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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Feb 09. 2021

언제나 있어서 서럽게 슬프다

자살에 대하여. 떠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자살은 우리 곁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언제나 자살은 위인, 친구, 연예인의 이름으로 존재해왔다.

‘자살’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된 건 역사에서였다. 자결은 언제나 빛나게 드러났다. 용감한 여인, 강직한 여인들은 언제나 위기 앞에서 자결을 택했다. 몇몇 인물들도 굴욕과 항복 대신 자결을 선택했다. 그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숭고해 보였고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자결은 어느새 내 안에서 대단한 결심, 장엄한 마무리로 남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예상외로 빨리 무너졌다. 중학교에 오니 자결이 아닌 자살을 배웠다. 자살은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 약이든, 밧줄이든, 칼이든, 총이든. 자결이 내게 신화였다면, 자살은 현실이었다. 그 두 단어는 큰 간격을 두고 있었다.      


자살은 생각보다 우리 곁에 있었다. 청소년 자살률이 그렇게 높다는 걸 처음 알았다. 처음에는 경악스러웠지만, 곧 그걸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학창시절은 아름다운 청춘이 아니라 잿빛 경쟁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왜 죽는 걸 선택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들지 않았다. 그 애들은 그저 하루하루가 힘겨웠던 거다. 훗날 올 아름다운 나날보다 당장 내일이 더 버거워서.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렵고 무서워서. 그래서 모두가 말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뿐이다. 그 고통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선생님들은, 어른들은 늘 그런 점에선 입을 다물었다. 그땐 그게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이해한다.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은 너무 힘들어서 죽은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처음 겪는 고통에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할 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분들은 그저 아이들이 조금 더 살아서, 스스로 생각하도록 둘 수밖에 없었다. 그건 최적의 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최악의 답도 아니었다. 그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선 최고의 해답을 내놓을 수 없으리라.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명언이, 자극이, 쾌락이, 혹은 고통이? 사는 기쁨과 보람, 생존본능보다 생활의 두려움에 죽음을 택한 사람들을 감히 이해한다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연예인들의 자살은 예외였다. 그들의 사망 원인은 전부 대중에게 있었다. 정확히는 대중 속에 숨은 악의가 범인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걸 뿌리 뽑아내지 못했다. 친구들이 대학에 가고, 재수하던 시절 샤이니의 종현이 생을 마감했었다. 대학에 와서는 설리, 구하라, 박지선… 많은 연예인이 또 떠났다. 그들은 괴로워하면서도 드러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끝, 종지부인 사망조차 모두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때마다 나는 심란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 사실 떠난 이들 중에 내가 특별히 좋아한 연예인은 아무도 없었다. 노래를 듣고, 챙겨 보고, 응원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안에서 그들이 차지한 비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그들이 떠난 건 별개의 일이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성장한, 어쨌거나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이었다. 나이에 맞게 예쁘고, 매력 있고, 멋있고, 자신의 빛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많은 일을 겪었대도 결국엔 한창의 나이였다. 연애도 실패해보고, 여행도 다녀보고, 이것저것 도전해볼 그런 나이. 인생을 즐기라면 즐기고, 앞을 바라보라면 바라보는 그 시절에, 너무 이르게 끝을 맺었다. 그 사실만으로 안타깝다. 언제나 화면 안에서 무대 위에서 반짝였던 이들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안 보이는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게 아니고 그저 멈춰있다…. 기쁘고 행복했던 시간마저 애달프게 물들인 채로.    

 

하지만 가장 심란했던 경험은 다름 아닌 오늘이었다. 이름도 모르고 친분도 당연히 없었다. 그저 한 공무원의 죽음이 너무 아팠다. 스물넷, 그 젊은 나이에. 방송을 탄 탓에 그 사람의 얼굴은 알려졌고, 온갖 추측이 밀려왔다. 죽음의 원인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세상을 떠난 청년이 시렸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나와 정말 단 하나의 관계성도 없는데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어린 사람이었다. 나와 해봤자 1년 차이였다. 나는 빠른년생이었으니 진짜 같은 시간을 살았고 같은 수능을 봤을 것이다. 나 역시 살아온 시간 내내 힘든 시간이 없었다곤 못 한다. 오히려 꽤 어두웠던 기간이 있다고 자신한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죽음을 선택하는 걸 이해한다. 그 선택이 바보 같았다고 마냥 꾸중할 자신이 없다. 그 시간을 버티는 건, 인생을 사는 건 온전히 당사자의 선택이기에. 내 마음 아프지 말자고 죽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만일 내 가족이라면, 친구라면 이 이기심에라도 매달리겠다. 하지만 그 무엇도 아니라면 아무 말도 못 한다.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안쓰럽고 구슬프다.      


자살 이야기는 잊을만하면 툭툭 튀어나온다. 뜬금없이 sns에서 소식을 접하기도 하고 뉴스에 나와 경악하기 일쑤다. 그만큼 생활에, 삶에 걸쳐져 있는 것이 자살이라는 걸 그때마다 실감한다.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길. 하지만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는 길. 그러나 누군가는 가고야 마는 길이 자살이라는 걸. 이상하게 커갈수록 자꾸 또래의 죽음이 들려온다. 한때 같은 하늘 아래 있었던 누군가는 흔적만 남아있고… 나는 다음 날이면 다시 일어나 걸어간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사이의 간격이 넓어질수록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이 몸에 가득해진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다행히도 주변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내 주변이 강하고, 운이 많이 따라준 덕분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의문이 든다. 자살을 없앨 순 없는 걸까. 살아가는 생애에서 계속 누군가를 이렇게 보내면서 지내야 하는 걸까. 멍청한 소리고, 이상적인 소리라는 걸 안다. 그런데 이런 두서없는 소원이라도 이뤄졌으면 좋겠다. 

모두가 자살을 생각하지도 실행하지도 않게. 

한 번뿐인 귀한 인생, 조금이라도 더 즐기고 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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