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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y 30. 2022

결국 축복받은 야생화 한 쌍

Meaning Flower-소설 <폭풍의 언덕>에 나온 히스꽃

‘나쁜 남자’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많다. 문학 속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제인 에어>의 에드워드 로체스터부터 <적과 흑>의 줄리앙 소렐, 만화 <원피스>의 도플라밍고, 크로커다일까지 시대와 매체를 막론하고 유구한 매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중 제일을 뽑으라면 역시 <폭풍의 언덕> 속 히스클리프만 한 사람이 없다.     


<폭풍의 언덕>이라는 제목처럼 폭풍 같은 이야기와 어울리는 존재가 히스클리프다. 히스클리프가 없었다면, 소설 자체가 나오지 못했을 거다. 히스클리프의 탄생과 함께 작품의 생명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캐서린이라는 사랑에 미쳐서 거친 사악함을 가진 인물이 아니면 소설이 그토록 명작으로 남기도 어렵지 않았을까. 히스클리프는 자신에게 박탈감과 피해를 준 본인들만이 아니라 그 자식들까지 복수했단 면에선 더없는 악인에 불과하다. 행실과 성격이 나쁜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캐서린에게 진심으로 매달리고, 잘생긴 외모와 특유의 매력, 성공한 실력을 갖추고서도 일편단심을 보여주는 데서 전형적인 ‘나쁜 남자’의 이상향이다. 지금도 쉼 없이 나오는 웹툰과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인물상의 조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히스클리프의 이름이 참 인상 깊었다.      


화려하다 싶더니 단순하다. 고전적인 듯했더니 흔치 않다. 제임스, 에드워드, 줄리앙, 찰스 같은 전형을 따르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히스클리프(Heathcliff)’-절벽에 핀 히스꽃이다. 남자의 이름에 꽃이 나오는 경우도 적은데, 부드럽거나 중성적인 매력을 갖춘 사람의 이름도 아니다. 거칠고 나쁜 인물의 이름에 꽃이 들어가 있다. 보통은 생각지도 못할 작명 센스다. 혹 히스꽃이 독이 있어 그런 건가 추측했는데 오히려 같은 품종 대부분의 식물과 달리 독이 없는 종이란다. 의문은 더욱 커지다가, 히스꽃의 환경을 알고 나서야 납득하고 멈췄다.      

<히스꽃이 피어난 황무지의 모습.>

히스꽃은 바람이 많이 부는 고지대나 황무지에 주로 피어난다고 한다. 친근하고 따뜻한 사람의 근처 대신 거리가 느껴지는 서식지다. 꽃말 역시 여기서 비롯되었는지 주로 ‘고독’과 ‘쓸쓸함’이란 의미를 지닌다. 히스클리프가 캐서린과의 사랑을 이루지도, 사람과 어울리지도 못한다는 암시처럼 보인다. 모순적인 건 히스꽃이 신부에게 행운을 가져주는 꽃으로도 알려져 있단 점이다. 보통 보라색, 붉은색 히스꽃이 많은데 흰색은 스코틀랜드에서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이 의미는 사람들의 주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무려 영국 여왕님의 인정까지 받았다. 히스클리프는 보라색 히스꽃과 어울리지 흰색과는 거리가 멀다. 하얀 히스꽃의 설화를 감안하면 히스클리프의 또 다른 결말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감상이 더 떠오른다.     

<붉은빛, 보랏빛의 히스꽃 모습.>
<하얀 히스꽃의 모습.>

옛날 한 시인의 딸이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했는데, 연인이 전사였던지라 전투 도중 사망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을 알린 전령은 붉은 히스꽃을 뿌리며 부고를 전했고, 여인은 황무지와 언덕은 며칠 내내 떠도며 울부짖었다. 그녀가 집에 오자, 흩어져 있던 히스꽃에 눈물이 닿았고, 꽃은 흰색으로 변했다. 그녀는 앞으로 이 꽃을 만나는 사람은 평생 행운과 축복을 받게 될 거란 말을 남긴 후,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았다고 전해진다.     


사실 히스클리프의 사랑과 능력은 대단하다. 만약 히스클리프를 데려온 캐서린의 아버지가 조금만 더 건강히 살아있었더라면, 둘의 사랑은 이루어져 행복한 가족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자식이나 다름없었으니 믿을 수 있는 데다, 서로를 진실로 아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캐서린과 쌍방의 마음이었음에도 죽은 후에야 이어졌다. 전설 속 여인의 눈물이 닿은 후에 히스꽃의 축복을 담은 것과 겹쳐 보이는 모습이다. 소설의 묘사에 따르면 그들은 천국에 가지 못하고 내내 세상을 떠돌았을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둘은 함께였기에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캐서린의 ‘히스클리프가 없는 천국보단 그가 있는 지상에 머무는 것을 원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결말이었으니까. 유령으로서 사랑을 만끽하게 된 연인의 이야기답다.    

 

히스클리프라는 이름과, 폭풍의 언덕이란 소설의 제목이 똑같다는 말도 있었다. 만약 작가의 의도가 그렇다면 초반에 언급한 히스클리프의 탄생이 작품의 탄생이란 해석과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두 존재가 각기 다른 걸 의미해도 한 곳은 캐서린의 생전 집이요, 하나는 캐서린의 사후 의지처이니 딱 맞아떨어지는 관계다. 더군다나 히스꽃이 캐서린이란 사람 자체를 상징했을 수도 있단 걸 떠올리면, 얼마나 영혼의 단짝이었을지 제대로 다가온다. 캐서린이란 히스꽃은 히스클리프라는 환경에 뿌리내리고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으로서 완성된다는 게 얼마나 환상적인 조합인가. 너무 비참하고 격렬해서 그런 사랑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들에게는 온화한 장미보다 폭풍 속의 히스꽃이 더 향기로웠을 것 같다. 둘은 앞으로 행복할 것이다. 그들은 이별의 눈물로 하얀 히스꽃의 축복을 받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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