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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Feb 01. 2021

우리는 왜 칼군무에 열광하는가

‘칼군무’. 칼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안무를 칭하는 말이다. 4명에서 13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이 박자에 맞춰 추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여러 명이 모여 꽃이나 새 같은 형상을 표현하고, 물결을 자아내는 건 하나의 예술이다! 각각의 작은 안무가 모여 노래 가사를 더 효과적으로 이해시키고, 가수 개개인의 매력도 드러내는 필살기는 레드오션인 가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노래보다 안무로 유명한 그룹이 따로 있을 정도니, 얼마나 안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지 느껴지지 않는가? 애당초 가수와 아이돌 그룹의 가장 큰 차이는 퍼포먼스, 즉 안무이기도 하니 그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점점 안무에 따른 선호가 커져서일까. 안무가들의 입지마저 예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올랐다! 어떤 춤을 만들고, 어떤 춤 선을 가졌는지가 대중들에게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안무, 그중에서도 칼군무는 그 어떤 때보다도 가장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은 거의 K-pop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언제부터, 왜 칼군무가 가요계의 상징이 되었고, 또 왜 사랑받은 걸까?      

사실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걸 뭐라 설명하긴 어렵다. 사람은 ‘큰 것’에 압도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그 많은 문명과 나라에서 모두 궁을 짓고, 동상을 세운 게 아니던가. 그런 걸 보면 여러 명이 한 무리로 춤추는 걸 좋아하는 데에는 진화론적인 요인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자연을 한번 보자. 큰 존재는 본디 살아남기 유리하다. 어떤 쪽이든 말이다. 신장이 크다면 더 멀리 볼 수 있고,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 덩치가 크다면 싸움에서 유리하다. 더군다나 이 기억은 영장류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물고기나 새들도 작은 개체 여럿이 모여 큰 개체에 대항한다. 실제로 그렇게 대처하면 성공을 거둔다. 큰 물고기가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이다! 오랫동안 내려온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직도 큰 랜드마크를 좋아하고, 여러 명이 큰 형상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 건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당연할 수도 있다.      


또 어쩌면 그냥 그게 기분이 좋아서, 칼군무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기분이 좋아지는 영상’을 기억하시는지? 그 영상은 비뚤어진 걸 바로 하고, 깔끔하게 치우고, 딱 맞아떨어지는 조립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소한 것들로 이루어졌는데도 많은 사람이 공감하며 큰 유행을 일으켰다! 그런 건 뭐라 설명할 수가 없다. 반듯하고 바른 걸 좋아하는 특성은 영장류가 진화한 원인이라고도 한다. 돌을 갈아 만드는 과정에서 반듯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 진화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그저 칼군무의 딱딱 떨어지는 모습이 마음에 안정감을 주어서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대의 발전도 안무에 있어 한몫하는 것 같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지식보다는 그 활용에 있어 더 초점이 맞춰졌다. 그저 머릿속 자랑거리에 불과한 것보다 눈에 보이는 응용을 높이 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굳이 속을 짐작하기보다 당장 알 수 있는 걸 선호해서가 아닐까? 정보화 시대에 짧은 글을 선호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런 시대에, 눈에 보이는 화려한 변화인 안무는 얼마나 매력적인 대상일까. 사람의 노력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된다고 생각하는 시기, ‘자동적인’ 게 아닌 사람의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만약 로봇이 똑같은 춤, 똑같은 선을 보여줘도 그 감동을 다 끌어내진 못할 것이다. 안무의 가장 핵심은 ‘사람’이 추는 춤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운동하면 피곤하고, 몸 상태에 영향을 받고, 감정을 담아내고, 노력해야 능숙해지는 그런 사람들이. 관중은 모두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안무를 기대하고 더 칭찬하고 환호한다. 그들이 원한 ‘사람들의’ 완벽함을 해낸 그들은 그들의 결핍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과연 사람의 존재 의미가 있는가 싶을 때, 사람의 몸인가 싶을 정도로 믿기지 않는 안무로 위안받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인지하지 못할 뿐 그들은 분명 다수일 것이다. 따라가지도 못할 빠른 리듬과 박자, 움직임은 관중들을 압도한다. 조화로워 분위기까지도 만들어낸다. 자연스럽게도 무대를 통해 관중들은 희열을 느낀다. 사람으로서 숨은 노력을 느끼고 힘듦에도 결국 만들어낸, 완벽한 퍼포먼스 그 자체에! 이때 아름답고, 멋지고, 늘씬한 건 부가적인 요소다. 그런 것들이 첫인상을 강하게 만들고 매력을 부가시키는 데에는 물론 최고다. 더없이 유리하다. 하지만 실력이 없으면, 부족해 보이면 끝까지 가지 못한다. 정상의 자리에 닿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그러니 얼마나 대중의 눈이 잔혹하고 높은지 알 수 있다. 대중의 눈에 통과한 무대는 하나같이 훌륭하다. 이 점은 정말 누구도 반박할 수 없으리라.     


춤추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언제나 대단하다. 반짝반짝 빛나고 그 열정이 느껴진다. 요즈음은 ‘아이돌’에 멈추지 않고 정말 하나의 예술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대를 만들어낸다. 그 핵심인 칼군무는 어떨 땐 비판을 받기도 하고, 어떨 땐 큰 부담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그게 진화론적인 관점에서든 형용할 수 없는 자연적인 느낌에서든 시대상에서의 매력이든, 엄청난 노력의 결실이며 빛나는 자랑이라는 점이다. 물론 경쟁이 심한 우리나라의 가요계에서 칼군무가 특징인 건 그만큼 혹독 하단 이야기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최극단의 매력 표현이자 경지라고 생각한다. 그 뒤에 슬픈 고난이 있다고 해서 칼군무의 가치와 명성을 뒤엎을 순 없다.      


그냥 보기에 아름다워서. 그렇게 진화해온 종족이라서. 그저 그걸 좋아해서. 혹은 가장 빠르게 누군가의 노력을 알 수 있어서, 대중인 우리는 칼군무를 좋아한다. 우리의 생각보다 더 본능적으로, 분석적인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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