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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Sep 11. 2021

우리는 안정감을
바라는걸지도 모른다

웹툰과 소설 속 유행에 대하여

계약 연애. 계약 결혼. 이 별나게 느껴지는 말들은 사실 웹툰과 소설 속 법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저 짧은 단어를 치기만 해도 수많은 작품이 쏟아질 것이다! 온갖 곳에서 소재로 쓰이곤 하니까. 처음 등장할 때엔 신선했을지 몰라도 이젠 주목을 끌지도 못한다. 흔하디 흔한 설정이 되어버렸으니까. 이젠 그저 배경이 현대냐 판타지냐, 남녀 주인공이 연상연하냐 아니냐, 친구 사이였는가 원수 사이었는가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 탓일까? 저 단어가 얼마나 이질적인지 아는 사람이 몇 안 되는 것 같다. 연애든 결혼이든, 맞선 등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시작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게 계약의 성격을 띠진 않는다. 계약이란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의무를 정하는 것이다. 결혼의 경우 그런 의무를 포함하긴 하지만, 법적으로 공식화하진 않는다. 연애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생각해 보라. 현실에서 두 남녀가 만났는데, 대뜸 하는 말이 “저희 계약 연애하죠. 서로 필요한 조항을 정하고, 그에 맞추기로 해요.” 라면 어떻겠는가? 바로 욕지거리부터 튀어 나가도 모자라다. 작게는 사회성 부족한 사람으로, 크게는 사기 치는 인간으로 보일 거다. 물론 현실에선 힘든 게 문화 매체에선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한다. ‘평범하지만 꾸미면 절세미인’인 사람이나 ‘다른 사람한텐 날카롭지만 내게는 따뜻한’ 사람처럼. 우리나라와는 동떨어진 세계관인 로맨스 판타지 세계관이 유행하는 것만 보아도 참 별나지 않은가. 영애, 영식, 공작, 백작, 황후, 황비…. 하지만, 이런 많은 비현실적인 요소는 다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로맨스 판타지가 좋은 건, 화려한 묘사와 표현이 가능하면서도 다양한 스토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능력에 따라 사업가의 면모며 훌륭한 지도자, 서로를 구원하는 사람들과 올바른 정의에 대한 것까지도 다룰 수 있으니까. 사실 그 어떤 세계관보다도 다채롭게 써먹을 수 있고, 허구에 가까우니 고증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은가. 정통적인 동양을 배경으로 하면 고증해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닌데 말이다. 그러니 그런 시점으로 보면 로맨스 판타지의 유행이 납득이 된다. 흔하게 나오는 인물의 설정도 같은 맥락이다.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인물의 전형이니까. 솔직히, 대부분의 여성이 단번에 예뻐지고, 달라지고픈 마음이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든지 내게만 친절하고 목을 매는 사람을 원할 것이다. 아주 솔직한 욕망이 반영된 셈이다. 나는 계약 연애와 결혼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비현실적이다. 계약 연애와 결혼이 어디서 나오든, 그 둘의 관계가 평등하든 불평등하든 그 계약은 이루어진다. 둘의 상황에 맞물려 서로 사이좋은 커플을 연기하고, 그러다 애정이 싹터 진짜 커플이 된다. 결국 중요한 건 계약이 아니라, 마지막엔 진심으로 사랑하는 한 쌍이 된단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독자가 작품을 사랑하고 응원할 이유가 없다. 남녀 주인공이 함께 행복해지는 결말이 아니라면, 어떤 독자가 그 작품에 몰입하겠는가? 다만 시작이 다르다. 자연스레, 혹은 우연으로 만나던 예전 로맨스 작품들과는 차이가 나타난다. 둘이 계약이라는 족쇄로 묶이면서 반강제로 이야기가 시작하니까. 이걸 비현실적인 시작에 대한 반기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시작이 의무여도 끝이 진심이면 상관없다는 새로운 가치관일까?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안정감을 추구하는 심리에서 출발한 게 아닐까 싶다. 계약은 앞서 말했듯 의무다. 따라서 본인들이 하기 싫어도 어느 정도 실행해야 한다. 그 과정이 좀 갑갑하고 맘에 안 들을 순 있지만, 자신의 옆에 있는 존재감에 점점 익숙해진다. 안정감이 생기는 것이다. 요즘은 연애든 결혼이든 쉽지 않다. 결혼 약속을 해도 언제 파혼할지 모르고, 결혼했어도 이혼할 수 있다. 그건 각자의 삶의 자율성과 권리는 더 인정해주는 것이지만, 그만큼 불안함도 함께한다. 그 불안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자, 남의 이야기에서라도 그런 스트레스를 피하고자 계약 연애와 결혼이란 소재를 사랑하는 건 아닐까. 매체에서나마 안정된 관계를 보고 싶은 건 아닐까? 이 말은 너무 과대 해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계약이란 건 서로 안심하고 진행할 수 있어 존재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사람들끼리 믿기 힘드니 그 증거를 만드는데, 그 과정이 바로 계약 아닌가. 비단 지나친 생각이라고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웹툰과 소설의 유행은 원래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인 소재가 많다. 그럼에도 그 유행에는 배경이 있다. 유행은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그저 이번엔 이게 유행인가 보다, 하고 지나가지 말았으면 한다. 그 배경엔 생각보다 우리가 뭘 원하고, 뭘 피하고자 하고, 뭘 제일 싫어하는지 드러나 있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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