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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Dec 20. 2020

삶의 시작점에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 황선우>를 읽고

내가 꿈꾸는 삶의 지향점을 사는 인생의 선배를 볼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는 현재 독신주의자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 만약 동거한다 해도 친구와 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방식의 삶을 사는 분을 보질 못했다. 그래서 너무 어린 생각인가 싶어 막막함을 느꼈다. 그래서 언젠가 네이버 책 패널에서 이 책을 봤을 때, 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딱 필요한 책이었으니까. 그리고 더 운이 좋은 탓에 보령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읽으면서 나는 두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기도 했고, 나의 생활 모습과 비교해 보기도 했으며, 나와 친구에 두 사람의 생활을 대입해 보기도 했다. 물론 마냥 평화로워 보였던 것과 달리 두 사람은 싸우고 여러 분쟁을 겪고, 불쾌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함께 살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잘살고 있다. 나는 그 점이면 충분하지 않나 싶다.     


  나는 학생 때부터 생각한 것이 있는데, ‘나 자신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결혼을 하나’라는 것이다. 어찌 됐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나와 함께 책임지는 일이 결혼 아닌가. 살면서 아끼고 신경 쓰고, 살아나가야 할 사람이 하나가 느는 것이다. 든든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아프면? 힘들면? 너무 고통스러워 주변인도 눈물지으면? 혹은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참아야 하면? 부담스러워 피하면? 싸워 꼴을 보기도 싫어지면? 그저 부하나 가정부가 필요한 거였다면? 이 모든 예시는 실제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례고, 심해지면 이혼까지 가는 이유가 된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의무감 없고 책임감 없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사랑만으로 결혼? 너무 얕은 생각이다. 결혼에는 현실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사랑이 불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요소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말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그저 서로를 좋아한단 이유로 결정한다? 일생의 모든 걸 바꾸는 결정이 너무 어리석다. 감정은 삶을 지탱하는 일부 요소다. 말 그대로, 그걸로 끝이다. 감정이 없으면 사람답게 살 수 없고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내 삶을 책임지지는 않는다. 밥을 먹여주지 않고 서로의 삶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착하기만 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과 똑같다. 착하다고 세상이 너그러워지는 것도, 일을 안 하게 해주는 것도,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니까.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이 창문으로 나간다고 했다. 내가 풍요로울 때나 상대방을 좋게 대할 수 있는 법이다.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타인이 보일까! 더군다나 상대방만 책임지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서로의 가족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부모님의 부양 부담을 나눠야 하고 보살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요, 때에 따라선 형제자매와 친척의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이것을 할 자신이 없으면, 결혼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내가 너무 지레 겁먹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이란 얼마나 큰 변수던가. 지금까지 나만 챙기거나 부모님까지만 챙기면 됐다가, 그 수가 배로 늘어난다. 거기다 본래 타인임에도 갑작스레 가족이란 울타리로 묶이며 애착을 강요받는다. 그 관계가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아무도 짐작할 수 없고, 모두에게 큰일이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그 선택의 자유를 좀 보장해줬으면 좋겠다. 왜 아직도 결혼을 의무로 보고 있는 걸까.     


  나는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함께 살며 서로를 아끼되 나 자신을 더 지킬 수 있는 삶인, 동거인의 삶이나 독신의 삶을 이상적으로 본다. 물론 아직 동거와 독신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차고 넘치지만 내가 건강하고 바람직하게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결혼이라는 타인의 강요보다는 내 삶을 더 가치 있게 채우고 싶다. 잊지 말자.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아직 나에게는 시간이 있다. 그동안 더 생각을 해보겠지만, 나는 내 커리어보다 내 삶을 살아가고 싶고, 더 성장하고 싶다. 그렇게 살아갈 방식은 지금과는 매우 다를 테다. 학생과 사회인은 여러 면에서 책임질 것과 관리해야 하는 것이 달라지니까. 그러니 내 생활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해두고 구상을 자주 해두려고 한다. 갑자기 닥치는 순간 힘겹게 하나하나 처리하느니 계획한 대로 처리하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책에서 얘기해준 충고가 있으니까. 내 삶에 대해서든, 생활방식에 대해서든 여러모로 배울 것도, 생각해 볼 만한 것도 많이 제공한 책이었다. 언젠가 나 역시도 내 삶에 만족하며 그 이야기를 할 수 있길 바란다. 어떤 강요 없이 나의 선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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