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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Feb 14. 2021

꽤 괜찮은 날이다

밸런타인데이를 비롯한 기념일에 대하여

밸런타인데이다. 

연인들이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기념하는 날.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날. 

이날은 아주 특별한 날은 아니다. 온갖 상점에서 이날을 떠받들며 세상에 홍보하는 건 전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니까. 모두가 초콜릿 향기에 들떠도 금방 사그라지는 시간에 불과하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밸런타인데이 같은 날은 모두 상술이라는 걸. 전통적으로 만든 날도 아니고 역사적인 날도 아니다. 그저 한 회사가 제품을 팔기 위해 만든 특별 기간이다. 묻겠다. 밸런타인데이 같은 기념일은 중요한 날인가? 중요한 날이라고 답하는 사람은 얼마 안 될 것 같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날에 약속을 잡을지언정 중요하다곤 여기지 않을 테다. 하지만, 그렇게 사소한 날인 밸런타인데이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광복절은 몰라도 밸런타인데이는 알 사람이 차고 넘칠 것이다. 농업인의 날은 몰라도 초콜릿을 주고받는 걸 모른다면 괴짜 취급을 받을 테다. 한 회사의 상술은 아주 성공했다. 이제 우리 생활에서 빠지면 어색할 정도로. 그럼 이제 다시 물어본다. 정말로 밸런타인데이는 아무 의미가 없을까. 아무 중요성도 없는 날인가?     


기념일은 헤아려보면 정말 많다. 1월부터 12월까지 없는 달이 없다. 혹 아시는지, 11월을 제외하고 매달 14일은 늘 기념일이라는 걸? 밸런타인데이를 제외하고도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다이어리데이, 블랙데이, 로즈데이…. 가지각색의 기념일이 존재한다. 만약 이 기념일들이 모두 중요하지 않고, 의미가 없다면, 유지가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념일은 자본주의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 상품이 선물이 되고, 선물이 기념일에 맞춰져 애정과 섬세함을 결정하는 분위기를 모를 리가 있나. 의심할 여지없는 상술의 일종이고, 마케팅이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기념일의 의미를 사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세상은 돈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 돈이 마냥 사치나 낭비가 아니라 선물하는 데 쓰인다면? 꽤 좋은 소비가 아닌가. 어차피 쓸 돈이다. 기념일을 챙기지 않으면 돈을 쓰지 않는다고 반박하겠지만, 돈을 평생 모으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이 잘살려고 하면, 즉 행복해지려면 자신이 원하는 데 돈을 쓰기 마련이다. 그게 취미 생활이든, 더 예쁜 옷이든, 기부든, 수집이든 말이다. 그러니 그 돈의 일부를 주변인에게 쓰는 날이 있는 건 꽤 괜찮을지도 모른다. 너무 과도한 소비나, 초콜릿을 받은 것에 대해 집착하는 건 좋지 않지만, 그런 부작용을 제외해보면 어떤지. 판매자나 소비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자본주의를 위한 날이 아닌가 싶다.    

  

자본주의적으로만 해석하지 않아도, 기념일의 의미는 또 있다. 요즘 세상은 정말 바쁘다. 아무리 친해도 생일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기프티콘이 괜히 성공한 게 아니다. 바빠서 직접 선물을 못 주고, 먼 거리에 사는 친구도 챙기는 방법을 보여준 거다. 현대인 맞춤 제품인 셈이다! 제일 중요한 기념일인 생일도 이렇게 축하하기가 힘들다. 일상생활이 바쁘고, 녹록지 않은 게 느껴진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취준생이든 사회인이든 너무 복잡하고 힘들다. 하루하루를 지겹게 버틴다고 하는 사람도 흔하다.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는 사람 역시도 발에 치일 지경이다. 자, 그럼 또 하나를 얘기해보자. 그런 일상 속에서 한 이벤트를 한다. 그 이벤트가 아무리 상술이고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거라도 재밌다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날이고, 상점에서도 맞춤 행사를 해 싸게 살 수 있다면 어떤가? 지루하고 무료한 날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심심한 리듬을 깨고, 일상에 변칙을 선물한다. 넓게 보면 삶의 활력을 주는 요소인 셈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원체 연인들을 위한 날이 적었다. 옛날엔 연방을 따고 탑을 돌며 짝을 찾았다지만 현대에서는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했다. 부모님을 위한 날, 아이를 위한 날, 가족을 위한 명절은 있었지만, 연인을 위한 날은 딱 잡아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좋은 관계가 이루어지는 건 정말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다. 상술이라 할지라도, 그 날 선물을 안 주고받아도 그 날 만나는 건 연인들의 암묵적 약속인 걸 보라. 낭만적이다! 없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기념일이란 훌륭한 핑계는 연인들이 서로 돈독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추억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많고 많은 날 중에 그런 날이 있는 건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다.   

  

세상은 사람이 살고 사람이 만드는 곳이라 한 면만 볼 순 없다. 미국의 그 예쁜 센트럴 파크도 한때 많은 반대를 샀다. 그 면적이면 주거 지역을 더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리의 에펠탑도 마찬가지로 반발이 심했다. 고전적이지 않고 현대적인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건 양면성을 지닌다. 사건이든, 장소든, 물건이든 모두. 기념일도 예외가 아니다. 누군가의 상술로 시작됐지만, 일상에 변화를 선물한다. 사랑스러운 연인들에게 만날 기회를 제공하고, 경제에 도움이 된다. 기념일에 맹목적으로 집착하고 과한 관심을 보이는 건 좋지 않지만, 너무 꺼릴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지 않은가. 

마음에 드는 기념일을 골라 주변인에게 선물하고 자신에게도 선물해보자. 

생각보다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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