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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an 20. 2021

마지막은 부디 행복이기를

<시작은 모두 사랑이었다-권경률>을 읽고

시작은 모두 사랑이었다니. 얼마나 낭만적이면서도 흔한 말인가! 유명한 사랑 이야기가, 혹은 사랑 핑계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경국지색’ 네 글자만 봐도 사랑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계기’에 대해 변호하려나, 라고 제목을 보고 생각했다. 뜻밖에도 책에서는 ‘사랑’의 이야기 전개보다 그 사랑이 있던 배경,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위주로 설명해주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관점이었다. 자연스럽게 많은 인식과 감정이 휘몰아칠 수밖에! 하지만 그중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안긴 것은 다름 아닌 나혜석이었다.     


나혜석. 누군지 몰라도 이름만은 익숙한 이름이었다. 신여성이라는 것만 짐작하고 읽어나간 순간, 처절한 인생이 나타났다. 성공하고 일에 대한 욕심도 있었던 멋진 여성이 가부장 제도에 의해 짓이겨진 것을 이렇게 볼 줄은 몰랐다, 가부장제에 의해 희생된 여인이 한둘이겠냐마는, 당시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한 여인이 그렇게 사회에 의해 죽었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금도 예술가들은 홀로서기가 힘든데, 그 당시에 성공할 정도면 얼마나 대단한 화가였던 걸까? 솔직히 나혜석이 결혼할 때 내건 조건들도 비판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런 여성이 어디 흔하다고 그런 비판을 받았을까? 더군다나 남편의 반응은 울분이 치솟을 정도로 어이가 없다. 아내의 성공을 겨우 자신의 명예 중의 하나로 취급하다니 그럴 수 있을까? 창피하지도 않을까.    

  

나는 결혼한 후 정조는 지켜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당연히 불륜은 용서할 수 없는 일 중에 하나다. 이건 사람 대 사람으로 받을 권리요 의무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 전체가 당사자를 핍박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부부 중 한 사람이 상대에게 경제적, 정신적인 면에서 일방적으로 베풀었는데도 그렇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한쪽이 폭력과 비방을 일삼은 경우도 예외다. 그런 게 아니라면, 개인의 작품이나 업적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는 건 추천하지 않을 뿐이다. 나혜석의 경우 남편과 정서적으로 고통을 겪은 바 있으므로 그 불륜에 있어서 참작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상대가 핍박하고 멸시하는데 굳이 그 사람만 바라봐야만 한다는 말인가?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하고 자유 연애하다 맺은 결혼이 자신의 삶을 집어삼킬 줄 나혜석이 알았을까.      


‘이혼 고백장’이란 세기의 글을 쓰는 그녀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기 힘들다. 사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나혜석의 일이 드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신여성들이 불륜을 많이 한 배경은 조혼이라는 환경 때문이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점점 깨어나는 남성들과 교류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신여성을 가벼운 놀이 상대로 취급했다는 것이 한스러웠다. 한 남성은(이름을 찾을 가치도 느끼지 못하겠다) 신여성이 정조를 가지고 노는 창녀와 같다고 말했다는데 정조가 남성에게 없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따로 없다. 나혜석이 가장 분노한 부분은 이 부분일지도 모른다. 여성에겐 정조를 강요하면서 정작 남성들에겐 정조가 존재하지 않는 모순. 나혜석이 너무 이르게 살다 갔다. 그 시대에 나혜석은 홀로 침식당해 깎여 나갔지만, 지금의 나혜석은 뜻이 맞는 사람들과 버텼을 것이다. 마녀사냥을 그 시대에 당한 여인을 보는 현대 사람의 소감이 얼마나 서럽고 안타까운지. 그다지 극적으로 변하지 않은 현실에 씁쓸하지만, 이제는 많은 나혜석의 동지들이 버티고 있는 것을 마음속으로 위안 삼았다. 과거의 나혜석으로 비극은 충분하니, 부디 현재든 미래든 더 이상의 나혜석은 없기를.     


이렇게 그녀의 모습을 봤을 때 내가 느낀 것은 흔히 말하는 ‘미인계’나 악녀가 실상 역사에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게는 넘쳤을 수도 있다. 증거는 민간 속설로 내려올 뿐이지만! (근대를 제외하고) 하지만 여성이 사랑으로 남성을 이용한다? 내가 보기엔 남성들이 이용한 것 같다. 대표적인 사례로 숙종이 있고, 서동이 있지 않은가. 서시든 왕소군이든 양귀비든 그녀들의 의지로 그 일들이 이루어졌나. 그 뒤에는 다 남성들의 공작이 있었다. 그런 것을 파악하다 보면 위선이 역겨워 역사에 대한 흥미도 다 깨지는 기분이다. 조상에 대한 존경을 떨어뜨리기엔 최고다. 유일하게 지금도 악녀라고 손꼽히는 여인들의 누명을 벗는 쾌감이 그 바스라진 기분을 달래줄 뿐이다.          


많은 매체에서 악녀, 미인계라는 소재가 비일비재한 오늘날 이런 기분을 나만이 느끼지 않길 바란다. 부디 많은 사람이 그 사실을 깨닫고 이해하기를. 그녀들의 시작이 사랑이었을지언정 마지막은 부디 행복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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