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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Feb 15. 2021

소녀들이여, 그대들은 아름답다

<나다운 게 아름다운 거야-케이트 T. 파커>를 읽고

‘아름답다’라는 말은 어렵다. 그 표현만큼 흔하면서도 직관적인 게 또 있을까? 수많은 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 온갖 꽃과 보석, 자연 풍광을 비롯한 모든 것이 말이다. 하지만 감히 그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걸 꼽으라면,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순수와 천진난만함에서 성장해 나가는 아이는 언제나 귀엽고 대견하니까! 굳이 피붙이가 아니어도 그 생명력과 아름다움은 모두가 공감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 만물을 알아가고, 배우는 건 단 한 번뿐인 경험이 아니던가. 그 시기는 어느 때보다 신비롭고 놀라운 시간이다. 흔치 않게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회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시간은 마냥 부드럽게만 채워지지 않는다.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던 내가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배우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그 과정에서 부딪히게 된다. 이때 부딪히는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회의 통념일 수도 있다. 너무 불합리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바로 꽂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 받은 상처나 의문은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중 여자아이 대부분이 경험했을 상처는 ‘여자아이면 이래야지’하는 관념이다. 남자아이들 역시 ‘남자아이라면 이래야지’라는 관념에 많이 갇혔지만, 여자아이들에 대한 관념은 ‘자유’라는 관점에서 더 억세게 들어온다. 옷차림부터 말투, 머리 모양이나 좋아하는 대상에까지 영향을 받는 것이다. 예쁘고, 얌전하고, 아름답고, 착해야 하니까. 이 끔찍하게 답답한 관념은 몇십, 몇백 년을 이어져 오고 있다.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그게 포기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여자다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온 지 오래되었다. 여성은 그저 성별 중 하나일 뿐이다. 그 단순한 차이로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거나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 다행히 이제는 자라나는 당사자들인 소녀들도 그 모습을 당연히 여긴다.      


<나다운 게 아름다운 거야>에서는 그런 소녀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보고 있노라면 그녀들의 성격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헤일리’라는 소녀의 표정은 분명 부드럽지만, 강하다. 옥 위에 새겨진 부처의 미소처럼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여자아이들은 자신의 내면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는 덜 집중하고요. 신경 쓰지 않는 것에 큰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물에 젖은 머리? 신경 쓰지 않아요.” 10살이 하는 말이 맞나 싶을 정도다. 수영하다 나온 듯 물에 젖어 머리가 얼굴에 가닥가닥 붙어있지만,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고, 그 힘을 아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자신감이 넘쳤다. 부럽고,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알고 있다. 그런 모습을 한 번이라도 가지는 건 정말 중요하다. 자신감과 자존감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잘하고 있다’. 이 단순한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렵던가? 자기 자신을 애써 깎아내리고, 엄격해지려 노력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거다. 10살도 넘치는 믿음이! 나이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앨리스’라는 아이의 사진도 부럽긴 매한가지였다. “쇼하는 걸 좋아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에요. 정말 잘하거든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며, 허리에 착 손을 얹은 것까지 완벽했다. 7살의 재기발랄함이 넘쳤다! 흑백 사진임에도 반짝반짝 다채로운 색상이 느껴졌다. 얼마나 즐기는지 한눈에 보인달까. 그렇게 즐길 수 있고, 잘한다고 이야기하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즐기는 것, 좋아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너무 늦게 한 것 같다.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별생각이 없었다. 내 유년 시절이 힘든 건 아니었지만 그게 딱히 중요한 건 아니었다.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보단 잘 배우는지, 뭘 아는지, 태도가 어떤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나 역시 오랫동안 그건 그다지 상관이 없다고 여겼다.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아는 건 대단한 일이다. 일찍이 소크라테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너 자신을 알라고. 자기 자신을 파악하는 데 자신의 선호보다 좋은 게 있을 리가! 자신의 취향과 선호를 깨닫는 순간부터 나 자신에 관한 관심이 늘어난다. 그렇게 조금 더 성장해가는 것이다. 자신을 알면 자신의 갈 길, 즉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수 있으니까.     

 

깨달음을 넘어 감탄이 나오는 소녀들도 있었다. 15살인 ‘캐롤라인’은 이미 그런 점에선 어른이었다. “다른 댄서들을 보며 내가 잘하고 있구나 싶어 힘이 나요. 그들을 지켜보고 비교한 뒤 바뀌려고 노력해요. 똑같이 따라 하는 게 아니에요.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더 나아지려고 하죠.”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여러 소녀의 발이 캐롤라인을 얘기해주고 있었다. 그중 누가 캐롤라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자신의 길을 알고 나아가며, 방법을 갈구하고 있었다. 토슈즈를 신고 벗고, 발을 잠깐 쉬게 하면서. 10살의 ‘파커’의 눈빛은 제일 강렬했다. “난 언제나 최선을 다해요.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요. 엄마가 진실함은 그런 거랬어요.” 녹색 눈을 번뜩이면서 정면을 응시하는 소녀의 얼굴은 찡그려 있었다. 하지만 그 찡그림은 그녀의 굳건함을 보여줬다. 농땡이나 거짓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래, 저런 모습이 저런 말을 하는 소녀의 모습이지.     


예전보다 모든 것이 좋아졌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많은 소녀가 예전보다 밝은 빛을 발하고 있다. 차별받고, 억압받지도 않는 모습은 멀지 않았다. 그런 시대를 사는 소녀의 모습은 부러워서 심술이 날 지경이지만, 지금 같은 얼굴이 유지되길 바란다. 비극이 이어질 필요가 대체 어디 있던가. 소녀들의 앞길에는 과거의 비극이 없어야 한다. 이렇게 태어나 잘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모든 소녀가, 소년이, 여성이, 남성이, 그렇게 자신을 믿고 가길 바란다. 평생 그렇게 자신의 길을 가는 얼굴이 잊히지 않기를. 강하고, 단단하며, 재기발랄하고, 방법을 갈구하는 그런 태도. 그 각각이 제일가는 아름다움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소녀들이여, 그대들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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