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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an 21. 2021

그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화가의 연인들-함세진>을 읽고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감상은 ‘그저 그랬다.’ 특이하지도, 인상 깊지도 않았다. 아마, 나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때 너무 어렸던 모양이다. 그땐 고흐의 비극도 당연한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하나의 사람으로 생각하진 못했다. 내게 그들은 그저 활자 속, 그림 뒤편의 이름일 뿐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때는 모든 걸 흡수하고 그걸 써먹을 곳에만 집중하는 시기였다. 내 감상을 정리하고 조금 더 생각하기엔 받아들이는 것에 심취해있던 때였다. 그랬던 어린 학생은 이제 조금 더 성장한 학생이 되어서 자신의 현실과 미래와 과거에 대해 생각하면서 새로운 감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분 부분 분노하고, 부분 부분 안타까움을 절실히 느꼈다. 그런 인생들을 모아놓고 보면 묘하게도 분류가 되었다. 행복했던 사람과 불행했던 사람. 그런데 그들의 화풍은 그와 반대된다고 보면 쉬웠다. 유난히 독특하고 눈에 들어오는 생기가 있는 그림들은 대부분 불행했던 화가들의 작품이었다. 반면 좀 완만하고 평범한 맛이 보인다, 싶은 그림들은 대부분 행복했던 화가들의 작품이고. 좋은 양분에서,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건 늘 통하는 법칙이 아닌가 보다. 저자가 ‘화가들은 이기적인 탐욕으로 얼룩진 불신과 환멸의 진흙 속에서 아름다운 한 송이의 연꽃을 피워내는 존재라 할 수 있다’라고 언급한 것처럼 불행이라는 진창에서 번쩍이는 광채를 모아둔 느낌이랄까? 예술가에게는 불행이 은총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발언이 스치는 순간이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어두운 순간 가장 빛을 갈망한다. 그리고 그 어두움에서 빛을 발굴하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공감하고 이해한다. 그 가치를 말할 필요 없이 아는 것이다. 그래서 유독 불행한 삶에서 그림을 붙잡고 산 이들의 작품이 빛났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모습이 곧 그들의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는 법이지 않은가. 여기까지는 예술학도이자,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감상이라면 또 한 면의 감상이 존재했다. 한 여성으로서의 감상이 남아있다.     


너무 많은 여성이 언급된 책이지만, 그중 현실적 문제로 화가들을 떠난 여성은 압도적이었다. 화가들에게 진정한 연인이었지만 현실을 잘 보고 생계를 꾸린 여인들은 흔치 않았다. 그런 여인과 함께한 화가는 행운아였다. 그만큼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한 연인들도 많았다. 그래서 보고 있노라면 어쩔 수 없이, 나도 여성으로만 살아봤기 때문에, 화가들이 밉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차올랐다. 도대체 상의도 없이 결정하자면 어쩌자는 건지, 당장 생계는 어쩔 건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책임을 버리고 예술에 몸을 내던진 사람들을 낭만적이라고만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이상적인 세상일까!      


<달과 6펜스>에 나오는 화가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비록 가정을 버리고 떠났어도, 떠난 곳에서 새로운 반려자와 책임 있는 관계를 구성하며 유지하고 그를 버틸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 때문인지 고갱도 그랬을 것이라 알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나고 떠돌다가 전처까지 만났다는 점에서 고개를 절로 흔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무 책임감에 얽매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람은 낭만을 먹고살 수는 없다. 많은 화가가 여인과 결혼하고 안정을 찾아 그 후 성공했는데 그 점에서 여인이 화가에 대해 반려자로서 책임과 사랑을 다 하고 화가 역시 그에 동의했기에 안정을 찾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낭만은 배가 부를 때 진정한 낭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여유로워야 주변인에게 낭만을 전파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홀로 떨어져 낭만이라는 고독을 견뎌야 되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는 것은 위험하다. 독이 독인 줄 모르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마냥 고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친 것은 언제나 좋지 않다! 어렵다. 누가 예술인의 ‘괜찮고 좋은’ 인생과 연인관계와 작품에 대해 함부로 단정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예술가의 세계는, 예술가의 인생은 참 복잡하다. 알 수 없고 짐작하기 힘들다. 성공했던 화가의 작품은 싼값에 팔리고 불행한 화가의 작품은 명작이 되어 남는다. 예술의 흥망성쇠는 한 제국의 역사보다도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운 법이다. 그러니 예술의 세계에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헤매고 두려웠을지. 그림 너머의 사람들을 보게 된 지금 그들의 인생이 안쓰럽고 대견하다. 신이라도 예술의 모든 걸 알 순 없을 것이다. 예술에서 버티는 사람들, 그리고 예술 속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은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대단한 게 아닐까. 화가들과 그 연인들, 가족의 인생은 구름보다도 빠르고 다채롭게 변했다. 세상은 늘 안정적인 걸 원하기에 그들의 모습을 좋게 본 역사가 없다. 화가들의 인생은 땅 위의 안정이 아니라 하늘의 변화무쌍에서 살아야만 하는 운명이 아닐까. 그들은 어떤 백로나 까마귀에 머물기도 했고 기러기 떼에 섞여 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색을 잃지 못해 홀로 사그라졌다. 아름다운 끝을 보고 찬탄하는 소리를 들은 화가가 있다면 더 위안이 될 것을.      


나는 안정을 좋아하고, 평안을 사랑한다. 이 만족을 흐트러뜨리긴 참 어렵다. 그래서 이런 공간 안에서 살다 가지 못한 화가들의 인생에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그들의 인생은 말했듯 복잡하고, 알 수 없고, 짐작하기 어려웠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일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창작이 꽃핀 것이 경탄스럽다. 그리고 그들의 연인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명작에 영감을 불어넣고 때로는 그 뒤를 지탱한 사람들에게 환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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