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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an 03. 2021

다시 읽고, 새롭게 느끼는 것들

<궁녀 학이-문영숙>을 읽고

   궁녀는 언제 생각해도 재밌는 존재다. 그 많은 역사를 직접 겪고 그 일부로 살았을 사람들 아닌가. 그런 궁녀를 다룬 책 중 <궁녀 학이>는 몇 번을 봐도 특유의 색감이 살아나는 것 같은 책이다. 꽤 옛날에 사 두고 지금까지도 아끼는 책 중 하나인 책인데, 그 세월만큼 책의 가치를 보장하는 책이다. 청소년 대상이기에 제법 가볍게 묘사되어 있지만 보는 맛이 있다.     


  예전에 읽을 때는 궁궐 음식에 대한 묘사나 궁녀들의 모습에 더 중점을 두고 읽었다. 워낙에 그런 묘사를 좋아했기도 하고, 장신구의 화려한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학이가 초반에 반항하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어릴 적 궁녀라는 존재에 환상을 가졌던 아이였으니 더 학이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는 환상과 현실을 이해할 정도로 성장해 그런 부분에 대한 소감이 자연히 달라졌다.      


  늘 가부장제를 비판한 나였는데 처음으로 가부장적인 어머니를 비판할 책을 찾은 것이 그 첫 번째다. 학이의 나이는 아홉 살로 분명 어렸지만, 당시의 나이로 제법 성장한 아이였고, 당돌하고 오만했지만, 예의 바르고 현실을 알았다. 장녀였기에 더욱 그랬다. 차마 어린 자식에게 가장의 무게를 씌우기 죄스럽고 면구스러워 대놓고 말을 못 한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만큼 아이의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 그 배신감에 대해 짧게 서술되어있는 것이 안쓰러운 만큼 학이가 안쓰럽다. 자신이 팔렸다고 인식하고 가족에게 증오를 내뱉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길 정도다. 어머니는 학이를 이해시켜서 보냈어야 했다. 아이에게도 시간이 필요했고 이별의 기간이 필요했다. 아무리 입궁시킨 것을 후회하고 슬퍼했다고 그 배신감이 완전히 가실까. 어머니의 사랑을 못 느낀 것은 아니지만 아쉽고 안타깝다.     


   두 번째로는 명성황후에 대한 것이다. 마냥 안타깝고 불쌍한 존재로 봤던 중전마마의 존재였는데 역사를 보고 나니 가증스럽다. 책에서 학이는 백성들의 입장에 서서 중전에게 고변을 토해내지만, 중전을 역정을 낼 뿐이다. 예전엔 학이가 눈치 없고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학이가 충분히 할 말을 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중전의 반응에 열불이 올랐다. 부덕이니, 뭐니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다. 다만 눈에 딱 보기에도 극심한 신분 위주의 사고방식은 눈살을 찌푸리기 충분했다. 신분 운운하는 건 최 상궁이나 학이나 똑같이 보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세 번째로 소감이 달라진 부분이 말녀에 대한 것이다. 말녀는 마냥 악역으로만 보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삐뚤어진 아이였는데 되려 학이보다 이해하기 쉬웠다. 말녀는 말 그대로 학이의 심부름 역으로 초반에 등장한다. 학이에게서도 노비라는 둥 어떻게 같은 취급을 하냐는 둥 말을 듣는다. 어릴 적에 부모를 잃고 가족을 잃고 어머니로 여긴 최 상궁도 학이에게 더 애정을 쏟고 은근히 차별한다. 작중 누구의 행적보다도 말녀의 행적을 가장 이해할 수 있다. 학이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마냥 학이를 배척한 것도 아니고 날카로워질 때마다 이유가 존재했으니 마냥 미워할 수 없다. 학이도 말녀를 의지하고 지기로 지냈으니 그 점에서는 말녀를 존중하지 않았을까. 양반이란 틀에 갖혀 있던 학이를 백성들에게로 숨을 트여준 것도 말녀의 덕분이었다. 궁녀란 현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준 것도 말녀의 역할이 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유일하게 작중에서 학이 이외에 이름이 있는 궁녀라는 점에서 말녀가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 무게가 심한지 알 수 있다. 예전에는 특히 말녀가 한 사내와 일종의 밀정 활동을 하다 발각된 것을 왜 저랬을까, 싶었는데 지금은 말녀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개혁에 앞장섰음을 보게 되었다. 하긴 말녀는 신분이란 걸 평생을 다해 깨달았던 사람이니 개혁에 제 목숨을 다했을 것이다. 궁녀라는 입장에서 현실을 알아 운동까진 참여하지 못했을지라도 그런 개혁 의지에 있어 떳떳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쯤 되면 말녀라는 이름도 고증되었다 한들 이름에서부터 차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말녀는 학이를 보고 얼마나 자격지심에 휩싸였을까. 가족도 자신을 최우선으로 아끼는 사람도 없는 궁에서. 둘리를 보고 고길동이 불쌍하면 어른이 된 것이라더니 내겐 말녀가 고길동인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많은 걸 경험하면서 같은 걸 보고도 많이 달라진 걸 느꼈다. 예전엔 주인공 위주로 보느라 눈에 안 보였던 낮은 출신의 인생, 그로 인한 열등감과 행동, 역사적으로 악인이었던 사람의 위선 등이 새롭게 보였다. 좋은 책은 일생에 어릴 때, 청년일 때, 말년일 때 세 번 읽어야 한다고 하더니 그 이유를 제대로 실감했다. 나중에 내가 다시 읽으면 과연 어떤 시점으로 책을 볼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지금은 상상도 못 하는 시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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