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 Feb 20. 2021

나아갈 맛이 난다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 강수진>을 읽고

    

예전에 예술가들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인상 깊었던 것은 강수진.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를 내가 집중해서 읽었다는 기억이 생생하다. 게다가 바로 전날 유명한 발레 영화 <블랙 스완>을 시청한 상황에서 오늘 도서관에서 강수진의 책을 발견한 건 읽으라는 계시와도 같았다. 강수진의 책이라는 걸 알았을 때, 제일 궁금한 것은 단 하나였다. 강수진은 명실공히 한국의 전설적인 발레리나가 아닌가. 대단한 여성, 아름답고 성공한 발레리나. 그런 그녀가 수석 발레리나가 될 때 어떤 고통이, 대가가 뒤따랐을까? 이 질문은 <블랙 스완>에서 나왔다. 발레에 문외한이지만 예술이라는 작은 교집합으로 주인공에게 친밀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나는 니나의 일생을 강수진에게서 찾고자 했던 것 같다. ‘니나는 위대한 발레리나’라는 증거를 찾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가상 속 발레리나의 수준을 더 체감하고 싶어서. 하지만 많은 점에서 달랐다. 가족의 태도, 주변인의 태도, 그녀들의 발레에 대한 자세 모두가.     


니나는 수석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완벽을 느꼈다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은 일순 황홀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의 표정이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완벽을 갈망해 망가진 사람은 찬란한 비극 그 자체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인간이라고 했던가. 그렇기에 사람으로 인형을 만들었다든가 하는 괴상망측하고 끔찍한 이야기가 종종 떠돌기도 한다. 사람의 신체를 대신할 것은 없을 정도로 신체는 고유의 미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걸 아예 다르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현혹되고 절정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예술가들. 그게 바로 니나였다. 백조의 모습에 안주하지 않고 흑조까지도 어떻게든 해내는 여성.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연출 속에서 관중들은 수석 발레리나에 대한 집착과 경쟁에 눈길을 빼앗기지만, 니나의 마지막 공연은, 흑조로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백조로 돌아오는 모습까지 완벽하다. 고혹미, 신비스러움, 비밀스러움, 잔혹함, 가녀림, 구슬픔, 그리고 이 모든 걸 내포한 모든 동작 하나하나는 그녀가 겪은 고통의 장면을 수긍하게 만든다. 찬란하게 죽은 예술가, 온몸을 내던져 바스러진 발레리나가 그녀였다.      


그러나 강수진은 애초에 니나의 상대가 아니었다. 시작점부터가 달랐다. 강수진의 글을 읽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50세라니! 그 나이에 은퇴했다니. 그토록 칭송받는 발레리나가 그토록 오래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니. 더군다나 수석 발레리나가 된 것은 30세? 20대에 은퇴하는 프로들도 비일비재한 것이 발레계 아니던가! 잘 알지 못하는 예술계고 체육계지만 충격이 엄청났다. 강수진에 대한 환상과 로망이 깨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알게 모르게 기대한 건 짧고 굵게 있던 여성의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노력과 헌신은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연습을 봤을 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재수를 하면서 겪은 마음과 태도, 생활의 변화와 버릇을 그녀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반가웠다. 동시에 엄청난 정신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발레 연습 18시간과 외국에서의 기러기 생활에 해당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고는 장담 못 한다. 내 고통이 컸다고 말하기엔 부끄러울 지경이다. 압박으로 어른들 앞에서 눈물이 자연스럽게 터질 정도로 힘든 일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강수진처럼 강하게 버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녀를 내 멘토로 삼고 싶다는 마음이 뭉쳤다. 그녀가 연습벌레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나는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마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녀는 말 그대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명예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강하고 굳건하게, 열심히 발레를 위해 산 여성. 그녀는 니나처럼 나약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위해 살기란 쉽지 않다. 어떤 분야 한 군데에서 이름을 날리기도 성공하기도 힘들다. 자기만족으로 버티기도 어려운 것이 인생이다. 발레를 위해 살았다고 한 그녀의 말을 이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되새기게 된 것 같다. 물론 여러 사람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 물론 본인은 이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이지만. 내가 미는 지론이 있다. ‘양’을 이기는 것은 없다. 적어도 ‘양’은 아주 훌륭한 무기고 재산이다. 실력이 부족하면 더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해야 한다. 아무리 못 그리는 사람도, 공부를 못하는 사람도 하루 일정 시간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한다면 실력이 늘게 되어있다. 그 사람만의 루틴이 생기고 양이 생기고 한계가 생기고 기록이 생긴다. 물론 워라밸도 중요하지만. 무언가 이루고 싶다면 많이 해야 한다. 입시 시절 질리도록 들은 바 있듯, 세상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하는 사람을 요구하니까. 


그러나 잘하려면, 노력이 없어서는 안 된다.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성공은 없다. 니나도 강수진도 많은 구슬땀을 흘렸다. 피로와 스트레스 속에서 싸웠다. 둘은 그 덕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다만 니나는 버티지 못했다. 너무 가혹하게 자신을 채찍질했고, 큰 상처를 받았다. 강수진은 힘들어했지만 모든 것에 버텼다. 자신을 챙겼고 발레에 충실하되 연습으로 스트레스를 이겼다. 대단한 정신력이고 실력이었다.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면, 힘들 때 우리가 봐야 할 건 <블랙 스완> 같은 영화가 아니라 강수진 같은 발레리나가 아닐까? 그녀에게서 진정으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게 그런 점이 아닌가 싶다. 

늘 노력하고 연습하고 준비하되 자신을 함께 챙길 것. 

그러면 반드시 세상은 응답할 것이므로.

 

괜찮은 이야기가 아닌가.

세상이 노력에 대한 대가를 정당히 주는 것 같지 않아 서러울 때, 앞을 비춰주는 등대로 그녀가 있다. 

제법 나아가기 괜찮은 길이다. 노력할 맛이 난다. 

작가의 이전글 불편한 표현, "문학소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