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 Feb 08. 2021

십만양병설이 이렇게 생각날 줄이야

<세계사를 뒤흔든 전쟁의 재발견-김도균>을 읽고

교양 과목 중 전쟁의 역사를 수강한 적이 있다. 역사나 암투는 알아도, 전쟁은 모르는 때였다. 공부하면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전쟁에 대한 상식이 필요했다. 그렇게 찾게 된 책이 이 책이었고, 그래서 나는 전쟁에 대해 알아보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은 전쟁을 잘 표현하고, 새로운 사실도 전해준다. 신선한 충격에 사로잡히게 된다!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어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레온 트로츠키의 한마디.      


이 말이 제일 잘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사실 생각해보라. 군인이나, 군 물품이나, 무기 회사 직원이 아니면 누가 전쟁을 늘 옆에 두던가. 전쟁은 기본적으로 일상의 파괴다. 자연히 사람들의 생계와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갑자기 전쟁에 휘말리고 알 수 없이 징병 되고 죽어갔던가. 옛날 농민들이 전쟁, 정치는 귀족, 기사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피해자는 대다수가 민간인이었다. 전쟁의 일으킨 지배층이 포로로 잡히고, 인질로 살고, 항복해 사는 동안 말이다. 자기를 위해 말할 수 없는 민간인만이 죽어갔다. 심지어 지배층과 사회의 압박에 자결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정말… 불공평한 일이다. 다행히 점점 시대가 변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시민들의 가치가 달라졌고 사람 개인의 존중이 중요해졌다. 그 덕분에 현재, 평범한 학생들도 전쟁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전쟁이 자신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았으니까. ‘당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달라진 게 아닐까? 무엇보다 부모 등 윗세대가 그걸 경험해서일지도. 무엇보다 생생한 이유를 제공해주니까. 그래도 사실, 전쟁에 대한 현실감은 들지 않는다. 평생 나와는 연이 없을 것만 같다. 그래서 그 말이 더 두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의지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 천재지변과 다를 것이 없지 않나.    

 

그러나 이 책에서 전쟁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만을 느낀 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를 지지한 건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가족으로 구성된 군대보다 연인으로 구성된 군대가 더 열정적이고 용감했다는 기록은 신선했다. 동시에 동성애 폭탄이란 동성애 차별적인 무기를 생각해낸 미국에 대해 엄청난 거부감이 들었다. 아무리 모든 도덕과 원칙이 무너지는 게 전쟁이라지만…. 그걸 무기로까지 삼아야 하나. 동성애는 전 세계적인 논란거리인데, 이대로라면 동성애를 그저 약점으로만 보지 않을까?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미국이 누구보다 인권을 무시하는 것 같다.     


물론 모두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한 건 아니었다. 미국이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해 가는 것을 체계화하여 실행하는 기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막상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해 문장으로 접하니 뼈에 사무치도록 부러웠다. 생사의 여부를 모르는 것만큼 큰 고통이 어디에 있다고…. 그리고 등자, 전차, 기관총의 개발과 발명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디선가 기록을 본 적이 있다. 6·25 전쟁이었던가? ‘우리도 탱크가 있었다면, 우리도 탱크가 있었다면….’ 이라고 하염없이 써진 군인의 일기는 너무 안쓰러웠다. 병력과 자원의 차이가 얼마나 군인에게 무력감을 주는지 확실히 느껴졌다. 그 무력감은 승패를 좌지우지할 정도 아니던가. 하지만 제일가는 건 등자였다. 이름이 순간 낯설 정도로 초반엔 존재감이 없었다. 그건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등자가 없던 시절임에도 자연스럽게 등자가 있는데 왜 힘들다고 그러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등자의 존재를 무의식중에 당연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고대 사람들이란…!      


같은 맥락으로, 야전병원에 대한 요소들도 있었다. 병원의 발전이 제일 느렸단 것이 놀라우면서도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은 책임을 무서워하고 도전을 두려워하니,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에 있어서 관습을 따랐을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앰뷸런스의 시작이 마차였고, 그 낡은 마차가 나는 엠뷸런스로 불렸다는 점이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스러웠다. 엠뷸런스의 존재 말고도 부상의 정도에 따라 환자들을 나누어 치료했다는 것도 시기가 생각보다 너무 늦어 약간 참담할 정도로 놀랐다.  

    

어떤 소설에서 본 적이 있는 문구가 있는데, 사람은 평화에 젖어 있으면 전쟁과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것이 만약 개인에 불과하다면 그 개인을 사라질 것이나, 국가에 걸친다면 그 국가는 파멸할 운명이라고 하였다. 전 세계는 아닐지라도, 이미 상당한 수의 국가들은 평화에 젖어 있다. 하지만 이건 눈속임에 불과하다. 아무리 많은 전쟁을 봐도 전쟁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만큼의 잔인함은 몸서리가 쳐진다. 발전했던 어떤 예시가 있던, 전쟁은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세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위태롭다. 세계는 마냥 평화롭지 않다. 어느 곳에선 내전이 일어나고 어느 곳에선 감정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다시 한번 인용하자면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을 대비하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과연 전쟁에 대비가 되어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평화를 위해서 전쟁에 맞서고 버틸 능력과 힘이 있을까? 나는, 우리는 이 나라나 단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암담하고 처절하게까지 느껴지지만, 나는 전쟁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지금의 우리나라가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처럼 느껴진다. 십만양병설, 그것이 2021년에도 이렇게 생각날 줄이야. 그때의 비극이 되살아나는 것만큼은 막아 우리의 평화가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지난 노력들, 해나가는 노력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