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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Feb 04. 2021

우리는 코로나에 이길 것이다

<전염병이 휩쓴 세계사-김서형>을 읽고

코로나. 이 세 글자의 주인공이 얼마나 많은 파동을 일으켰는지. 그 작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제대로 뒤집고, 헤집어놨다. 펜데믹 사태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맞춰 그 위용은 경험해본 적 없는 공포로 덧칠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 정도의 사태가 예전에 있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다들 없다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 분명 코로나 바이러스는 처음 나타난 바이러스고, 백신 개발을 한 적이 없기에 위험하다. 그 전염성과 후유증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틀린 건 이런 사태가 처음이라는 점이다. 전염병이 창궐한 사태는 지금껏 역사에서 몇 번이나 있었다. 꼭 먼 옛날, 로마 시대나 중세 시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겨우 100년 전 정도인 1918년에도 매우 유사한 전염병이 존재했다! 사람이 많아지고, 몰리고, 교류가 많은데 지저분한 곳이 있다면 자연히 병은 발생한다. 인간은 무적의 존재가 아니다. 왜 동물원에 울타리를 치고, 총이며 칼을 발명했는지 생각해보라. 전부 약해서 만들어낸, 필요의 도구다. 바이러스에도 당연히 약하다. 그러니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상황이 그렇게 당황스럽고 놀랍고 믿을 수 없는 상황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전염병은 인류의 그림자나 다름없을 정도로 오래 자리했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하면서 수렵 채집 시기와 달리 정착하기 시작했고, 그건 전염병에 대한 위험성을 높였다. 사람들이 모여 있을수록 옮겨지기 쉬웠으니까. 게다가 야생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기까지 했다. 의도도 시도도 좋았지만, 동물들의 바이러스까지 함께 셈이다. 물론 그 사실은 모두가 인지하지 못했다. 게다가 안 보이는 전염병 따위 때문에 가축이 주는 고기와 노동력을 포기할 순 없었다. 존재하긴 하는지, 치명적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눈에 보이는 부귀와 평안을 누가 버리겠는가. 훗날 사향고양이와 과일박쥐로 인한 질병이 발생했을 때도 사태는 똑같았다. 농경 시대를 벗어나 정보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전통 음식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그 악영향이 어떤 것인지 막연하게 알려진 것도 아니고 아주 정확하게 드러났는데도 말이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본래 전통은 선조들의 지혜를 따라 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시기가 되면 몸이 아프고, 어떤 시기가 되면 추우니 뭘 먹고 하는 식으로. 그렇게 시대를 넘은 전통 중엔 분명 믿기 힘들 정도의 지혜가 담긴 것도 있고, 현대에 정착한 것도 많다. 그러나 전통은 질병에 대한 대처 면에선 늘 어리석어진다. 선조들의 오랜 전통이 아이러니하게도 지혜는커녕 우둔함을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세상이 너무 변해서일까? 아니면 선조들의 어리석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자존심일까.     


자존심이든 뭐든,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다. 역사는 그 변화의 과정을 기록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끝인 줄 알았던 바다 너머 많은 지역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신대륙’도 찾았고 하늘도 날 수 있다. 그 이전엔, 도시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제국의 시초가 나타났다. 그러면서 질병도 다양해졌다. 실크 로드라는 무역 길을 통해 비단과 유리가 오갔다. 이 무역은 견문을 넓히고 문화가 발달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비단길은 마냥 꽃길이 아니었다. 중앙아시아 쪽의 천연두가 로마로 옮겨가 그 당시에 약 4~500만 명이 죽었다. 그리고 실크 로드 대신 개척한 바닷길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페스트가 발병하면서 무역이 끊기고 국력이 약해지고 사람들이 죽어 간 것이다. 무역의 이면이 얼마나 큰 어둠을 불러오는지 미처 생각지 못한 비극이었다.      

사람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인류의 ‘무역’으로 인한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대륙 발견 후 신대륙의 작물과 금을 유럽으로 나른 것이다. 무역 자체를 무어라 할 순 없지만, 그곳은 말 그대로 당시의 유럽엔 신대륙이었다. 아주 새로운 곳이었다. 환경, 풍토 모든 것이 달랐고 자연히 면역도 큰 차이가 있었다. 원주민이 90%가 유럽인들의 침략으로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유럽에도 매독이 유행하는 등 서로의 질병 교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프리카는 더 상황이 나빴다. 풍토병이 많았던 아프리카인들을 일손으로 쓰기 위해 노예로 잡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곳이든, 세상에는 매국노가 있나 보다. 우리나라에 이완용 같은 친일파가 있었듯 아프리카에는 노예 사냥꾼이 있었다. 도대체 같은 나라 같은 민족, 그 이전에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참혹한 일을 벌인 건지, 상상할 수도 없다.      


물론 무역으로만 질병이 퍼진 건 아니다. 세계대전으로 인해 이질 등 많은 질병이 창궐했다. 당시 위생에 대한 개념도 부족했고 징병은 수용 인원보다 많았으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치료는 갈수록 늦춰졌다. 그로 인해 병사들은 셀 쇼크에 시달리고 중독 증세를 보였다. 베트남 전쟁의 파병 간 우리나라에서도 그 후유증을 크게 앓았다. 이 어찌 지독한 악순환인지 모른다. 전쟁으로 젊은이들이 무력에 의해 죽었고, 병상에서 병들어 죽었고, 도시에서도 오염된 물 때문에 콜레라로, 건강이 안 좋아져 결핵으로 죽었다. 그 많은 목숨을 다 내놓고 난 후에야 전쟁은 끝났지만, 목숨은 돌아오지 않았다.     


전염병은 언제나 우리 주위에 있었다. 발달한 과학과 위생개념으로 몰랐을 뿐이다. 전통 음식, 무역, 전쟁으로 다가온 전염병은 제국을 멸망시키고 권위를 앗아갔다. 그런 변화는 몇 번이나 역사 속에서 반복되었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승리하고 어떤 분야는 발전했지만 언제나 완벽하게 승리할 순 없었다.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있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인지하지 못할 뿐 얼마나 많은 세균이 우리 곁에 자리하던가. 그저 한 바이러스가 그 영향을 아주 세게 발휘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전파 경로도 알고, 증상도 알고, 대처법도 안다. 백신도 지금 만들고 주입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아주 괜찮은 전염병 대처 방식이 아닌가. 신의 징벌이라 생각하고 채찍의 형벌을 받으면 나을 것이라 여긴 그 시절은 이제 없다! 논리적인 해결 방법과 정책이 존재한다. 정보화 시대에 첫 전염병이라 모두 놀란 것뿐이다. 사람이 갑자기 많아지고 빠른 발전으로 빈부격차의 범위가 벌어졌으니, 위생이 떨어지는 곳도 생기기 마련. 살기는 힘들어지고 사회는 바뀌니 사이비 같은 종교도 등장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놀라는 일들 하나하나는 최초로 발생한 일이 아니다. 이미 몇 번 있었던 일이다. 사람들은 늘 같은 걸 반복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세상은 이미 경험을 겪어왔다.  

    

페스트도 콜레라도 매독도 장티푸스도 천연두도 이겼다. 최초의 인플루엔자도 이겼고 처음 보는 질병도 결국 치료했고, 살아남았다. 코로나라고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신의 벌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 중세 시대 성직자들은 왜 죽었단 말인가?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함께하지 못해서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중세 때는 사람들이 과연 효과적인 방법을 썼을까? 코로나는 질병에 불과하다. 아주 작은 바이러스일 뿐이다.

우리는 결국 이길 것이다. 방법도 알고 경험도 있다. 

그저 시간과 체력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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