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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Dec 21. 2020

우리 삶의 춤, 내 생각의 춤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조던 매터>를 읽고

나는 사진보다 그림을 좋아했다. 그대로 찍은 것보다 더 정성스럽고 아름다운 표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편견을 깨줘 내가 잊지 못하고 꼭 이따금 문득문득 찾는 사진집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유명한 사진집이라 도서관마다 있는 편이라 다행인 이 사진집은 실린 짤막한 에세이도, 사진도 예쁘고 인상 깊어 뇌리에서 잊히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다.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이라는 제목처럼 무용수들이 일상과 연관된 주제에 맞춰 움직인 모습을 촬영한 모습들은 재밌으며, 유쾌하기도 하고, 그냥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때로 놀라울 정도로 숭고하고 고아하다. 지나가듯 얘기한 친구의 말로 생각하게 된 것, ‘무언가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면 그 작품은 당신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는 숭고하다는 감정을 그 어떤 상황에서보다 많이 느꼈다. 유독 그랬다.      


<기도>,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의 일생과 만나는 순간>, <사람은 죽어서 그리움이 된다>, 이 세 작품은 내 뇌리에서 유독 깊게 남아 있었다. <기도>에서는 여인의 보라색 옷이 성모 마리아의 옷자락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아름다운 교회 안, 빛을 한 몸에 받는 갈색 머리의 눈 감은 여인의 모습은, 팔을 뒤로 길게 뻗은 포즈까지도 기원하고 기도하는 듯 속세와 동떨어져 보였다. 은은한 주홍색 빛과 교회의 온갖 색 그리고 보라색과 갈색의 조화는 오랫동안 사진집을 보지 않았을 때도 떠오른 잔상이었다.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의 일생과 만나는 순간> 역시. 작가는 수호천사처럼 보이길 원했다 했다. 오, 작가 조던 매터에게 찬사를. 당신은 성공하셨으니.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모습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멋지고 숭고하기 마련이건만, 어쩌면 이렇게 표현할 생각을 했을까. 무용수의 기술에도 찬탄하는 바이지만, 그 작품 자체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수술복의 청록색이 천사의 의복처럼 보이는 순간이었으니까. 서양에서는 초록색이 오래도록 악의 색이었다는데, 이 사진으로 하여금 그 인식이 바뀔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 정도니까. <사람은 죽어서 그리움이 된다>. 이 역시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의 일생과 만나는 순간>처럼 제목부터 내 가슴을 두드린 작품이다. 묘지 비석 위에 가냘프고 위태롭게 자리한 여인은 어떤 심정일지. 검은 옷자락에 꽃다발, <기도>처럼 팔을 뻗고 있는 포즈지만, 그와 달리 애처롭게 떨어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포즈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표정까지 상상되는 사진의 분위기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과정의 많은 아픔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작가도 모델인 여성도 그 시기에 이별을 했다고 한 것이, 내겐 소설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여겨졌다. 역시 사람은 같은 마음을 지녔을 때 그 표현을 잘하기 마련이라.      


이런 식으로, 많은 사진이 내 가슴을 두드려 잔상을 남겼지만, 에세이 역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한 문구가. “아직 나를 사랑해요?” 어린 아들 허드슨이 아버지인 작가에 한 질문. 나는 자식이 없고, 아이들을 엄청나게 사랑하지 않는 수준인데도 가슴에 화살을 쏘는 것처럼 아픈데 조던은 어땠을까. 부모로서 잘못했다, 그러면 안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그 이상이었으리라. 자식의 처지로 말하건대 저 말을 하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자랐고 사랑받는다고 자신하지만, 장난이어도 농담이어도 “안 사랑해, 미워”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깊은 물로 처박히는 것처럼 급작스러운 침잠을 경험한다. 그건 내가 어디 있던지, 무슨 상황이든지 관계없다. 어른이 되는 것은 감정을 숨기는 것이라 했다. 점점 태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능숙해질 뿐 그 상처는 어디 가는 것이 아니라서, 자신을 사랑하느냐 묻는 것은 무섭다. 21살, 성인의 나이에도 무서운데 어떻게 어린아이가 안 무서워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부모 자식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 상처와 감정을 성찰하게 되어서 나에게 그토록 오래 기억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로 치면 명대사쯤 된달까.      


또한, 잊을 수 없는 것 하나 더. 마지막에 실린 <예술가>라는 사진에, 나는 그저 그런 인상을 받았다. 평범한 연출인가 싶었고 무언가를 얘기하고자 하는지 너무 정직해서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델이 다름 아닌 모든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자 수많은 느낌표가 내 머리를 강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 이 사진집의, 이 프로젝트의 주제는 삶이었지. 그럼 이 모든 걸 기록한 이 사람의 모습은 왜 없을까! 멋진 의미였고, 좋은 시도였고, 인상 깊은 마무리였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다시 한번 읽으니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많다. 이 맛에 읽는구나. <벼락치기>의 여성처럼, 그 무거움과 고단함을 지금 지니고 있지만, 나에게 많은 인상과 감정의 경험을 선물해 준 사진집과 작가에게 감사를. 내가 또다시 사진집을 펼쳤을 때 나의 감정이 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지는 지금이다. 나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생기는 대로 이 사진집을 추천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부디 한 번 펼쳐보길 바란다. 우리 삶의 춤을 따라 내 생각의 춤이 빛났듯 당신의 춤도 빛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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