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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an 03. 2021

멋있는 여인들, 부디 지금은 다르길

<여인들의 중국사-왕번강>을 읽고

  역사는 가부장적인 제도 때문에 남성들의 역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여성들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나는 그런 여인들을 찾길 좋아했다. 그들의 투쟁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깊이 느꼈으니까! 자연히 나름 유명한 역사 속 여인들을 잘 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그 점에 대해 성찰하게 해준 책을 오늘 만났다. 달기, 포사, 여후 등 익숙한 여인들도 있었지만, 소작과 문성공주, 풍태후와 효장문태후, 진원원은 처음 듣는 이름들이었다.  

    

  풍태후는 짐작하기로 ‘미월전’의 인물과 큰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며, 효장문태후 역시 옹정황제의 여인 등에서 언급된 바 있어 어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성 공주와 소작, 진원원은 진실로 처음 듣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중국사를 약간 신기할 정도로 좋아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이런 여인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라가 넓어서인지 정말 많은 인물상이 나오고, 그 제각각의 상황이 신기하다. 그 양상은 우리나라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다양해서 신비로울 지경이다.     

 

  그렇게 찾고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전쟁과 싸움을 알게 된다. 나는 그중에서 고요한 대화 아래 벌어지는 음지의 궁중 싸움을 더 존경하고 무서워한다. 사람은 감정을 숨기는 데 탁월한 종족이 아니다. 그렇기에 감정을 감추라고 그토록 교육받는데, 그 이유는 감정은 가장 큰 약점이요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조심해야 할 점으로 꼽히는데 봉건 사회에서야 오죽하랴. 그러니 그 감정을 속이고 속내를 서서히 푼 궁중 암투는 얼마나 소름 끼치게 대단한가. 그 업적에서는 피 냄새 가실 일이 없다 할지라도. 물론 비단 여인들만의 싸움이 아닌 정치적인 면이 숨어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투쟁한 건 변하지 않으니까. 아마 궁중 암투적인 면으로 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인은 조비연과 측천무후 아닐까 싶다. 조비연은 악인으로, 측천무후는 선인으로.      


  조비연은 어리석은 여인임에 틀림이 없는데, 내가 ‘모의천하’에서 황태후를 맡은 왕정군에 지나치게 이입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비연은 그 날렵한 아름다움을 고작 제 음탕함을 알리는 데 썼다. 달기 같은 미친 포악함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 점은 좋아 보일지 몰라도, 그 누가 제 동생 덕에 바람 핀 황후의 모습을 지키고 산단 말인가? 나는 객관적으로 외모가 아름답다는 평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갈망하는 것이 ‘아름다움을 지닌 자가 그 외모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어찌 함부로 재단하고 기대하겠냐마는 현대 사회도 아니고 신분제 사회에서 미모로 올라갔으면 그 신분에 대한 책무는 수행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게 자신이 올라온 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뿐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고통을 없애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측천무후는 그런 점에서 훌륭하다. 그녀는 풍태후, 소작, 효장문태후처럼 치세를 이뤘고, 잔인할지언정 최후의 승자였으며 좋은 황제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녀는 제 자식을 죽여 제 야망을 지켜나가서 나는 이에 대해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의 유언과 비석에는 늘 깊은 감명을 받는다. 오, ‘무자비’라. ‘후대 사람들이 해석하는 대로 남겨두겠다’라! 실로 호탕한 면이 끝까지 남아있는 여인이지 않은가. 비록 그녀의 말년은 불행했지만, 그녀는 훌륭한 정치가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녀가 그저 권력에 미친 여인이었다면 황제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죽었을 테니까. 그녀는 실로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 고생한 사람이었다. 명의 태조 주원장도 많은 피를 묻혔고 유방도 여후를 통해 많은 피를 보았다. 그녀가 남자 황제였다면 잔인하단 소리는 치세에 묻혔으리라. 성별이 다른 것이 이토록 큰 차이를 나타낸다! 그럼에도 그녀의 여황제 즉위는 진실로 의미가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세조의 정치가 비난받았듯 측천무후의 정치도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니, 둘 다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조비연과 측천무후와 달리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소작은 정말 엄청난 인물이다. 세상에, 내 마음에 쏙 드는 여장부가 아닌가. 야율아보기의 나라인 요나라의 황후로 고려를 공격했다는 점에선 굉장히 불쾌하지만, 그 정도의 여인이 나라를 다스리고 정인과 함께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 나에겐 시중에 나오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보다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독자들이 갈망하는 여인상에 걸맞은 여인이 어쩌다 거란족의 태후여서 내가 이토록 늦게 그녀를 만나게 했을까? 그녀는 조건 없이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도 않았고 (한덕양과 원을 이뤘으므로) 좋은 어머니였으며 (성종의 덕치는 어머니 때문이라고 하니 신사임당보다 갑절은 훌륭한 어머니상일지도 모르겠다), 탐관오리를 철저히 응징하고 집안일에도 공정히 했으며 직접 전장에 나선 뛰어난 팔방미인이었다. 실로 완벽한 여인이 아닐 수 없다. 풍태후나 효장문태후가 일부분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지나치게 올바르게 살아 어찌 보면 순종적인 모범생으로 보일지도 모르는데, 소작만은 군계일학처럼 홀로 빛을 낸다. 그녀를 안 것만으로도 내겐 큰 보람과 성찰을 준 책이었다.      


  안타깝게도 지난 역사에서 여성들의 이름은 오염된 경우도, 기록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녀들의 행동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고 몇몇 여인은 특출난 모습으로 기록되었다. 기록이 존재하지도 않았다면 측천무후는 그저 악녀로 남았을 것이다. 그녀의 정치를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가 어머니로서 자격이 없다 한들, 황제로서는 성군이었으니까.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게 된 여인을 만난 것 외에도, 이 책을 통해 과거 여인들의 투쟁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싸우지 않고 순응하면 그것이 사실이 되고 전통이 된다고 했다. 그 시대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며 자신들의 길을 걸었던 여인들이 부디 지금은 그들의 길을 마음껏 활보하길 바란다. 그들은 기록되어 역사에 남을 정도로 멋있는 여인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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