고 쓸모없단 소리는 아니다. 시간이란 값을 치르고 얻은 경험이니까. 기분이 나쁘고 로망을 이루지 못했다 한들 내게 가르침을 몸소 준 것이지 않은가.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이 한 번도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눈치가 지나치게 없거나 이기적이거나 둘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내 로망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선 어쩔 수 없는 미련이 남는다. 혹 사회에 나가면 다르지 않을까, 하고 행복 회로를 돌리기도 하니 말이다. 왜 이토록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지는 모르겠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일까? 주변에게 칭찬과 기대를 받고자 하는 마음일까? 그런 소망이 없다곤 못하지만, 이미 지쳐서 로망에 대한 의욕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겪은 나날은 내 로망과는 많이 다른데 저 로망을 유지해야 하나 고민스러울 정도다.
별난 일이다. 로망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지만 그걸 이토록 짐으로 여긴다니. 마치 나의 로망, 나의 꿈이 아닌 나의 목표 같다. 현실적인 목표와 로망이라는 목표가 병행하면서 내게 무겁게 다가와서 그럴까. 어릴 적 순수하게 바랬던 것들이 변해버렸다. 내가 졸업한 학교가 폐교된대도 이 정도의 서글픔은 아닐 텐데. 현실에서 살다가 그 작은 꿈들의 빛을 다 꺼뜨려버렸다. 아직도 빛은 자그맣게 살아있지만, 그때의 그 황홀함이 사라졌단 게 느껴진다.
아, 인생에선 다 경험이 되고 다 배우는 과정이고 다 변한다지만. 그렇다지만 참 심란한 오늘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잃어버린 빛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빛들이 모여 또 다른 우주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 우주는 좀 더 예쁠까? 우리의 우주가 더 못나단 건 아니지만, 그쪽의 우주라도 더 반짝거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