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 Feb 21. 2021

"무선 이어폰"이 알려주는 변화

무선 이어폰에 대하여


이어폰은 이제 옛말이 되어간다. 에어 팟이나 버즈가 무섭게 차지하고 있다. 바야흐로 무선 이어폰의 시대가 아닌가 싶다. 드라마에서도 이어폰을 쓰는 대신 무선 이어폰이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 사실 개인적으론 이어폰이 더 좋다. 선이 달려있어 안정감이 있고, 아무래도 익숙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말하기엔 무선 이어폰의 인기가 무섭다. 무선 이어폰은 그 케이스와 액세서리까지 이미 범위가 넓다. 키링이나 스티커로 꾸미고, 자랑하는 건 이미 트렌드 그 자체. 이어폰을 사랑하는 사람은 조금 외롭다…. 귀에서 떨어지는 게 무섭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 잃어버리는 것조차도 또 다른 구매의 계기가 되어서 괜찮은 걸까. 유행은 언제나 이면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무선 이어폰이 어떤 변화를 가져온 건지, 무슨 변화를 볼 수 있는지, 그 변화에서 어떤 걸 읽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무선 이어폰이 유행하면서 음악을 듣기 더 유리해졌다. 그림을 그리든 체육을 하든 작업을 하든 아주 편하다. 언뜻 보기에 딴짓하는 것 같지도 않고, 줄에 걸리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개인의 공간이 아주 불명확해졌다. 원래 헤드폰이 있고 이어폰이 있으면 음악을 듣는다는 걸 바로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할 말이 있으면 건드리거나 신호를 줘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무의식 중에 ‘말 걸지 마시오’라는 메시지가 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무선 이어폰은? 찾기 힘들다. 특히 여성의 경우 머리를 풀고 있으면 지금 듣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가 없다. 말 걸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모호해 다가가기 힘들다. 처음에야 몇 번 머쓱하지만, 나중엔 습관이 되고 학습이 되어 먼저 말 거는 걸 꺼리게 된다. 사실 몇 번 그런 경험이 있기에, 무선 이어폰이 더 싫어지기도 했다. 도무지 그 사람이 지금 어떤지 알 수가 없으니까! 미안한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그러면 죄책감이 생긴다. 어쩌면 그게 무선 이어폰의 진정한 기능은 아닐까? 누가 누군지 모르고, 속기도 쉬운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누가 오지 않도록 하는, 최대한 꺼리게 만드는 기기라니. 아주 매혹적이다! 음악을 듣는 건 부가적인 기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주 은은하게 사람과의 벽을 만들어주는 장벽의 모습이, 무선 이어폰 아닐까?     


비단 말 걸기에서만 무선 이어폰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건 아니다. 흔하디 흔한 연애 클리셰 중에 이어폰이 있다. 같은 공간, 같은 음악을 들으며 있는 순간. 이어폰 줄 때문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순간 말이다. 그때 무슨 음악을 듣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그때의 거리감이다. 닿을 듯 말 듯 서로 묶여 있는 거리. 아슬아슬하면서도 연결된 게 꼭 연애를 형상화한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무선 이어폰이 나오면서 그런 낭만은 사라졌다. 연결된 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서로 같은 공간, 같은 음악을 듣지만 매여 있지 않다. 물론 그걸 마냥 부정적으로 볼 건 아니다. 사실 무선 이어폰도 연결되어 있다. 블루투스가 안 닿는 거리가 되면 끊기지 않던가? 그저 눈에 안 보일 뿐 그들은 분명 이어져 있는 것이다. 다만,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훨씬 넓어진다. 이런 상황 역시 시대의 변화일지도 모른다. 옛날에야 연인이면 서로에게 마냥 헌신적인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매일 만나거나 연락하고, 기념일은 꼭 챙긴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부작용이 생겼다. 그런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었고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연애 때문에 개인의 성장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고, 막히기도 했다. 그래서 점점 연애는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가 이어져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 안에서 서로 행동하는 게 부쩍 자유로워진 모습으로. 반드시 같이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하는 게 아니라 편한 방식으로 있되 서로를 챙기는 방식으로 말이다. 

     

무선 이어폰이 사람 간 관계에 참 많은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물론 관계에만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무선 이어폰이 생기면서 혼자 하는 게 더 유행하기 시작하지 않았나. 운동할 때도 거추장스럽지 않아 애용하고, 출근길에도 간편해 다들 사용한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는 법이다. 자기가 듣고 싶은 걸 어느 공간에서나 듣는 건 혼자 있을 때 좋은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면서 점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혼자 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진다. 자신의 귀에는 좋아하는 음악이 들리고, 자기가 만든 리듬과 박자에 자기를 맡길 수 있다. 정말 자신의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혼술, 혼영, 혼밥, 이 모든 것에서 무선 이어폰을 마냥 도려낼 순 없을 테다. 알게 모르게 혼자 행동하는 데 지반이 되어준 셈이니까.     


물건 하나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데 마냥 확대해석이라고만 볼 수 없는 건, 세상은 결국 아주 단순한 거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명작과 명품만이 세상을 움직이는 게 아니다. 그런 식이면 우리는 아주 천천히 발전했을 거다. 세상이 바뀌는 건 아주 작은 물건으로도 충분하다. 요즘의 변화는 무선 이어폰이 가져왔다. 이다음엔 어떤 게 그 역할을 맡을까? 그때는 또 서로 벽을 없애기 위해 쩌렁쩌렁한 스피커가 유행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혹시 아나. 세상은 언제나 알 수 없게 돌아간다!

작가의 이전글 나아갈 맛이 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