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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Feb 12. 2021

그래도 생일은 언제나 축하받아야죠

‘연락을 자주 안 한다.’ ‘생일에 연락도 안 한다.’

이 두 표현 중에 어떤 말이 더 연락을 안 하는 것 같은가? 아마 대부분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평소엔 연락하지 않아도 생일엔 연락하는 것이 정이 있다고 느껴서일까? 1년에 한두 번만 안부를 물어도 그 날이 생일과 명절이라면 한없이 기꺼워진다. 반면 평소에 연락을 자주 하고 친해도 생일에 연락하지 않으면 괜히 멀어지기도 한다. 생일은 그냥 그런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이 태어난 날. 딱히 빛나거나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그저 탄생으로 축하받는 유일한 날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날이고, 모든 이에게 특별한 날이 아니다. 오직 나에게만 특별하고 소중한 날이다. 어쩌면 유일하게 ‘평범하지 않은’ 시간을 기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던 순간을 기리듯이.     


많은 기념일이 그러하듯, 생일도 사실 그저 그런 날에 불과하다. 그날이라고 운이 좋진 않고, 갑자기 예뻐지지도 행복해지지도 않다. 세상이 무지갯빛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가는 길마다 축포가 쏘아지는 것 역시 아니다. 그러나 생일이라면, 누구나 조금은 설렌다. <도깨비>에서 이모네 집에 얹혀사는 은탁이는 구박을 받으면서도 미역국을 끓인다. 자신의 생일을 위해서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축하하고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은탁이만이 그런 모습을 보인 건 아니다. 생일은 비극적이건 환상적이건 ‘무슨 일이 일어나는’ 날이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오로라가 온갖 축복을 받은 날도, 저주가 실행된 날도 생일이었다. 신데렐라가 무도회에 간 날도 다름 아닌 생일이었다. 인어공주가 왕자를 본 날은 왕자의 생일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콩쥐가 마을 잔치에 간 날도 원님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생일에 많은 사건이 일어났는지! 누군가의 생일에 일어난 일들만 정리해도 셀 수 없을 것이다. 그래, 동서양이나 시대는 상관없다. 그 모든 차이와 변화에도 생일만은 언제나 특별한 날이었다. 온갖 문학과 설화에서 우리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생일은, 탄신일은, 언제나 화려하고, 특별한 날이다. 힘겨운 날들이었다면 모든 것이 바뀔 계기가 생기는 날. 행복하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날. 그래서 힘겹고 슬퍼도 생일만은 축하하고, 기뻐했다. 어느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오늘은 생일이니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어떤 기분 좋은 사건이 날 기다릴지 모르니까 말이다.     


이 생각이 DNA에도 새겨진 것일까? 아니면 갈수록 많아지는 매체의 영향일까? 내가 어릴 적에는 생일에 대한 관념이 아주 강했다. 생일이면 케이크를 먹고, 맛있는 걸 먹고, 파티하거나 선물을 받아야 했다. 평소와는 달라야 했다. 그게 생일이니까. 모든 주인공은 생일에 변화를 맞이했고, 기쁘건 슬프건 생일이 계기가 되었다.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생일의 가치는 낮아져 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턴 어린이날 선물이 없었는데 마치 생일도 그 이후로 변한 느낌이었다. 친구들과 놀았고 축하를 받았다. 훨씬 많은 친구에게서 축하를 받아도 어릴 적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친구들의 생일에 파티를 해줘도 그런 흥이 생기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더 심해졌다. 생일인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성적이었다. 이렇게 말하니 공부에만 매여 산 인생 같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학업 위주의 생활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지냈다. 20살이 됐을 땐 가장 최악이었다. 재수가 결정된 생일이 어느 때보다 끔찍함을 누구나 이해할 거다! 대학에 가고 나서는 다행히 나아졌다. 하지만 점점 그런 어떤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생일이라고 별거 아니구나. 내가 태어난 날이라고 반드시 모두가 주목하는 것도 축복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기대하지 말자. 기대하면 괜히 그날이 됐을 때 마음만 허해진다. 실망하는 것보다야 낫지.”  


이 생각은 나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sns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런 경험을 공유했다. 가족 모두가 바빠서 생일을 혼자 챙긴 기억, 케이크를 사 와서 불을 켰지만 쓸쓸해서 그냥 운 기억 같은 서러운 기억을 말이다. 그 변화는 사람이 성장하고 독립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크면, 부모는 언제 컸나 감개무량하면서도 한편으론 의지한다. 그 의지가 강해지면 아이인 면은 잊기도 한다. 성장했다고 하나 사랑을 당연히 좋아하는 자식은 어느 정도의 상처를 받기 마련인 것이다. 혹은, 독립하고 바쁜 사회생활에 덤비면서 고된 시간을 보내면 생일을 맞이할 여유도 없어서일지도. 예전과 다른 생활임을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에서 더 실감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갑자기 쓸쓸해지고 힘들어진 날을 갑자기 받아들이는 것도 이상하다! 결국, 생일에 대한 감상이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조금은 아쉬운 일인 셈이다.     


생일은 정말 복잡한 날이다. 단순히 보면 한 생명이 태어난 날이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어머니들의 목숨이 위험한 날이었고 많은 이들이 기도했던 날이다. 존재부터가 삶과 죽음을 아우르고, 비극과 행복이 함께 찾아올 수도 있는 날. 그 날이 지금 쓸쓸하게 다가오거나 공허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쩌면 제일 싫은 날일 수도 있겠다. 그럴 땐 자신이 아닌, 다른 생명이 태어났다고 상상해보면 어떨까. 자신의 동생이나 조카나 사촌이나 강아지나 고양이나, 친구나 어머니가. 그것만으로도 생일은 그 가치가 달라진다. 생일이 있음으로써 우리는 그 많은 인연을 만났다. 반드시 곱기만 한 나날은 아니지만 반짝이는 행복도 분명히 자리한다. 그래서 모두의 생일은 축하받아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생일엔 아주 조금이라도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아주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생일을 자기 혼자 축하하는 건 조금 서글플 수도 있으니까, 이 자리를 빌려 모두의 축복을 빌어본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모두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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