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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r 02. 2021

여왕은 여왕의 운명이었다

<잔혹한 왕과 가련한 왕비- 나카노 교코 지음>을 읽고

 

잔혹한 왕과 가련한 왕비라. 흔한 구도다. 하지만 차근차근 따져보면 의외로 이런 사례는 적다. 어차피 정치적 판단을 위한 정략결혼, 애정을 가지고 사는 경우가 드물었으니까. 괜히 정부란 단어가 오래 자리를 잡은 게 아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관계는 그런 흔한 사이가 아니었다. 다름 아닌 육촌 사이의 두 여성이었다.     


본디 왕좌는 사촌이건, 친혈육이건 가리지 않는다.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혈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잔인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깊은 역사 속에서도 이 두 여성은 아무리 서양사를 몰라도 알 만한 이름이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메리 스튜어트!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그림이 그녀들에게서 나왔던가. 정작 그녀들의 대비에 대해선 모른다 하더라도 말이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으로, 이 책을 통해 그 생애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 둘의 생애는 너무나도 판이했다. 둘 다 부모님 중 한쪽을 어릴 때 잃었지만 유년기의 차이는 컸다. 엘리자베스는 어머니의 사형, 왕위 계승의 여부, 런던탑의 유폐 등의 고난을 차례차례 견뎠다. 살기 위해 개종도 했고, 눈치도 많이 봤다. 그렇게 해야 이길 수 있었으니까. 그래야 그녀는 왕이 되어 생존할 수 있었다. 각박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딘 것이다. 그에 반해 메리 스튜어트는 행운이 반짝이는 소녀였다. 어릴 때 고국에서 프랑스로 갔다지만 그 당시 훨씬 발달하고 풍요로운 나라로 간 상황이었다. 말이 망명이지 유학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차기 왕세자비로 대접받아 아무 탈 없이 곱게 성장할 수 있었다. 승마, 자수, 라틴어, 프랑스어 모두에 뛰어났고 우아하게 자란 그녀는 너무나 행복했다. 왕세자 역시 사실상 소꿉친구로 사이가 매우 좋았다. 거슬릴 것이 없었다. 아름답고 재주 많은 숙녀가 무얼 더 바라겠는가. 만일 그녀의 짝이 조금 더 건강했더라면 그녀는 평생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평생 '아름답고 고귀한 숙녀'로. 안타깝게도 운명이 그녀의 편이 아니었을 뿐이다.

  

왕세자가 왕으로 즉위했으나 일찍 죽자,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메리는 스코틀랜드로 쫓겨난다. 그전부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의 진정한 후계자라 떠들었던 그녀다. 그녀가 그 자리의 의무와 무게를 알았다면 쫓겨나도 괜찮은 일이었다. 본진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닌가. 자연히 왕의 재주와 실력을 길렀었다면 날개를 다는 순간이었을 테다. 결코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배우기만 하면 세계의 판도가 뒤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그런 기회를 제공했겠는가? 그녀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간 게 아니라, 프랑스의 왕비로 간 것이었다. 정치에 밝은 왕비를 좋아할 외척은 드물다. 그 외척이 권세가 강하다면 더더욱. 그녀 역시도 정말 자신이 왕이 되리라 여기진 않았을 거다. 정치를 알 필요도 없다고 여겼으리라. 그래야 왕비로서 더 자리 잡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상황이 만든 결과일까? 결국 그녀는 정세 따윈 모르는 병풍 역할이었다. 왕비였다면 그 면모가 안 드러났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자리는 여왕이었다. 그녀는 나라보다 사랑을 좇았고 정치보다 장식과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러는 사이에 친애하는 그녀의 언니는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었다. 고생으로 얻은 눈으로 정세를 살피고 권위를 세웠다. 위대한 여왕으로 가는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나가는 그녀에게 메리는 제일 눈엣가시였다. 한때 서출로 내려갔던 엘리자베스와 달리 메리는 당당한 왕위 계승권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충분히 반역이 일어날 조짐이 있었다. 언제나 매의 눈으로 메리를 응시한 엘리자베스는 메리가 뜻밖에 피신해오자 받아주되, 만나지 않았다. 똑똑하고 슬기로운 여왕다운 결정이었다. 그 선택으로 메리를 감시하고 그녀에게 달린 반역도 알아챌 수 있었다. 더군다나 박정하단 오명도 피할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계륵’을 아주 잘 배치한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테다.      


생각해보라. 다른 이유도 아니고 자신의 남편이 죽고 바로 신하와 결혼한 여왕을 누가 받아주겠는가. 강간당해 그녀의 체면이 걸렸다고는 하나 멍청한 선택이었다. 여왕이라면 권좌에 앉아 그 신하를 무례함으로 몰아 죽였어야지! 만일 다른 이들의 추측대로 신하가 실제 연인이었다면 더는 할 말도 없다. 불장난도 때를 봐 가면서 하는 것 아닌가. 이랬거나 저랬거나, 메리 스튜어트는 정말이지 여왕 감은 아니었다. 정치에 대한 교육도 받지 않고, 주위에서도 막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그렇다면 덤빌 구석은 봐 가면서 덤볐어야지! 그녀가 마냥 잘못했다는 건 아니지만, 몇몇 실수가 너무 컸다. 그런 그녀도 유폐되어 감시당할 때 어떻게든 나가려고 이리저리 연락을 취했다. 나름 머리를 쓴 결과겠지만 안타깝다. 모두 그 결말을 알지 않는가. 처음엔 용서받았어도 그 이후는 없었다.      


여왕이라는 자리는 어렵다. 여성 통치자를 읊노라면 그녀들의 생애가 파란만장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만큼 곡절이 많아야 오른 자리이기도 했고… 그래야 살아남는 자리였으니. 선덕여왕만 하더라도 모욕을 당하고, 전쟁을 치르고, 반역을 눌렀다. 그 누구도 평탄한 길을 걷지 않았다. 측천무후는 부자를 모시고 딸을 죽였단 악명을 받았고, 피의 메리는 유년기의 고통과 더불어 평화를 얻지 못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온갖 노력을 들였지만 자살했고 여왕 마고는 한때 오빠, 남편, 어머니 모두에게서 배척받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몇몇 여인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업적을 남겼다. 또 어떤 여인은 고통에 패배해 바스러졌다. 나는 그 차이가 그릇의 차이, 즉 역량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고 모두가 연꽃처럼 피어나진 않는 법. 왕좌에 어울리는 이가 있고 아닌 이가 있는 법이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이다.      


우습게도 우위에 있었던 건 메리 스튜어트였다. 그녀의 반평생이 엘리자베스보다 우월했고 평탄했다. 누가 이런 결말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걸 뒤집은 건 단 하나의 요소였다. 그녀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차이였다! 왕좌에 목마른, 붉은 머리의 창백한 소녀인지, 왕비만을 생각했던 아름다운 소녀인지. 똑똑하게 지킨 여왕은 잔혹했고 운이 없었던 여왕은 가련했다. 대우나 처지를 떠나 개인의 그릇이, 그 모든 역사를 바꿨고 세상에 변화를 가져왔다. 여왕의 몸이라 한들 단순한 그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 어쩌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게 정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 어려운 일이 우리가 되뇌는 모든 필연일지 누가 알겠는가. 


모든 패배, 모든 승리, 엘리자베스와 메리의 경쟁은 다 정해진 이야기라면? 

그 둘의 상황이 바뀌었다고 과연 메리가 반드시 승리하였을까. 엘리자베스가 패배하고 말았을까?

우리는 그럴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그저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여왕과 왕비의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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