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 Feb 05. 2021

지난 노력들, 해나가는 노력들

<당신은 겉보기에 노력하고 있을 뿐-리샹룽/박주은>을 읽고

나는 노력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물론, 상당히 애매한 표현이라 마냥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도 ‘노력했다’라는 말을 비웃을 수는 없다. 노력만 한다고 모든 일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으니까. 노력을 잘하기는 쉽지 않다! 내 삶의 모토는 현재 ‘열심히 살자’다. 재수 생활을 지내면서 배운 가장 값진 것은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끙끙댈 때 나는 누구보다 일찍 학원에 와서 문제를 푸는 걸 목표로 했다. 힘들었지만 아무 미련이 남지 않는 수험 생활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시 성적은 지난해보다 훌쩍 높은 성적이었고, 누구나 내 노력을 인정해주었다. 그때 나는 성적 때문에 2년을 준비한 대학의 실기를 보지 못했던 설움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의 감정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노력해서 안 되는 건 없다는 걸 각인시킨 순간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생생하게 그 순간이 떠오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나는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열정을 사랑한다. 그래서 한순간에 자신의 선택으로 떠나는 사람들, 손미나 작가나 이 책의 저자 리샹룽 같은 사람을 선망하고 좋아한다. 그리고 나 자신의 생활도 쉴 새 없이 바쁜 쪽을 선호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흠칫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깊은 공감과 깨달음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다른 일로 바꿔 가면서 하는 것이 일종의 휴식이다.” 정말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학교 프로그램이나 멘토링, 동아리 등 활동들을 추천하면서 내가 얼마나 이것이 휴식인지 어필했던가! 그제야 내 생활을 타인에게 좀 더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좋아졌다. ‘성인이 고도의 집중력을 일으킬 수 있는 시간은 15분’이니 여러 일을 번갈아 가면서 하면 그 생산력의 양을 짐작할 수나 있을까? 나보다 앞선 사람의 모습이 이토록 반가울 줄은 몰랐는데, 벌써 이름만 아는 저자가 너무나 좋아졌다. 그런가 하면 머리를 한 대 맞은 부분도 있었다.      


‘우수한 존재가 아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라.’ 사실 전문인력은 점점 사람들 사이에서 무의식 중에 하대 받는 인력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정말 대체 불가능한 존재들은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은 그런 방향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나다 한들 그 시스템이 모든 시장에 풀리진 않을 것이고, 풀릴 수 없는 시장도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그러니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던가 ‘남들도 노리는 일’을 누구보다 잘해야 한다. 너무 어렵고 잔인한 이야기다. 잘해야 한다는 말은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듯한 감각을 새긴다. 열심히 하는 것은 필요 없다, 잘해야 한다, 차가운 어조로 회자하는 발언 이어서일까? 취업에 예민한 지금, 자칫하면 차갑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을 다정다감하게 들은 기분이다.      


이 책에선 무조건 성공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았다.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언급을 했는데, ‘누구에게나 인생은 고독하므로 그 사람으로 인해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면 그 관계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한 친구와의 일을 생각나게 했다. 그 애는 나와 비슷한 친구였다. 일정 대상에 대한 생각이 통했고, 서로의 부모님을 공경했으며, 이상적으로 여기는 것이 유사했고 단짝에 대한 로망이랄지 소망이랄지, 단짝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는 7년간 친구였다. 아버님과 중국으로 갔을 때도 우린 친구였다. 나라가 달라졌음에도 사이가 갈라지진 않았다. 그런데 그 후 많은 것이 변했다. 우리는 서로가 있을 때는 다른 친구들과의 소통이 많지 않았고 서로 느낌이 비슷했다. 그런데 떨어진 1년, 그 사이에 흥미부터 각자의 친구 성향까지 다 달라져 있었다. 둘 다 자기주장이 강해진 것은 똑같았지만, 서로의 달라진 모습에 다투는 일이 많아졌고 냉전을 벌이고 말았다. 다시 같은 반이 되어서는 좋은 관계였지만, 재수 당시 했던 말들로, 대학 1년의 일에 대한 거로 우리는 갈라졌다. 그 애는 내가 좋아하는 애니나 만화를 싫어했고, 책을 좋아하는 나를 너만 그렇다고 취급했고, 내가 하는 고생은 자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비하했다. 나는 힘들 때 지지해준 나와 달리 나를 더 힘들게 한 사람을 절대 친구로 볼 수 없었다. 만약 친구로 계속 지냈다면 그 애와의 관계는 내가 자랑거리로 삼는 것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오랜 친구는 세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얻기 힘든 것이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가장 오랜 친구라는 점만이 친구 관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친구라고 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래도 그 애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점을 충분히 보여준 친구였고, 지금도 그 애를 싫어하긴 하지만 존중할 만한 점이 있다고 담담히 말할 수 있다. 그러니 그 관계도 헛된 것이 아니었겠지. 그 애는 이제 내 아픈 손가락이 되어 버렸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나아질까. 이 일이 아니어도 나는 사람 사이의 인연이 귀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인데, ‘이 세상은 사실 거대한 고아원이라는 것을’이라고 언급하며 길 위에서 만난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고 소통이 중요한 것인지 말하는 저자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우리 부모님께 친구 이름부터 강의 시간, 사정, 과제의 어려움까지 다 말하곤 하는데 그런 내 습관이 친구들에게서 조금 배척받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습관은 우리 가족이 지금처럼 사이좋고 화목하게 만드는 데 큰 일조를 했다. 더군다나 이제는 서로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만약 내가 과묵했거나 부모님께 내 모든 생활을 비밀로 했다면 부모님은 날 자립시키기 더 힘들어하셨을 거고 내가 이토록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성장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때는 부모님이 내게 너무 집착하신다는 걸 느끼고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부모님과의 소통과 지낸 시간을 통해서 차차 내 길을 준비하고 있다. 부모님의 허들이 여전히 내 친구들에겐 거세게 느껴지는 것 같지만 내가 그 허들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점차 안정적으로 내려올 것을 알고 있으니 걱정거리는 아니다.      


나는 이렇게 많은 면에서 나와 통하고 내가 깨달았다는 점에서 저자를 존경하는데,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그런 길로 갈 수 있을까 겁이 난다. 이런 내 마음을 읽은 듯한 구절이 있었다. “지금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한때 치열한 각오로 비장하게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뭔가에 미치도록 빠져드는 것도 기본적인 물질적 기반은 갖춘 뒤라야 가능한 것이다.” 내가 저자에게 답을 달라는 암시라도 보냈던가, 싶을 정도로 내가 원했던 답변이었다. 저자는 사람을 보려면 밤을 어떻게 쓰는지 봐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낮은 다 비슷비슷하니 밤을 어떻게 쓰는지 보라고. 공허를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나는 건강상의 이유를 제외하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나는 지금 당장 내 꿈을 실현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내가 지금 읽은 이 책이 저자의 말처럼 당장 돈이 되진 않을 것이다. 책 속에는 활자와 세상이 존재하지 금이 있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시기에 이 책을 만나 나는 확실히 기쁘고 안정됨을 느낀다. 그것으로 된 것이라, 그렇게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코로나에 이길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